붉은벽돌 3층 건물

by 산너머

21. 붉은 벽돌 3층 건물)


고등학교를 올라가면서 변학골에서 세 번째 방으로 이사를 했다. 시장통에 있는 붉은 벽돌 3층 건물이었다. 1층은 점포, 2층은 세를 사는 집, 3층도 세는 사는 집이었다. 3층 전체를 전세로 사는 집이 방 한 칸을 월세로 줬는데 그 방에 우리 가족이 이사한 것이다.

그러니까 3층이 주인집이 된다. 주인집 아저씨는 수건류를 1층 점포 앞 매대에서 팔고 아줌마는 그 옆에서 생선 장사를 했다. 덩치 큰 성인 아들이 셋, 성숙한 고등학생 딸이 한 명. 딸은 3학년이었다.

주인집은 연탄아궁이로 난방을 했지만, 우리 방 방바닥은 시멘트 바닥에 나무판자를 대고 그 위에 누런색 장판을 깔아서 걸을 때마다 울컥울컥 들썩거렸다. 난방역할을 하는 아궁이가 없어서 겨울에는 방 한가운데에 연탄난로를 놔야 했다. 부엌은 주인집과 같이 썼다.

부엌 밖으로 하수구만 설치된 빨래터에는 나이론 빨랫줄이 공중에 걸려 있다. 긴 고무호스를 부엌 수도에 꼈다 뺐다 하며 고무 함지박에 물을 받아 빨래를 했다. 비바람을 그대로 맞는 바깥이었다. 겨울엔 받아 놓은 물이 얼고, 빨랫줄에 걸어 놓은 빨래가 그대로 얼어 빳빳했다. 낭만적으로 표현하자면 공중에 떨어진 플라타너스 낙엽 같았고 기분 나쁘게 표현하자면 두 팔을 벌린 토막 난 시체 같았다


붉은 벽돌 3층 건물은 시장통 딱 중간지점에 있다. 붉은 벽돌로 아무렇게나 마감한 건물은 3층 전체가 건물의 크기였다. 평수로 치면 25평 정도나 됐을까? 건물치고 상당히 좁았다. 3층 주인집 방은 길었지만 한 칸이었고 다락방이 하나 있었다. 주인집 방 사이에 좁은 마루가 있고 마루를 사이에 두고 우리 방이 한 칸. 우리 방에 붙은 셋방이 한 칸. 붙은 셋방은 건물주가 따로 세를 준 방인 것 같았다. 건물과 건물은 어깨를 견주고 서 있거나 사이가 좋으면 악수를 하고 있다. 이런 비슷한 건물이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십몇 개쯤 되려나? 세어 본 적이 없어 모른다.


3층 우리 방 창문에서 시장이 바로 내려다보였다. 알전구를 켠 점포들 내부가 보였고, 점포 앞 매대 위 가지런한 수건이 다 보였고, 함지박 노점상이 파는 보잘것없는 채소들이 보였고, 지저분한 깔개에 펼쳐놓은 생선들이 몇 마리인지 알았고, 엉킨 리어카가 뭘 파는지 알았다. 장사하는 사람과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들로 허구한 날 시끄럽고 분주했고 너저분했다.

나는 이 방에서 시장통을 내려다보는 걸로 하루를 보내게 된다. 창문에 서서 검은색 교복을 입고, 무릎 툭 나온 추리닝 바지로 갈아입고 구석구석을 구경하는 구경꾼으로 여고 시절을 보낸다.


옛글에 자식을 위해 이사를 몇 번이나 했다는 맹자 어머니가 있었다.

공부는 진작 흥미를 잃고 장사하는 풍경만 내려다봤다. 새벽부터 밤 12까지 시장통 소리가 그대로 창문 안으로 들어왔고 그걸 가까이 보기 위해 창문에 매달렸다. 얼기설기 지나가는 전깃줄 사이로 시장풍경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리하여 장삿속을 배웠냐 하면 그건 아니다. 지루한 시간을 잘 때우는 무기력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다.

화, 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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