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방 한 칸

by 산너머

30. 월세방 한 칸)


월세방은 많이 살아야 2년. 보통은 일 년에 한 번씩 옮겼다. 3층 낡고 좁은 건물 전세방에 사는 주인이 방 한 칸을 월세방으로 준 곳이니 보증금도 월세도 가장 싼 곳이었다.


누구나 품을 수밖에 없는 절박함 또는 절실함으로 이곳 시장통으로 들어와 새벽부터 자정까지 기를 썼지만, 전세방에 사는 주인은 전세방에서 월세방을 사는 우리는 월세방으로 나그네처럼 옮겨 다녔다.


주인집 아들들은 대학을 나왔거나 대학생이었다. 취업준비생이었던 큰아들은 순하고 인물이 좋았다. 둘째 아들은 서울의 2류급 대학에 다녔는데 험악하게 생겼다. 셋째 아들은 군인의 신분이 되어 가끔 아주 가끔 보였는데 팔다리가 가늘고 말이 없었다.

막내가 딸이었는데 이 딸이 문제아였다. 한집에 사는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말을 나눈 적은 거의 없었다. 고등학생인 이 딸은 남자와 어울려 다니며 안 들어왔고 학교를 툭하면 빼먹었다. 둘째 오빠가 그걸 못 참고 툭하면 두들겨 팼다.


둘째 오빠는 과외를 하고 싶어 했다. 나에게 부탁을 했다. 과외공부를 하고 싶은 친구 좀 소개해 달라고 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순진하게도 같은 반 친구들에게 물어는 봤다.

“어디 대학교?”

“경춘대”

“야? 서울대나 연세대 아니면 안 해!”

그걸로 볼일은 끝이 났다. 속으론 잘 됐다고 안심을 했다. 친구들을 우리 집에 데리고 오지도 않는데, 주인집 오빠를 소개해주는 건 곤란한 일이었다. 소개 못 해주겠다고 말해야 했는데, 그런 말도 못 하고 거짓말도 못 하고 혼자 고민을 했었다.

오빠에게 전했다.

“서울대나 연세대 아니면…. 경춘대라서….”

걸러내 말할 줄 모르고 너무 솔직했다.

“그래? 제기랄, 씨... 발.”

원래도 얼굴이 뻘건데 빨간 내복이 되어 욕을 내뱉었다.

그 뒤부터 그 오빠가 방문을 열고 나오는 것 같으면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짝꿍과 뒤에 앉은 친구들과 친해졌다. 넷이 매점을 뛰어갔고 도시락을 까먹고 운동장 등나무에 앉았고 음악실 돌길을 같이 걸었다.

차례대로 돌아가며 친구들 집에 놀러 갔다. 그러나…. 나만 친구들을 집에 데리고 오지 않았더니 그랬더니 우리 집에 꼭 가야 한다며 셋은 나를 포위하며 따라왔다. 시장통 골목에서 뺑뺑 돌며 못 따라오게 했다. 시장 골목을 빠삭하게 알던 나는 이 골목 저 골목을 돌기만 했더니 친구들은 지쳐 나가떨어졌다. 포기한 친구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고 골목 어귀를 지나 집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는 길이 어찌나 외롭고 허전하던지….

우중충한 건물 벽을 올려다보며 지리멸렬하고 성마른 성격의 나를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아빠가 원망스럽고 엄마가 한심했다.

열일곱의 나는, 애환 같은 게 있었을까? 있었다. 그것도 짙게.

화, 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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