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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옥 Nov 13. 2023

'The Reader'는 왜 나의 인생작이 되었나?

영화 그리고 책 리뷰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2009년 제작]

지식과 정보를 취득하는 방법이 유튜브로 넘어온지 오래다. 습관적으로 유튜브를 통해 검색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알게된 영화나 드라마가 뒤늦게 나의 인생작이 되는 경우가 흔해지고 있다. 드라마로는 작년에 알게된 '나의 아저씨'가 그랬다. 5년 전(2018년 작)에 이미 세상에 나와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나, 그땐 나의 관심 밖이였다. 그러나 우연히 유튜브에서 요약본을 보고 거꾸로 완본을 정주행할 정도로 감명깊게 본 드라마였고, 나의 인생 드라마가 되었다. 오늘 소개할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도 우연히 유튜브를 통해 요약본을 보고 나의 인생 영화로 포함되었다.


더 리더(The Reader), 책읽어주는 남자는 독일의 법학자 '베른하르트 슐링크'가 1995년에 쓴 책을 2009년 '빌리 엘리어트'로 유명한 스티븐 달드리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었다. 책은 35개국어로 번역 출간되었으며, 독일어권 문학 작품 최초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고, 1999년 [오프라 윈프리 쇼]의 '북클럽' 코너에 소개되어 미국 내에서만 한 해 1백만 부가 넘게 판매되었다. 영화는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명성과 이 작품을 통해  2009년 61회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받은 '케이트 윈스렛'의 명연기로 나의 인생작으로 등극하였다. 난 곧 바로 가까운 도서관을 찾아 DVD와 책을 빌려 먼저 영화를 보고, 순차적으로 책을 읽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요약해 보려 한다.


{책은 1995년 출간되었고, 영화는 2009년에 제작됨]


책은 총 3부로 나뉜다. 1부는 15살 소년이 36살 여인과 우연히 만나 사랑하고 헤어지는 이야기로, 2부는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그녀의 정체가 제2차 세계대전 시 나치의 친위대 소속으로 일한 과거로 재판을 받는 이야기로, 마지막 3부는 그녀가 감옥에 있을 때 그 소년이 그녀를 위해 책을 읽어 녹음하는 이야기로 엮어있다. 대부분의 영화 스토리는 책을 근간으로 90%이상 동일하지만, 책에서만 표현되었거나, 다르게 해석한 10%가 있다.


영화는 1950년대 독일의 소도시를 배경으로 시작한다. 병(간염)에 걸려 허약해진 한 소년이 학교 가는 도중 급하게 차에서 내려 구토를 한다. 그것을 본 지나가던 한 여인이 소년을 도와 물로 씻겨준다. 그 후 열병을 앓고 난 소년은 그녀를 찾아 고마움을 표시한다. 하지만 그 만남은 두 사람의 운명같은 미래를 결정하게 된다.

[소년은 간염으로 학교가는 길에 차에서 내려 구토를 한다]

소년은 자신보다 21살이 많은 그녀를 만나 그해 봄 폭풍과 같은 사랑의 열병에 빠진다. 여주인공 한나 슈미츠는 소년 마이클(책에선 미하엘이다/ 왜 이름을 달리했는지 모르겠다)과 육체관계를 지속하면서도 자신의 가족이나 과거 이야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녀의 비밀은 헤어지고 난 8년 후에나 우연한 기회에 밝혀진다.


당시 학생이던 소년은 마지막 수업도 빼먹고 매일 전차 검표원으로 일하는 그녀가 퇴근할 시간에 맞춰 그녀의 집을 찾는다. 매일 책을 읽어주고(나중에 한나가 사랑을 하는 조건으로 추가한 것임), 샤워를 하고, 사랑을 나누고, 나란히 누워 있다가 헤어지는 루틴이 하나의 의식이 되었다. 성욕이 왕성한 사춘기 시절에 처음으로 성을 맛본 마이클은 경험이 풍부한 한나의 손길 앞에서 성적인 유희에 흠뻑 빠져든다.

