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정보혁명시대
어느덧 우여곡절이 많았던 2024년도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우리는 늘 이맘때면 묵은 해를 보내며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한다. 내일이면 변함없는 하루가 시작되더라도 우리가 갖은 이유를 되며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은 여전히 희망이 있어야 살아가기 때문이다. 나 또한 험난한 한 해를 마무리하며 조용히 도서관 구석에서, 한 해를 그리고 나를 성찰하고 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보낼 새해 인사카드도 AI의 힘을 빌려 만들고, 간단하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새해를 조용히 맞이하는 의식이 된다.
우리는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라는 새로운 정보혁명(Information Innovation) 시대에 살고 있다. 문자와 인쇄술이 정보의 보존과 재생에 있어서 그 이전의 구술 방식이 이루지 못한 인류사적 혁명을 가져왔다면, 디지털 전환의 정보혁명은 우리의 산업, 교육, 문화, 사회 등 생활 전반에서 모든 정보 처리 과정을 컴퓨터 알고리즘 기반의 디지털로 변환하여 저장하고 유통하며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 있다.
20세기에 등장한 정보통신기술(Information & Conmmunication Technology)은 사물이든 생명체든 상관없이, 텍스트, 음성, 이미지, 동영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실체들을 디지털 코드화된 데이터로 전환하여 컴퓨터 메모리에 저장하고 편집하고 전송할 수 있게 했다.
ICT에 의한 정보혁명은 단지 정보의 저장과 전달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정보 환경 전체를 재구성하면서 우리의 삶이 의존하는 환경, 인간으로서의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 세계와 사회에 대한 우리의 관계 방식 등을 총체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우리의 삶은 이제 디지털 정보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지구상에서 생물이 살아가고 있는 영역이 바이오스피어(Biosphere)라면, 이제 인간은 생물학적 차원을 넘어 인포스피어(Inforsphere)에 거주한다. 보이지 않는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통해 인간과 인간만이 아니라 인간과 사물 그리고 사물과 사물 사이에도 정보가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디지털 정보혁명이 몰고 온 일상의 변화는 더 편리해진 디지털 자동화에 그치지 않고, 인간을 비롯하여 사물, 기계, 물질 등이 동일한 데이터로 하나의 집합체를 형성하는 정보의 재정립, 자연과 인간, 생명과 비생명,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넘어서는 탈인간세계를 선언한다. 인터넷, 빅데이터, AI에 기초한 플랫폼 서비스가 인간 세상에 유용한 정보, 즉 언제 어디서나 제공되는 옴니채널(Omni Chanel) 서비스로 엮여지는 시대, 각자의 손에서 떠나지 않는 스마트폰이 보여주는 초연결 시대에 인류의 존재감은 과거에 비할 수 없고, 그야말로 인간은 이제 정보를 생산하고 소통할 줄 아는 특별한 생명체가 아니라, 인포스피아에 거주하는 비인간적 존재자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정보 행위자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인포스피아는 ‘정보’가 우리 삶의 모든 분야에서 지배적인 개념임을 보여준다. 정보는 자연, 물질, 생명, 인간, 기계 등 실재의 모든 영역을 통섭하여 모두를 존재하게 하는 하나의 커다란 공간이 되었다.
과거의 산업혁명으로 이끌어 내었던 문명은 오로지 인간을 위한 도구로 존재하였다. 컨베이어 시스템 같은 자동화 도구를 통해 잠시 인간이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하는 경우는 있었어도, 기계가 인간을 통제하거나 지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컴퓨터로 시작된 정보의 디지털 혁명은 물건과 기계에 정보와 AI라는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무기를 장착함으로써 더 이상 인간이 기계를, 사물을 과거처럼 지배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서고 있다. 스마트폰처럼 스스로 만든 도구에 지배당하는 구조가 보편화되면서, 인포스피어 영역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인포스피어 시대에서는 정보와 기술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는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 모색은 물론 그 어느 때보다 철학적 사유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제 인간은 다양한 정보 행위자들과
연결되어 살아가는 정보 유기체다.
- 플로리디 -
컴퓨터나 인터넷, 스마트폰이 없는 우리의 일상은 더 이상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되었다. 21세기 석유로 불리는 빅데이터의 확대와 기계학습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인공지능의 눈부신 발전은 그러한 의존을 더욱 심화할 것이다.
플로리디에 의하면 인포스피어는 ‘가상공간’의 개념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인포스피어는 ‘물질’ 세계에 의해 유지되는 가상의 환경이 아니라, 점점 더 정보적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세계 그 자체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즉 인포스피어는 단순히 온라인의 사이버 공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프라인과 아날로그 공간 모두를 포함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실질적인 생활환경 전체를 총칭한다. 오늘날 우리의 물리적 몸은 오프라인 공간에 있지만, 우리는 또한 데이터 형태로 구글이나 클라우드, 카카오톡 같은 SNS 공간에도 존재하며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기기를 통하여 언제나 연결되어 있다.
