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시계

by 산너머

24. 손목시계)


고등학교에 가려면 중학교와 반대 방향이라 길 건너에서 버스를 탔다. 중학교 때는 회수권이었는데 고등학교를 들어가면서 토큰으로 바뀌었다. 십 원짜리 동전보다 작고 가운데 구멍이 뚫려있어서 엽전 같았다, 토큰을 안내양에게 주고 만원 버스에 발을 올리면 안내양은 손으로 밀다가 뒤돌아 엉덩이로 밀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학교 정문이 보였다. 단발 검사를 통과해야 교실로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귀밑 1㎝ 똑 단발머리는 인물을 베렸다. 검은색 애매한 길이의 통치마는 인물을 한층 더 깎아내렸다. 하지 말라는 게 많은 학생 신분이므로 똑같은 틀에 맞춰야 했다. 나는 반항 하지 않는 공부 못 하는 모범생이었다. 하라는 대로 해서 규율부에 걸리거나 선생님에게 혼난 적이 없었다. 이렇게 지켜야 하는 줄 알아서 불평할 줄 몰랐다.


교실엔 똑같이 생긴 낡은 나무 책상과 걸상. 짙은 초록색 칠판, 분필과 분필 지우개. 지우개 터는 막대기. 교탁, 유리 깔린 선생님 책상. 내 교실은 본관 1층, 본관 2층엔 교무실. 본관 뒤에는 별관, 별관엔 3학년 교실. 별관 뒤에는 음악실. 음악실로 가는 뒤뜰엔 봄엔 붓꽃이 피고 여름엔 장미꽃이 듬성듬성 피었다.


중학교 운동장보다 반듯한 고등학교 운동장에는 마사토가 깔려서 비가 와도 눈이 녹아도 질척이지 않았다. 운동장엔 쉼터가 두 군데 있었다. 나무 의자가 있고 등나무가 그늘을 만들었다. 등나무꽃이 포도송이처럼 늘어졌다. 운동장을 바라보고 피어있던 황매화. 황매화가 지고 나면 해당화꽃이 피었다.


고등학교 때는 더 공부를 하지 않아서 항상 밑바닥이었다. 반 친구 몇몇이 공부 못하고 가난한 나를 따돌렸다. 그들은 먹을 걱정이 없고 각자의 방이 있는듯했다. 가난이 뭔지 알 바 아니게 부유했다. 손목시계를 다 차고 있었고 그것도 몇 개씩이나 있어서 자주 바뀌었다. 그때의 부자와 가난은 시계로 표시가 낫다. 학용품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도시락에서 더 확고해졌다. 잘사는 애들은 보온도시락이 달랐다. 나는 양은 도시락에 반찬도 매일 김치 아니면 콩나물 아니면 잘해야 콩자반 가끔 멸치.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달걀을 밥에 올려왔다, 부잣집 애들은 햄을 자주 싸 왔고, 함박스테이크인지 동그랑땡인지 그런 것도 싸 왔다. 고급스러웠다.


끼리끼리 놀았다. 부잣집 애들끼리, 가난한 애들끼리 갈렸다. 나는 친구가 거의 없었다. 붙임성은커녕 눈치만 보고 혼자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교실에서도 가만히, 운동장에서도 가만히 음악실에 갈 때도 혼자였다. 여름이 다 되어갈 때 친구가 한 명 생겼다. 이름이 경희였다. 이 친구가 자기네 집에 가자고 했다. 학교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산동네였다. 집안이 굴속 같았다. 푹 꺼진 1층이라서 하수구 냄새가 났다. 나는 방 한 칸 3층에 살아서 환한 것만 빼면 우린 비슷하게 가난했다.

부잣집 어떤 계집애가 경희네 집 흉을 봤다, 어둡고 냄새가 난다고 그네들끼리 흉을 보며 비웃었다.


그래서 어떤 친구도 우리 집에 데리고 가지 않았다. 경희도 안 데리고 갔다. 경희는 자존심이라는 걸 몰랐다. 그림을 잘 그리고 글씨를 예쁘게 썼지만 경희도 손목시계가 없었다.

화, 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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