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입문] 일은 적성이 아니라 적응하는 것이다

어쩌다 직장

by 이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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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사르트르(Sartre)의 관심은 항상 개인에게 있었다.

‘나 자신으로 사는 삶’ 사르트르 사상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을 겪고,

앙가주망(Engagement) 즉 주체적인 참여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펜싱에서, 선수들이 가드를 할 때 서로의 검이 맞닿은 상황을 말하는 ‘앙가주망’은 일반적으로 ‘무엇인가 연루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사르트르가 말하는 앙가주망은 ‘주체적으로 관계한 일에 참여한다’는 뜻이다.




일을 찾는 과정에서 제일 많이 거론하는 것이 적성이다. 적성(適性)이란 성격에 적합한이라 해석할 수 있을까? 사전적 의미로는 어떤 일에 알맞은 성질이나 적응 능력, 또는 그와 같은 소질이나 성격으로 정의된다. 세상에 내 마음에 드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아니 내 맘에 드는 일을 얼마나 하고 살까? 소위 천직(天職)이라 말하는 사람들조차 마음에 흡족하게 느끼며 일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 천재 피아니스트 모짜르트도 천재적 재능을 타고 났지만 어린 나이에 아버지로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아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 중국 킬러라 불리는 일본의 탁구 천재 이토미마도 어릴 때부터 탁구선수 출신인 어머니의 혹독한 훈련으로 50cm 단신임에도 불구하고 마의 중국장벽을 넘을 수 있었다.


이 세상에는 오만가지 일이 있다고 한다.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모르는 직장이나 직업이 무수히 많을 것이다. 그 많은 직장, 직업 중에 평생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살 수 있을까? 내가 하고 있는 일 외에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이 궁금하거나, 다른 직장이 궁금한 적이 있었다. 금융에 있을 때는 제조가 궁금했고, 대기업에 다닐 때는 중소기업이 궁금했으며, S사에 다닐 때는 L사가 궁금했다. 같은 직장 내에서도 기획 일을 할 때는 인사나 영업이 궁금했고, 법인고객을 대상으로 일을 할 때는 개인고객을 다루는 일이 궁금했다. 이처럼 무수히 많은 직장과 일 중에 내 능력과 성격에 맞는 즉 적성에 맞는 일을 찾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야장천(晝夜長川) 적성에 맞는 삶을 찾아 해야 후회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에 빠져있다.

삼성전자02.jpg (삼성은 최근 3년간 글로벌 기업 중 최고의 기업으로 선정됨 / 202310)

대학에서 나의 전공은 경영학이다. 처음에 직장을 선택할 때는 전공을 고려하여 자산운용이니 투융자분야를 찾아갔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을 좆아 월급을 많이 주는 금융분야를 선택했다. 상대적으로 급여가 적은 제조는 철저히 외면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매우 근시한 적이고 즉흥적인 결정이 아닐 수 없다. 당시에는 증권, 카드, 보험, 은행 등 금융권의 급여가 월등했다. 현재 글로벌 기업 중 최고의 직장으로 3년 연속 선정된 삼성전자는 마지막 단계로 선택된 곳이었다. 사실 '80년대의 삼성전자는 냉장고 TV 등 백색가전이 대세를 이루던 시기이고 반도체나 핸드폰은 먼 이야기였기 때문에 급여수준은 물론 성장에 대한 기대가 없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직장에 입문하는 과정이 우습다. 군대를 제대하고 4학년에 복학한 나는 한 학년을 남기고 미래를 위해 직업선택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다. 심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남들 다하는 고시공부였다. 전공이 경영학이니 자연스레 공인회계사준비반에 들어가 열심히 학업에 정진했다. 하지만 공부 외적인 것에도 관심이 많던 그 시절의 나에겐 고시원에 처박혀 공부만 하는 것이 영 달갑지 않았다. 몇 차례의 실패를 맛본 나는 심각한 각성이 필요했다. 험난한 직장생활을 경험해보면 고시공부를 더 열심히 하지 않을까라는 단순한 생각이 뜻하지 않은 외국계 합작 보험사로 나를 이끌었다. 6개월만 경험해보자고 덤벼들었던 직장인의 시작이 이렇게 30년째 월급쟁이로 살고 있다.


