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직장
직장을 선택하는 기준은 뭐가 있을까? 예나 지금이나 직장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월급’이다. 따라서 직장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고연봉과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하는 직장을 선호하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기업문화, 특히 회사의 입장에서 많은 인력을 관리해야하는 대기업의 경우 연봉은 ‘협상’의 대상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근속 기간과 업무 성과에 따라 상승 비율이 칼 같이 정해 져 있기 때문에 연봉 협상 기간에 대부분의 직원들은 자신의 연봉을 ‘통보’ 받는다. 실제로 나도 20년 이상 대기업 생활을 하는 동안 2000년 초부터 시작된 연봉제도 하에서 단 한 차례도 협상다운 협상을 해 본 적이 없다. 따라서 같은 회사 소속 직원들끼리는 큰 이변이 없다면 연봉의 높고 낮음이 연공서열에 비례하게 된다. 동종업계의 다른 회사에 근무하는 직원들끼리는 연봉이 소속된 ‘회사’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 이직이 비교적 자유롭지 않은 문화 때문이다. 우리의 전통적인 기업문화에서 연봉은 회사에서 정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연봉을 많이 주는 회사일수록 좋은 직장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점점 이직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고, 이직 빈도가 늘어나면서 위와 같은 인식이 점차 변하기 시작한다. 연봉도 철저히 시장 논리에 따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2021년부터 시작된 IT 인력난으로 급격한 연봉상승 현상을 목격하게 된 직장인들은 더 이상 연봉이 다니고 있는 회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특정 시기에 대세로 떠오르는 산업과 직업이 생겨났고, 내가 해당 산업에 종사하면서 협상의 카드가 될 수 있는 기술력과 능력만 있다면 연봉은 얼마든지 협상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따라서 지금 받고 있는 연봉에 대해 불만이 있다면 한번 쯤 본인의 능력과 경쟁력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연봉은 당장 불만족스럽게 받아도 직장 자체는 ‘좋은 직장’이 있을 수 있고, 반대로 높은 연봉에도 불구하고 직장 자체는 ‘좋은 직장’이라 말 할 수 없는 상황도 있다. 높은 연봉이 좋은 직장을 선택하는 우선순위에서 밀린 또 다른 이유로는 월급이 주는 만족감 자체가 과거에 비해 줄어든 현상도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부동산 가격과 물가 때문에 수도권에 위치한 회사에 다닐수록 ‘월급’ 모아서 집 사는 것이 꿈같은 이야기가 되고, 아무리 높은 연봉을 받아도 의식주 해결이 팍팍하기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렇다면 높은 연봉 외의 ‘좋은 직장’을 선택하는 조건은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바로 ‘존중과 대우’를 받으면서 일한다는 느낌이다. 직장에 한 번 뿌리 내리면 퇴직할 때까지 충성을 바쳐서 일한다는 이전 세대들과는 달리 MZ세대라 불리는 요즘 세대들은 직장과 자신을 동등한 위치에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직장은 철저하게 내가 받는 급여만큼 일하는 곳이며, 직장에 대한 필요 이상의 충성심이 나의 미래를 책임져주지 않는 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또한 MZ세대들은 앞으로 국민연금 수령이 불투명하다는 전망도 있어 더욱더 직장에 대한 충성심은 낮아지고, 오히려 직원이 회사에 보여주는 충성심만큼 직장도 직원에게 충분한 존경과 대우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2019년부터 시작된 3년간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특수 상황을 경험한 이후로 일정한 공간에 모여 일하는 직장의 문화도 비접촉 일터가 늘어나는 등 변화가 생겼고, 비슷비슷했던 회사들의 복지가 회사별로 각각 세분화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렇게 차별화된 복지는 ‘블라인드(Blind)'라는 익명 커뮤니티를 통해 다른 회사 직원들과 활발하게 공유된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와 비슷한 수준이라 여겼던 다른 회사의 친화적인 복지와 우대정책을 보고 있다가, 우리 회사가 그런 점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면 그 직원은 급격한 박탈감을 느끼고 이직을 고려하게 된다. 또한 회사가 나를 대하는 방식이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소모품‘ 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 그 직원은 그 동안 세상물정 모르고 바보처럼 일만 했구나라는 무력감과 상실감을 느낀다. 결국은 회사가 시도하는 모든 일들에 시큰둥해지며 평소에 열심히 일해겠다는 근무 의욕은 저하되고 조만간 이직을 하게 된다.
이처럼 변하는 인식에 따라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고 충분한 동기부여를 하기위해 회사들은 ‘좋은 직장’이 되는 방향으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 회사 차원에서 차별화된 복지를 개발하여 ‘특별히 베푸는 것’이 아닌, ‘직원들이 회사에 특별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평소에 직원들을 통제하고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보기 보다는, 언제든지 소통과 동기부여가 필요한 개개인의 인격체로 대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차별화된 복지정책이 오히려 회사의 브랜드가 되어 회사를 홍보하고 회사의 발전에 기여하여 직원과 회사가 동반성장하는 모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다양한 선택기준을 이야기해도 현실적으로 취업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보면 선택의 폭이 좁은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직장을 선택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삶에 대한 가치관과 철학을 정의할 필요가 있다. 돈보다는 내가 하고 싶고 원하는 일을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즐거움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그에 맞는 직장을 선택해야 한다. 반면에 그 무엇보다 돈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연봉이 높을 곳을 골라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내가 받는 첫 연봉이 앞으로 직장에서 내 연봉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본인 스스로도 연봉에 맞춰 일을 하게 되지만, 회사 입장에서도 첫 연봉에 의해 그 사람을 대우하는 정도와 승진, 연봉 상승에 대한 척도로 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내 경험상 어느 직장을 선택하느냐와 어떤 직장에서 일하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월급받는 직장인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 직장이든 내가 할 수 있는 권한과 혜택은 한계가 있는 법이고, 연봉의 많고 적음도 그 닥 중요치 않음을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어차피 직장인으로 생활하려면 직장을 선택하거나 바꾸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직장이나 일의 관점을 바꾸는 편이 훨씬 편하다. 다음부터는 그런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어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