그에 따라 여기와 저기 사이의 경계도 빠르게 무너졌으며, 과거처럼 제한적 공간 속에서 키보드나 스크린을 통해 접속하였던 것에서,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접속할 수 있는 공간, 인포스피어 세계에서는 디지털-온라인 세상이 아날로그-오프라인 세상으로 흘러 넘쳐서 융합되고 있다.
우리는 상호 연결되고 정보적 환경에 임베디드되어 있는 정보적 유기체이다.
우리는 자연과 인공의 다른 정보 행위자들과 인포스피어를 공유하며,
이 정보 행위자를 도한 노닐적이고 자율적으로 정보를 처리한다.
- 플로리디 -
과거 역사를 보면 코페르니쿠스, 다윈, 프로이트 같은 선구자들은 인간중심주의 사상에 균열을 내어 왔다. 코페르니쿠스는 인간을 중심으로 태양과 달이 돌고 있다는 믿음을 깨우쳤으며, 다윈은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믿음을 진화론적 관점으로 무너뜨렸으며, 프로이트는 에고라는 자아개념으로 인간의 신비주의를 사라지게 하였다. 오늘날 디지털 정보혁명 시대가 만들어낸 인포스피어 세상에서는 더 이상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 아닌 하나의 객체로 전락시켰다.
ICT는 정기적으로 우리를 능가하고 앞지른다.
그것은 우리보다 더 잘 ‘계산’한다.
그 때문에 ICT는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을 변경하거나 창조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몸의 어떤 생명공학적인 변화가 아니라,
더 심각하고 현실적으로 우리의 환경과
그 안에서 작동하는 행위자의 급진적인 변형을 통해
우리 자신을 인포그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 플로리디 -
기계와 생물유기체의 합성물을 뜻하는 사이보그(Cybernetic Organism)는 공상과학 소설에서나 나옴직한 용어였으나, 이제 손과 발이 없는 장애인들에게 인식하거나, 심장이 고장난 사람들을 위해 인공심장을 이식하는 등 자연스런 현상이 된 현재의 세상처럼, 인포스피어 세상에 사는 현재의 인간은 자연스레 인포그(Infosphere Organism)로 명명하는데 거부감이 없을 것이다.
다만, 사이보그처럼 기술이 단순히 인간의 결여된 부분을 보충하는 도구나 보철이 아니라,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로 설명된다. ICT 기술의 발전은 단순히 도구의 발전이 아니라, 인간 정체성의 변화 즉 ‘나’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제반 요소들의 변화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인포스피어는 생명체가 살아 숨 쉬는 대기 환경처럼 인포그로서의 인간이 디지털 문명의 일상적 생활을 영위하는 기술적 생태공간이다. X세대나 Y세대는 아이가 들면서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접한 디지털 이민자 세대라고 한다면, 199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Z세대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다음에 태어나서 디지털이 존재하지 않은 아날로그 세상을 거의 경험해 보지 못한 세대이다. 말하자면 인포스피어의 디지털 네이티브인 것이다.
인포그나 인포스피어의 관점에서 보자면, 기술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 혹은 환경의 일부인 동시에 인간 정체성의 핵심 조건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인간과 기술의 관계가 주체와 객체, 온라인과 오프라인 등 이분적인 대립적 구도를 통해서 이해되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인포스피어에 거주하는 인포그로서 우리 인간은 정보적 환경이나 다른 행위자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정보사회에서 당면하고 있는 도전들은 인공지능의 확산에 따른 일자리 문제, 프라이버시 침해나 해킹과 같은 정보적 일탈, 정보격차에 따른 불평등과 디지털 디바이스의 문제, 알고리즘의 투명성이나 공정성, 알고리즘 의존도의 증가에 따른 인간 자율성의 축소와 같은 것들이다. 이들은 모두 정보와 통신 기술, 즉 데이터의 기록, 전송, 처리 기술과 연관되어 있거나 그로부터 파생되는 문제들이다. 이런 문제들에 우리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처하는지에 따라 미래 인포스피어의 모습이 결정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끝없는 통찰과 인식 속에서 인간과 기술의 얽힘 속으로 어떻게 융화되어 살아갈 것인가 철학적 사고를 키울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과 같은 디지털 기술은 과거 증기기관이 우리 인간의 본원 활동을 변형시킨 것처럼 인간 삶의 본성을 변화시킬 것이다. 산업의 변화는 말할 것도 없고, 직업, 교육, 사회, 문화 모든 인간의 행동은 통제되고 변화할 것이다. 따라서 인포스피어 시대에 살아가는 인포그로서 인간 본연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한 본질적 윤리적, 정치적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의 미래는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