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직장
공자의 제자 중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말을 잘하는 사람으로 재아와 자공이 있었고, 덕행이 뛰어난 사람으로 민자건과 안연이 있었다. 논어(論語)의 학이편(學而篇)에 보면 ‘말을 교묘하게 잘하고 얼굴빛을 곱게 꾸미는 사람 중에는 마음이 순수한 사람은 거의 없다.’라는 교언영색 선의인(巧言令色 鮮矣仁)이란 문구가 있다. 다른 사람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말을 번지르르하게 하고 표정을 그럴싸하게 지어 아첨하고 알랑거리는 태도를 비유하여 공자는 재아의 버릇을 고쳐 ‘입으로 한 말은 반드시 행동으로 실천’하게 만들었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라는 말이 있다. 겉모양은 보잘것없으나 내용은 훨씬 훌륭함을 이루는 말이다. 물론 장맛을 제대로 내려면 뚝배기에 끓여야 한다. 그런데 세상은 투박한 뚝배기 같은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우직하게 자기 일만 열심히 하는 사람은 회사입장에서는 이로운 사람이나, 오너의 눈에 잘 띄지 않아 제대로 평가를 못 받고 본인도 모르는 사이 차별적 대우를 받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같이 일하는 박기영 이사는 묵묵히 자기 일만 열심히 하는 전형적인 뚝배기형 직장인이다. 유명한 글로벌 컨설팅 펌에서 오랫동안 컨설턴트로 일한 경험이 있고, 자신이 맡고 있는 업무에 대해서는 무한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조금 투박하기는 하지만 지식을 전달하는 능력도 뛰어나고, 프리젠테이션도 곧잘 한다. 동료들이 의뢰하는 일은 거절함이 없이 마다하지 않고 도맡아 한다. 하지만 평상시는 앞에 나서는 걸 꺼려하고, 바른 말만 하고, 상사의 비유 맞추는 것에 관심이 없다. 그러다보니 윗사람들이 보기엔 적극성이 떨어지고, 주도적으로 일을 찾아서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료들 사이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꼭 필요한 사람인데, 몇 년째 승진도 못하고 마냥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그렇다고 불만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묵묵히 일만 할 뿐이다. 하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스스로 그만두지 않으면 쫓아내는 사람도 없다.
반면 김진걸 부장은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말이 많고 매사에 나서길 좋아한다. 동료들에 대한 험담이나 이간질을 통해 본인의 존재감을 내세우고, 본인이 하고 있는 일을 그럴싸하게 포장하여 성과를 부풀이기도 하며, 오너에게 직접 사사로운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생김새도 멀끔해 보이고, 언변도 뛰어나 처음 듣는 사람은 그의 말이 모두 옳아 보인다. 성과도 금방 나올 거 같고, 사람들로 하여금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결과가 확인이 되면 그의 화려한 언변은 공갈로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의 말을 듣고 동료를 의심했던 상사도 나중에 사실이 아님을 확인하고 뒷수습을 하려 할 때는 이미 그 동료는 명예를 회복하지 못하고 퇴사를 한 뒤였다. 김부장은 결국 1년 남짓 근무하고 회사를 떠났다.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이런 간사하고 교활한 행동들이 의외예로 잘 통한다. 조직의 상사나 오너들은 모든 직원들의 사사로움을 다 챙길 수 없다. 주변에 현란한 혀로 아첨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쉽게 넘어가는 것이 상사들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이기적인 존재라서 자신에게 득이 되는 말만 들으려 한다. 더군다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지나치게 반듯한 직언은 거부감부터 느끼기 마련이다. 상대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따르지 않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한비자의 화씨편에 화씨지벽(和氏之璧)이란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화씨의 구슬이란 뜻으로, 천하의 명옥(名玉)을 이르는 말 또는 어떤 난관도 참고 견디면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화씨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옥을 감정하는 사람이다. 그가 산에서 옥돌을 발견하여 여왕(厲王)에게 바쳤다. 여왕이 옥을 다듬는 사람에게 감정하게 하였더니, 보통 돌이라고 했다. 여왕은 화씨가 자기를 속이려 했다고 생각하여 발뒤꿈치를 자르는 월형에 처해 그는 왼쪽 발을 잘렸다. 여왕이 죽고 무왕(武王)이 즉위하자, 화씨는 또 그 옥돌을 무왕에게 바쳤다. 무왕이 옥을 감정시켜보니 역시 보통 돌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무왕 역시 화씨가 자기를 속이려 했다고 생각하고는 오른쪽 발을 자르게 하였다. 무왕이 죽고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화씨는 초산 아래에서 그 옥돌을 끌어안고 사흘 밤낮을 울었다. 나중에는 눈물이 말라 피가 흘렀다. 문왕이 이 소식을 듣고 사람을 시켜 그를 불러 “천하에 발 잘리는 형벌을 받은 자가 많은데, 어찌 그리 슬피 우는냐.”고 까닭을 물었다. 화씨가 “나는 발이 잘려서 슬퍼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옥을 돌이라 하고, 곧은 선비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하여 벌을 준 것이 슬픈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문왕이 그 옥돌을 다듬게 하니 천하에 둘도 없는 명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하여 이 명옥을 그의 이름을 따서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고 이름하게 되었다.
화씨의 일화처럼 역사에서는 진실이 왜곡되고 외면당하는 일이 많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상사는 소통을 거부하게 되어 있다.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주체가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하는 게 아니라 상하 관계 혹은 갑을 관계로, 이미 한쪽으로 균형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공개적으로는 소통을 강조하지만, 진정한 소통은 없다고 보는 것이 좋다. 그래서 교활한 자들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조직에서 인정받고 싶다면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것도 좋지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우직함도 필요하다. 승부에 전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성실하고 우직하게 다가간다면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제대로 평가를 받는 날이 온다. 직장에 입문하는 신입직원들은 빨리 가는 길을 택하는 것보다 진득하게 배우고 익혀서 후사를 도모하는 장기적인 로드맵을 가지고 일할 것을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