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엄마의 인생)
엄마는 산골에서 육 남매 중 셋째 딸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해서 자주 체하고 자주 감기가 들어서 매일 아팠다. 그래서 입이 짧았는지 밥상머리에 앉으면 인상을 썼다.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태어났겠지만, 성격이 더 예민하고 까칠할 수밖에 없었다.
맏이가 언니였는데 첫째 이모만 엄마에게 너그럽게 대했다. 이모는 결혼하고 몇 년 뒤 남편이 죽었다, 그때 이모 나이가 스물아홉 살이었다. 엄마가 남편을 잃었을 때 나이가 스물여덟 살. 둘은 같은 처지라 이해하고 서로 의지를 했다.
그러나 이모네 집 입구에 피던 무궁화꽃이 후둑후둑 질 때 첫째 이모는 병으로 일찍 죽었다. 의지했던 언니가 죽어 엄마의 외로움과 비참함이 꽃잎처럼 나뒹굴었다. 이모 나이 마흔세 살이었다.
엄마가 혼자가 되었을 때 큰딸인 나는 작은아버지 집으로 보내졌고 막냇동생은 첫째 이모가 키워준다고 해서 그리 보내졌다. 큰 동생은 외갓집에 남겨 놓고 엄마는 서울로 올라와 식모살이했다. 그렇게 우리는 사방으로 흩어져 각자 주어진 처지에서 악착같이 살아났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눈치만 보며 살아냈다.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자식들을 친척 집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지만 그건 아주아주 잘못된 판단이었다. 굶어도 같이 살아야 했다. 그래야 사람은 정신이 똑바르게 자리 잡게 된다. 엄마는 어려서 몰랐다지만 나는 더 어렸기에 반항을 할 수 없었다.
어찌 되었든 살아남아서 중학교 1학년 때 우리 가족은 빗자루로 곡식 쓸어 담듯 한 삼태기에 담겼다. 가난은 불편했고 추웠고 무시를 당했다. 나는 예민하고 불안해서 학교생활과 사회생활에 문제가 꽤 있었다. 그로 인해 마음이 다친 나와 마음이 아픈 엄마.
엄마의 고생은 누구보다 심했다. 온돌방이 아닌 냉방인데 방 한 칸, 매일 일숫돈,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노점, 친척 간 이웃 간의 멸시, 무엇보다 엄마만 바라보는 아이들 셋.
엄마는 잘못한 게 없다. 남편 없는 것밖에 없는데 형벌 같은 인생을 살았다. 이 형벌을 벗어나려고도 하지 않았다. 고스란히 뒤집어썼다. 숨 막힐 때도 허다했고 죽고 싶을 때는 삼 남매를 들여다보며 악착같았지만,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고, 상처투성이로 남아서 그대로 살아냈을 뿐이다.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고 자식 하나 변변하지 못했다.
쓸쓸하고 억울해서 눈물로 보내야 한다는 여자의 인생이 바로 우리 엄마의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