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는 빈틈이 있다
모든 것에는 빈틈이 있다. 그 빈틈으로 빛이 들어온다.
-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 / 캐나다 가수 겸 시인 -
묵직한 저음으로 시작하는 코헨의 ‘I’m Your Man’은 압도적으로 어둡고, 서정적이며 낭만적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헌신적인 마음을 담은 이 곡은 사랑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칠 각오를 복잡한 감정과 욕망을 담아 솔직하고 강력하게 표현하고 있다. 코헨이 왜 최고의 노래하는 음유시인인지를 보여준 대표곡이라 할 수 있다.
"If you want a lover
I’ll do anything you ask me to
And if you want another kind of love
I’ll wear a mask for you."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이 어떤 모습이든 될 수 있다고 고백하며, 상대방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자신을 기꺼이 바꿀 준비가 되어 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그야말로 헌신적인 사랑과 욕망에 대해 강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의 읆조리든 내뱉는 어둡고 습하며 묵직한 음색은 사랑이 얼마나 달콤하고, 탐욕적이며, 비열하고, 슬픈 것인지 적나라하게 표현해 주고 있다. 이처럼 사랑은 자존심을 버리고 모든 것을 바쳐야 얻을 수 있는 헌신의 산물이기도 하다.
인생에서 사랑만큼 헌신하며 추구해야 하는 것들은 많다. 하지만 그것이 행복이든, 건강이든, 성공이든, 권력이든 영혼과 육체를 갈아 넣어 모든 것을 바쳐야 진정으로 얻을 수 있으니, 싶지 않은 삶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코헨은 ‘빈틈’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모른다. 빈틈은 곧 여유이고, 희망이며, 살만한 가치가 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다보면 하루도 숨막혀 살 수 없다. 살아남기 위해 모두 전쟁터에서 피터지게 싸우다보면 살아남는자는 소수요, 대다수는 지옥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그리 만만한 것인가? 한 가지 방법만 존재한다면, 극단적인 삶밖에 없으리라, 다행히 여기저기 ‘빈틈’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잃고 포기하려는 사람이 한 순간을 참고 견디고 인내하며 기다린 끝에 희망을 보고, 돌파구를 찾아 성공한 사례는 많으며, 절망 속에서 조국을 버리고 이국 멀리 타지로 떠난 사람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더 많은 기회와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흔하게 보게 된다. 그래서 인생은 어떠한 경우에도 절망하거나, 실망할 필요가 없다. 모든 것에는 빈틈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빈틈으로 빛이 들어온다.
안도 다다오는 일본이 자랑하는 최고의 건축가이다. 그의 건축물은 매우 절제되어 있으며, 실용적이고, 자연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제주도 섭지코지에 있는 ‘글라스 하우스’가 그의 작품이다. 유리를 통해 자연과의 교감을 강조하고, 바다를 바라보는 건물 앞으로 지그재그 정원을 배치하여 거친 제주 바람과 파도를 교묘하게 포용하고 있다.
안도 다다오는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으며, 정식으로 건축을 공부하거나 훈련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배웠고, 최종학력은 고졸이다. 공고를 졸업하고 목수로 일하던 1962년, 근대 3대 건축가 중 한 사람인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에 감명 받아 건축공부를 하러 파리로 간다. 1969년까지 유럽을 돌아다니며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하고 일본으로 돌아와 ‘안도 다다오 건축연구소’를 설립한다. 학력도 사회적 기반도 없어 좌절과 실패를 겪었지만, 10년 만에 1979년 일본건축학회상을 타면서 건축가로 인정받게 된다. 다시 10년 후인 1989년 프랑스건축아카데미 대상을 타면서 세계에서도 인정받는다.
안도 다다오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할머니 손에 자랐다. 깨진 창문으로 들어오는 혹독한 삭풍에 덜덜 떨면서 수없이 많은 오후와 저녁 시간을 나무로 배를 만들고 녹인 유리를 불고 금속을 만지며 보냈다. 그는 자기가 직접 건물을 짓겠다는 꿈을 꾸었다. 가난하여 정식으로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은 주어지지 않았지만, 절망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였다. 그런 그의 삶이 철학이 되어 건축물로 표현되었다. 제한된 예산으로 제한된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역량으로 찬사를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오로지 그가 완벽주의를 철저히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부분에서 자제력을 발휘하려면 다른 부분에서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최고를 지향해야 할 때와 그만하면 만족해야 할 때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자제력을 발휘한다. 내구성과 디자인을 우선시하는 동시에 편안함에서는 타협을 봐야 한다. 그의 독특한 스타일은 형태에 있어서 흠잡을 데 없지만, 기능에서는 덜 엄격하다.
안도의 대표적 건축물은 1989년 오사카에 지은 ‘빛의 교회’다. 그는 대부분의 건축가가 명백한 결함으로 간주했을 부분을 설계의 핵심으로 만들었다. 바로 외부에 개방되도록 한 벽 틈새다. 그러나 그 틈새는 놀라운 쓰임새가 있다. 십자가 모양의 틈새를 통해 빛이 들어오게 한다. 교회 측이 그 틈새로 찬 공기가 들어온다고 우려하자 안도는 틈새를 유리로 막는 선에서 타협했다.
완벽주의는 흠잡을 구석이 없고 싶은 욕구다. 결함 제로가 목표다. 잘못도 결함도 실패도 없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세상은 모호하고 허점 투성이다. 예측 가능한 것들, 시험이라는 내 힘으로 통제 가능한 보호막을 떠나면 ‘정답’을 찾으려는 욕구는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우리는 보통 심미적이고 기술적인 탁월함을 흠잡을 데 없는 결과물 추구와 연관 짓는다. 그러나 위대한 건축가, 무용가, 스포츠맨 등의 습관을 연구한 결과,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게 숨은 잠재력을 실현하는 비결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결함을 감내하는 태도는 초보자에게만 필요한 태도는 아니다. 전문가가 되고 계속 실력을 연마하기 위한 과정의 일환이다. 성장할수록 어떤 결함이 수용 가능한지 잘 알게 된다.
올 해로 설립한 지 10년이 되는 '뮤지엄 산'은 강원도 원주 오크밸리에 지은 자연 속 뮤지엄이다. 설립 초기부터 안도와 같이 작업한 '뮤지엄 산'은 이번 10주년 기념 전시회도 안도와 같이 이벤트를 진행 중이며, 전시회 주제는 '청춘'이다. 안도는 청춘의 상징으로 '풋사과'를 직접 만들어 설치하였고, 그의 청춘 찬양은 나이와 상관없는 정신과 열정으로 표현된다. 풋풋한 상태에 머물고자 하는 열망은 끊임없이 성장하려는 결의, 미완성으로 남고자 하는 열정이다. 여물지 않은 사과는 성장이 끝나지 않았다. 불완전하고 완벽하지 않다. 바로 그렇기에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