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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와 임기응변에 대하여

장개석과 모택동

by 이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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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의 사귐은 물처럼 담담하고, 술로 사귄 친구는 믿음직하지 못하다. 세상사는 언제나 두 측면을 갖고 있다. 염결(廉潔 : 청렴하고 결백함)이 있으면 반드시 탐오가 있고, 탐오(貪汚 : 욕심이 많고 하는 짓이 더러움)가 있으면 염결이 있기 마련이다. 염결만 있고 탐오가 없어도 안 된다. 한 손은 염결이고 다른 한 손은 탐오다. 이게 바로 '대립물의 통일'이라는 것이다. 세상사란 모두 대립물의 통일이다.




중국은 신해혁명 이듬해인 1912년 원세개가 초대 총통으로 취임한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는 1949년까지 ‘중화민국’이 공식 명칭이었다. 이 사이 중화민국을 대표하는 총통과 이를 뒤에서 조종하는 실세 군벌의 면면은 수시로 바뀌었다. 북벌이 완성되는 1928년 이후에는 대략 장개석으로 고정됐으나, 중일전쟁이 시작되는 1937년 이후에는 모택동이 새롭게 부상해 남쪽의 장재석과 천하를 양분한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각각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를 내세우며 일면 협력하기도 하고, 일면 치열하게 싸웠다. 그러나 그 본질을 보면 왕조 교체기 대마다 빠짐없이 등장한 군벌 각축에 지나지 않았다. 실제로 항우와 유방이 천하를 양분해 다툰 초한지제와 여러모로 닮았다. 장개석이 유비와 제갈량을 좋아하고, 모택동이 조조를 좋아하는 것도 결코 우연으로만 볼 수 없다.


두 사람이 신봉하는 학문도 차이가 있었다. 장개석은 주역의 신봉자였다. 사서삼경 중 최고의 경전을 주역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우주의 순환 이치와 왕조의 흥망성쇠 이치를 설명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를 점복 지침서 정도로 폄하하는 경우가 많다. 주역은 비록 태고 때부터 전해져온 점복에 대한 주석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는 하나 점복과는 하등 관련이 없다. 이는 기본적으로 저세와 난세의 시기에 군자와 소인의 상호 간계를 유형화해 놓은 책이다. 일명 군자학으로 표현되는 유학이 주역을 최고의 텍스트로 숭상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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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의 전달하려는 핵심은 세상의 모든 군자들에게 잘나갈 때 일수록 더욱 조심하고, 불우한 처지에 놓여 있을지라도 낙담하지 말고 더욱 실력을 닦으라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주역은 이를 '중정(中正)'으로 표현했다. 중용에서 역설하는 중화 내지 중용과 그 뜻이 같다.


이는 단순히 가운데 위치해 바른 길을 지켜나갈 것을 주문한 게 아니다. 여기의 ‘중’은 사계절이 순환하듯 사람의 일생도 늘 부침이 따르는 만큼 잘나갈 때일수록 더욱 조심하고, 불우한 처지일수록 더욱 노력하라고 주문한 것이다. ‘정’은 군자가 취사선택해야 할 구체적인 방략을 언급한 것으로, 대인과 소인이 번갈아가며 득세하는 치세와 난세의 흐름을 좇아 현명히 대처하는 것을 말한다.


장개석은 주역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이에 대한 주석서를 펴낸 것은 물론 죽을 때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다. 주역을 그토록 종하한 장개석은 자신의 본명이기도 한 중정에서 중은 제대로 파악했지만, 정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치 못해 불행하게도 끝내 모택동에게 패하고 말았다.


주역은 난세의 시기를 소위 ‘비괘’로 표현했는데, 하늘과 땅이 서로 교신하지 못해 모든 것이 막힌 상황을 말한다. 일종의 소통 부재를 뜻한다. 원인은 소인이 득세해 천하에 횡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난세의 시기에는 군자가 ‘정’을 고집하는 것은 불리하다. 장개석은 ‘난세의 시기일지라도 군자는 정도를 지키는 것이 이롭다’라는 잘못된 해석을 믿었다.


난세의 시기, 즉 소인배가 득세한 불리한 시기에는 군자가 자신이 믿는 정도만을 고집스럽게 밀어붙일 경우 이는 패망의 길로 이어질 뿐이다.


사실 장개석이 당시의 ‘중화민국’이란 천하를 장악할 때는, 상해의 암흑가 인물들과 어울리며 파락호(집안의 재산을 몽땅 털어먹는 난봉꾼) 생활을 하며 손문의 측근 경호원으로 발탁된 후 탁월한 임기응변의 책략을 구사했다. 산서군벌 염석산과 봉천군벌 장작림을 감언이설과 뇌물 공세로 끌어들여 마침내 북벌을 성사시키고, 손문 부인인 송경령의 거센 반발을 물리치고 그녀의 여동생인 송미령과 결혼할 정도로 치밀한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왜 모택동에게 다잡은 천하를 끝내 내줘야만 했던 것일까?


그는 천하를 거머쥐기 전까지만 해도 최고 수준의 면후심흑(뻔뻔하고 음흉함)을 구사했던 사람이었으나, 천하를 얻은 이후로는 문득 정도경영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리하여 휘하에 있떤 수백만 명의 국민당군은 제1차 국공 내전 당시 대장정이 끝날 무렵 불과 4만 명밖에 되지 않았던 모택동의 홍군에 패했다. 그 이유는 주역에서 말하는 ‘중정’에서 ‘중’은 제대로 행하였으나, ‘정’을 불변의 이치로 잘못 해석한 것이다.


주역의 중정은 우주의 삼라만상이 쉼 없이 번역하며 순환한다는 기본 전제에서 나온 것이다. 결코 어떤 불변의 이치 내지 진리를 전제로 한 게 아니다. 때와 장소에 따른 무궁무진한 응변이 번역의 이치다. 이는 우주 만물이 예측 불허의 온갖 변환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주역을 통해 사주팔자를 논하고, 우주의 섭리를 말하고는 있으나, 각자의 처지와 주변의 여건, 환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행해지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천하를 거머쥐었던 장개석이 소규모 농민 반란군 수준에서 시작한 모택동에게 끝내 천하의 강산을 넘겨주고 섬으로 쫓겨 들어간 것은 지금도 많은 학자들의 탐구 대상이다. 그가 중정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심봉한 이유가 크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는 기독교로 개종한 뒤 난관에 부딪칠 때마다 간절히 기도를 올리며 ‘정도’ ‘정의’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더욱 굳혀 나갔다. 전황은 날로 불리해져가는데 임기응변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었다. 도덕적으로 더욱 선하고 순후해졌는지는 몰라도 정치 지도자로서의 위신은 더욱 초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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