[한나는 사랑의 전제조건으로 책을 읽어주기를 주문한다]

사랑에 빠진 마이클은 한나를 위해 3박 4일이 자전거 여행을 계획한다. 둘 만의 사랑여행을 위해 소년은 자신이 아껴 수집해온 우표책을 헐값에 내다 판다. 소년만 여행의 열병에 걸려 있던 건 아니었다. 한나 역시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부터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할 정도로 들떠 있었다. 그들의 자전거 여행은 모두 꼬마(한나는 소년을 그렇게 불렀다)에 의해 계획되었고, 장소와 먹는 것도 모두 꼬마의 몫이었다. 태양은 빛났고, 날씨는 나흘 내내 화창했다. 성, 낚시꾼, 강위에 떠있는 배, 강가를 따라 한 줄로 걸어가고 있는 가족들, 지나가는 뚜껑열린 자동차 등이 그들이 자전거 여행을 통해 같이 본 것들이다.


달콤한 자전거 여행에 대한 댓가로 소년은 남은 가족들의 부활적 휴가를 위해 7일간 집을 지켜야만 했다. 홀로 집을 지키는 어느 날 저녁, 한나를 집에 초대하여 직접 요리를 대접한다(사실 이 장면은 책에만 기술되어 있다). 집에 초대된 한나는 꼬마가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꼬마의 아버지(철학교수) 서재에 들어가 빽빽하게 꽂혀 있는 책들의 등면을 집게 손가락을 가슴 높이로 들고 천천히 문지르며 걸어갔다.   

[둘의 자전거 여행은 때로는 앞서고 때로는 뒤서며 함께 하였다]
[꼬마의 집에 초대되어 서재 앞에서 찍은 이 장면은 실제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이런 관계는 오래 가지는 못한다. 한나가 어느 날 갑자기 훌쩍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녀가 떠나버린 후 마이클의 가슴속에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응어리로 남는다. 그리고 한 동안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에 사로 잡힌다. 영화에서는 자세히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그녀가 사라지기 직전 수영장에서 학교 친구들과 놀고 있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것을 인식한 마이클이 그녀를 외면해 버리는 장면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나이 차이에서 오는 세대 차이와 자격지심이 그들 사이에 미묘한 균열을 내고 있었음을 느끼는 장면도 보였다.

[그녀는 아무런 말없이 떠났고, 소년은 한동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나가 떠난 뒤 대학에 들어가 법학을 전공하던 마이클은 우연한 기회에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다. 담당 교수가 운영하는 법학 세미나로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하게 된 법정에서 그녀의 재판을 보게 된 것이다. 그녀는 나치 친위대에 들어가 수용소의 감시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다. 그녀의 가장 큰 죄목은 수용소에 수감된 유대인 여자들을 선별하여 가스실로 보낸 것과 이송 중에 한 교회에 가두어 모두 불에 타 죽도록 한 혐의였다.  마이클은 엄청난 갈등에 휩싸인다. 한 때 사랑했던 여인이 나치 앞잡이로 인한 것꽈 무지에서 한 행동 사이의 혼돈 때문이다.

[8년만에 다시 그녀를 만난 장소는 법정이었고, 그녀는 나치 친위대 소속이었다]

그녀는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문맹이었다. 생산직으로 지멘스에서 일하던 그녀가 사무직으로 승진이 보장된 것을 마다하고 나치 친위대로 들어가 수용소에서 감시원이 된 것과 전차 회사에서 검수원으로 일하다 운전사로 승진시키려는 때 거절하고 다른 곳으로 도망친 그녀에겐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바로 어느 누구에게도 숨기고 싶었던 문맹에 대한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 글을 배우지 못했는지 모르지만 그녀는 자신이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는 데 대해서 엄청난 수치심을 갖고 있다. 한나는 법정에서 기소된 다른 여자 감시원들이 그녀가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울 때에도 자신이 문맹이라는 것이 노출되는 것이 두려워 필적 감정을 거부하고 보고서 작성을 자신이 했다고 시인하고 모든 벌을 떠 안으며, 무기징역에 처한다. 그녀는 자신이 문맹이라는 수치심을 당하느니 중형을 받더라도 감옥에 남기를 원했다.