30년의 직장생활 중 아이러니하게도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IT관련 업무를 20년 넘게 하고 있다. 그야말로 어쩌다 직장생활, 어쩌다 IT관련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애당초 나에게는 일을 하는 데 있어 적성이란 맞지 않는 것이었다. 주어진 일을 소신껏 최선을 다해 하다 보니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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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 선생은 전라도 강진 유배지 생활을 할 때, 풍비박산(風飛雹散) 난 집안을 책임져야 할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누구든 한 가지 일을 들이파면 그 일에 대해서는 당할 자가 없게 될 것이다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는 직장인이 얼마나 있을까?

직장인의 정신적 불행은 일 속에 내가 없기 때문이다. 일 속에 내가 있는지 깊숙이 들어가 볼 필요가 있다. 좋아하지 않는 일에서 열정을 오래 유지하는 경우는 없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일은 곧 밥이기 때문에 그것은 취향의 문제도 적성의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고하신 변화경영연구소의 소장이자 작가였던 구본형 선생은 그의 저서 필살기에서 수동적 월급쟁이에서 1인 기업가로 거듭날 것을 강조하였다. 나는 시키는 대로 일하는 수동적 월급쟁이가 아니라 내 일을 비즈니스로 전환한 1인 경영자라는 정신적 혁명이 필요하다. 나는 이회사의 경영자이며 담당자이며 책임자이다. 내가 곧 회사다. 이것이 바로 1인 기업가 정신이다. 1인 기업가란 특화된 서비스를 계약에 따라 제공하는 전문가들이다. 조직으로부터 홀로 떨어져 나와 일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한 회사에 속해서 그 회사만을 위해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 역시 1인 기업가다. 1인 기업가란 어디서 어떤 형태로 일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정신적 태도다. 어디에 있던 스스로 경영자라 생각하고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을 비즈니스라고 생각하며 차별적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자신의 강점을 활용하는 사람은 모두 1인 기업가인 것이다.


내가 맡은 일에 수동적으로 끌려가지 말고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일을 지배하려는 움직임, 사르트르가 말하는 앙가주망과 일맥상통(一脈相通)하는 말이다.


필살기01.jpg (필살기 / 구본형 / 201003)

회사는 직원에게 일을 맡기면서 마치 그가 회사의 주인인 것처럼 차별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주기를 기대한다.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말은 스스로 일을 주도하는 경영자의 마음으로 생각하라는 뜻이다. 1인 기업가는 반드시 차별적인 서비스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차별성이 없는 기업들이 몰락해가듯 1인 기업가 역시 노동 시장에서 도태된다. 우리는 스스로를 고용할 수 있어야 한다.


8년 전 내가 지방에 있는 공기업에서 컨설팅을 할 때 일손이 부족해 아르바이트생을 쓴 적이 있다. 그 지역에 있는 대학을 갓 졸업한 그 학생은 내가 시키는 일만 하지 않았다. 아르바이트 학생에게 몇 개의 업체를 지정하여 사례조사를 맡겼다. 그러나 사례 조사를 한 학생은 내가 지시한 업체에 대해서만 조사하지 않고 스스로 유사한 업체를 더 조사하여 내게 주었다. 이런 것이 주도적인 일을 하는 자세다. 일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도적으로 일을 끌고 가는 것이다. 수동적으로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가 컨설턴트가 되어 전문가다운 리포트를 해 준 것이다. 그 아르바이트생은 지금 나랑 같은 직장에서 7년째 일하고 있다.


직장인에게 회사는 고객이다. 고용이라는 계약관계를 통해 나의 서비스를 장기적으로 사준 고객이 바로 회사이다. 회사는 모든 직장인들의 고객이며, 아울러 회사의 고객 역시 직장인이다. 직장인과 회사는 서로 계약에 의해 비즈니스를 하는 관계이다. 적성보다는 나를 고용한 회사가 요구한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도록 프로정신을 발휘하여 적응하는 것이다. 만일 일의 중요도에 관계없이 급박함에 맞추어 닥치는 대로 일을 처리해낸다면 그것은 잡업이지 경영이 아니다. 따라서 내 일을 경영한다는 것은 고객의 요구에 상응하는 경중에 따라 내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우선순위와 품질을 관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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