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의 중식당 완차이
홍콩의 진짜 얼굴은 네온 불빛이 번쩍이는 대로가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좁은 뒷골목에 있다. 고층 빌딩 사이로 스며든 습한 공기가 벽을 타고 흐르고, 빨래가 머리 위로 늘어진 철사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린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바닥의 물웅덩이가 반사하는 희미한 불빛이 눈을 찌른다.여기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화려한 쇼핑몰의 번잡함이 멀어지고, 오직 사람들의 일상만이 고스란히 남는다. 고양이 한 마리가 쓰레기통을 뒤지며 지나가고, 옆집 아저씨가 문을 열고 나와 담배를 피운다. 이 뒷골목이야말로 홍콩의 숨겨진 심장박동이다. 누구도 모르는 곳에서, 도시가 진짜로 숨 쉬는 곳. - 영화에 등장하는 홍콩의 뒷골목 -
영화에 등장하는 홍콩의 모습은 지극히 인간적인 향수가 있었다. 화려한 빌딩 숲 사이로 이어지는 뒷골목을 통해 뿌연 안개 속을 헤치며 나아갈 때, 바다 냄새와 디젤 연기, 그리고 어딘가에서 피어오르는 마늘 향이 뒤섞여 코끝을 스쳤다. 그 냄새가 바로 홍콩이었다. 도시의 번잡함과 바다의 짠내, 그리고 끊임없이 요리되는 무언가의 뜨거운 기운이 한데 뭉친, 결코 잊히지 않는 냄새. 2012년 여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찾은 홍콩에 대한 향수를 다시 찾게 해준 것은 신촌 뒷골목에 있는 중식당 '완차이'의 '홍합볶음'이었다.
그 맛은 단순한 해산물 요리가 아니었다. 후추의 날카로운 매운맛이 혀를 찌르는 순간, 40대 중반의 내가 침사추이의 야시장 골목을 헤매던 기억이 떠올랐다.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먹던 타이쿤 스타일의 볶음 요리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면 모두들 플라스틱 천막 아래로 몰려들었고, 그 좁은 공간에서 서로의 어깨를 부딪치며 먹던 뜨거운 음식들. 그때도 이렇게 후추가 강렬했다. 홍콩 사람들은 후추를 아끼지 않는다. 차가운 바다 바람을 이겨내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삶의 매운맛을 견디기 위해서인지.
강렬하고 매꼼한 홍합볶음 '차이판'은 묘한 끌림이 있다. 우리나라의 불닭 볶음면이나, 고추장에 버무린 떡볶이의 맛하고는 다른, 습하고 짠하며 코끝을 강하게 자극하는 침사추이의 바닷바람이 같이 느껴졌다.
이 요리는 단순히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홍콩이라는 도시가 내게 남긴 가장 강렬한 추억의 결정체였다. 고층 빌딩도, 네온사인도, 심지어 빅토리아 하버의 야경도 아닌, 바로 이 후추 향과 홍합의 단단한 살결, 그리고 뜨거운 철판 위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접시가 비워질 무렵, 나는 창밖을 보았다. 서울의 겨울 밤, 사람들 숨이 하얗게 피어오르는 거리. 그러나 내 입안과 코끝에는 여전히 홍콩의 여름 밤이 머물러 있었다. 그 뜨거운 안개와 디젤 연기와 마늘 향이.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웃음과 떠들썩함이. 그리고 학창시절 수많은 젊은이들로 밤늦도록 떠들썩하게 막걸리집와 맥주집을 돌아다니며 어울였던, 신촌의 뒷골목이 뿌연 담배연기 사이로 아렷하게 경첩되어 눈시울을 적섰다.
나도 이제 나이를 들은 것인가. 찬란한 미래보다, 외롭고, 고통스럽게, 삶에 대한 의문과 목마름으로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사고하며 논쟁을 벌였던, 선술집의 희미한 불빛이 그리워진다. 그때 같이 마주하며 해답없는 주제로 밤새워 이야기 꽃을 피웠던, 이제는 희매해진 숱한 형체들...
홍합볶음 한 접시가 이렇게 멀리 떨어진 도시의 향수까지 데려다줄 줄은 몰랐다. 어쩌면 진짜 향수는 냄새로 기억되는 법인지도 모른다. 눈으로 본 풍경은 흐려지고, 귀로 들은 소리는 잊히지만, 코끝에 남은 그 냄새만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오늘 다시 배웠다.
다 먹고 나서도 한참 동안, 나는 빈 접시 위에 남아 있는 후추 가루를 내려다보았다. 그 검은 알갱이 하나하나가, 홍콩의 밤하늘에 떠 있던 수많은 불빛처럼 반짝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