[나치 친위대 소속 감시원으로 일한 한나는 그녀 자신에게 당당했다]

법정에서 같이 기소된 감시원들은 문맹을 감추려는 한나의 약점을 이용해 그녀에게 모두 뒤집어 씌웠으며, 이를 알게된 마이클은 그 사실을 폭로하여 그녀의 형량을 감량해야 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영화에서는 그의 그런 고민을 담당 교수와 상의하지만, 책에서는 철학 교수인 아버지에게 간접적으로 상의한다.

그 결과 그는 재판관을 직접 만나려 갔음에도, 그녀의 문맹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만나 설득하는 일도 하지 않는다. 표면적으로는 그녀가 중형을 받더라도 그토록 지키려는 자존심을 살려주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증인으로 나서는 순간 자신에게 닥쳐올 과거에 대한 실상이 낱낱이 들어나야 하는 것에 대한 부담과 두려움이 더 앞섰던 것으로 보인다. 참으로 비겁한 행동임에 틀림없다. 이런 사실은 평생 그의 업보로 남는다.

[법정에서 그녀는 형량을 낮출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한나는 교도소에 수감되고, 마이클은 그 이후 같은 법학도인 게르트루트와 결혼한다. 하지만 딸 율리아를 낳고 5년 만에 이혼한다. 마이클은 한나와 경험했던 사랑을 잊을 수 없다. 게르트루트한 테는 한나에게서 느꼈던 손길이나 감촉, 냄새와 맛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헤어질 때도 아픔을 느끼지 얺고 헤어졌다.


변호사로 성공한 마이클의 내면 세계는 온 통 한나와의 관계에 대한 기억들로 얼룩져 있다. 그는 현실로 아무리 내달려도 그의 등에 와서 매달리는 과거의 흔적들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결혼하여 딸까지 낳고서 이혼한 그는 결국 한나와의 사랑이 그와 그녀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음을 깨닫는다. 한나가 수감된 지 8년이 지난 시점부터 시작된 책읽기 녹음은 그녀가 석방될 때까지 10년간 계속된다. 그러나 그는 그 동안 한 번도 한나를 찾아갈 생각도 하지 않고 또한 녹음테이프에 녹음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편지도 담지 않는다.

[평생 잊지 못하는 한나를 위해 책을 녹음한 테입을 주기적으로 감옥으로 보낸다]

마이클은 그녀를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을 때 매번 읽어주었던 책들을 다시 그 때로 돌아가 하나 하나 테입에 직접 낭독하여 녹음하였다. 한 번에 하나의 책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려 꼼꼼히 포장하였고, 그녀가 감옥에서 들을 수 있도록 카세트 플레이어도 같이 보냈다. 그녀는 그의 음성을 듣는 동안 행복해 했고, 그에게 자신의 느낌을 전하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그가 보내준 테입을 반복적으로 청취하며, 자신만의 방법대로 글을 깨치기 시작했다. 아무런 답장이 없는 마이클에게 감옥에 있는 한나는 녹음된 테입이 받은지 4년 만에 다음과 같이 썼다. 난 사실 한나가 글을 깨치기 위해 테입을 반복적으로 들으며, 교도서 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the'에 반복적으로 동그라미를 표시하는 장면에서 뭉클함을 느꼈다.


"꼬마야, 지난번 이야기는 정말 멋졌어. 고마워, 한나가."


얼핏보면 그것은 어린아이가 쓴 글씨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어린아이의 글씨체에서 서툴고 어색하게 보이는 부분이 듬뿍 힘이 들어가 있었다. 선들을 모아 글자를 만들고, 글자들을 모아 낱말을 만들기 위해 한나가 극복해야 했을 어려움이 눈에 들어왔다. 마이클은 그녀의 인사말을 읽고서 기쁨과 환희로 가득 찼다.


"그녀가 글씨를 쓸 줄 알아. 그녀가 글씨를 쓸 줄 안다고!"


하지만, 그녀가 무기징형에서 18년만 살고 사면이 되어 풀려난다는 교도소 소장의 연락을 받고 깊은 고뇌에 빠진다. 내면으로는 평생 그녀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헤어나지 못하면서도 여전히 표면적으로는 그녀와 가까이 사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 하며 두려워 한다. 그녀가 나오기 전 거취할 수 있는 공간과 일할 수 있는 곳도 미리 준비하여 그녀가 나오기를 학수고대하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지만, 실상은 그녀가 나오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 했던 것이다.


[출소를 1주일 앞두고 처음으로 찾은 한나의 손을 꼭 잡아주는 마이클]

마이클은 한나를 자신으로부터 멀리 있게 함으로써 그녀를 과거 속에 묶어놓고 이상화된 모습으로 그녀를 사랑하려 한다. 이것은 바로 현실로부터 도피요. 그녀에 대한 부인이요. 배반인 것이다. 이러한 태도를 가지고 그녀가 석방되기 며칠 전에 교도소를 찾은 그의 태도에서 한나가 긍정적인 느낌을 받았을 리는 만무하다. 결국 한나는 석방 예정일 새벽에 교도소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한다.

[한나는 출소하는 날 새벽 자신이 평소 즐겨 읽었던 책을 딛고 자살하였다]

그녀가 남긴 여러 가지 유품들 사이에서 자신이 고등학교 졸업식장에서 학교장으로부터 상장을 받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있는 것을 본 마이클은 눈물을 삼킨다. 한나는 마이클과 첫 만남 후로 한 번도 그에 대한 사랑을 가슴에서 내쫒지도 손에서 놓치도 않았던 것이다.

[한나는 꼬마가 읽어주는 책을 들으며 울고, 웃고, 감동하였다]

남녀간의 사랑과 나치의 시대상,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밑바닥에 자리잡은 인간의 자존심과 배신의 문제가 이 영화의 내적인 근간을 이룬다. 이 영화는 한 소년과 성숙한 여인 사이의 단순한 성적인 사랑이 아니라 보다 높은 차원을 향한 고뇌가 담겨있다. 사랑과 죄의식, 용서와 유죄판결, 그리움과 수치심 같은 상반되는 감정이 주인공의 감정을 끝까지 괴롭히는 주제로 남았다. 이 문제는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철학적인 차원으로 승화한다. 그것은 전쟁에서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여인과 전후에 태어난 소년 사이의 아무것도 모르는 관계라는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그려진다. 전쟁시대와 전후세대 사이의 갈등이 두 세대가 어쩔 수 없이 같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비극에 대한 이야기로 오버랩된다.


죄지은 여인을 사랑한데서 오는 잘못과 책임, 개인적인 사랑과 정치적 갈등 그리고 심리적이고 철학적인 문제 등 인간사의 복잡한 양상이 하나의 파노라마처럼 전개된다.


[두 사람은 진정으로 사랑한 것인가?]

소설의 마지막에 가서 마이클은 과거를 극복하기 위해서 시 소설을 썼다고 밝힌다. 영화에서는 그녀의 죽음이후 딸 율리아와 함께 그녀의 무덤을 찾아, 딸 율이아에게 한나와의 과거를 고백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마이클은 한나와의 과거를 털어놓음으로써 자신의 과거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독일의 과거는 개인의 짐으로서 영원히 지울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난 영화를 보고, 책을 다 읽었고, 또 다른 사람들의 평론을 읽어도 정확히 작가의 의중을, 감독이 전하려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여전히 먹먹하고, 주인공들의 내면세계를 찾아 당분간 헤매게 될 것은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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