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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옥 Mar 29. 2024

삶을 그렇게 심각하게 살지 말았어야 했다

삶과 시간에 대해 생각하며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은 ‘삶을 그렇게 심각하게 살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귀하게 태어났다. 우주 일체론과 양자역학에 의하면 신은 모든 인간을 최고의 존재로 만들었다. 살아가는 동안 최고의 위치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 권리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우리의 눈이 찬란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었겠는가?




오늘날처럼 편리함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불편함을 안고 사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는 당장의 결과와 만족을 기대하며, 실제 가능한 것보다 더 빠른 대답을 원한다. 24시간 수리를 해주는 곳과 연중무휴로 영업을 하는 음식점도 있다. 배가 고프면 24시간 편의점이나 식당에 이르기까지 언제 어디서든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다. 우리의 조급함을 만족시켜 줄 인터넷 쇼핑도 있다. 책을 주문하러 서점에 갈 필요도 없고, 밥을 먹으로 일부러 식당까지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은 기다리는 법을 잊어버렸고, 심지어 기다림의 의미조차 알지 못한다. 원할 때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은 좋지만, 만족을 뒤로 미루고 기다릴 줄 아는 것도 중요하다. 어린아이에게 마시멜로를 지금 한 개를 먹을 것인지, 아니면 15분 후에 두 개를 먹을 것인지 선택하도록 했을 때, 후자를 선택한 아이가 나중에 훨씬 더 훌륭한 삶을 산다는 것이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인내는 아주 중요한 삶의 자세이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는 전자레인지 앞에 서서 초조하게 발을 구르거나, 음식을 기다리는 데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면 화를 내는 사람이 더 많다. 


인내심을 기를 수 있는 비결은 모든 것이 잘 되리라는 믿음, 인간이 모르는 큰 계획이 존재한다는 신뢰를 키우는 데 있다. 아등바등 살아봐야 지나고 나면,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다. 하루종일 종종거리며, 바쁘게 살아보지만, 어제보다 나아질 것 별로 없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도 있듯이, 바쁘고 급할수록 숨을 한 번 몰아쉬고, 천천히 정확하게 제대로 하면,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 



당신은 삶을 위해 얼마나 시간을 할애하는가? 하루에 몇 시간씩 일하고, 얼마를 벌고, 어떤 야망을 이루고 있는가? 삶은 시간이 지배한다. 우리는 시간에 의해 살고, 또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시간 속에서 생을 마감한다. 


시간은 누구나 주어지고, 어떻게 쓸 것인지도 대부분 개인에게 달려있다. 사전에서는 시간을 ‘연속선상의 두 지점 사이의 간격’이라고 정의한다. 흔히 탄생을 삶의 시작으로, 죽음을 삶의 끝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탄생과 죽음은 연속선상의 두 지점일 뿐이다.


아인슈타인은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관찰자에 좌우되는 상대적인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1975년 미 해군은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실험했다. 똑같은 시계 두 개를 하나는 땅 위에 두고 또 다른 하나는 비행기 안에 두었다. 비행기가 15시간 동안 하늘을 날며서 비교해 보왔더니 아인슈타인이 말한 대로 움직이는 비행기 안에서 시간은 더 느리게 흘러갔다. 


똑같은 영화를 감상하는 대도 어떤 사람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보는데, 어떤 사람은 하품을 하며 졸면서 지루해 한다. 이처럼 세상의 모든 시간은 상대적인 것이다. 


[삼체 / 3 BODY PROBLEM / 류츠신 원작 / 넷플릭스 제작]


요즘 넷플릭스에서 1위를 하고 있는 ‘삼체’라는 8부작 SF드라마가 있다. 중국의 류츠신 작가의 원작을 토대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지난 3월 21일 공개되었다. 시간과 우주를 넘나들어 인류가 마주하게 될 운명을 대담한 상상력과 방대한 스토리로 공개하자마자 인기를 끌고 있다. 삼체는 우주에 태양이 3개가 있다는 가설에서 3개의 세상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1960년대 중국의 ‘문화대혁명’부터 2024년의 현재까지의 60년간의 이야기가 담겨 있지만, 공상과학 드리마이다 보니, 허구적인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허구는 아니고, 실제 사실에 모티브를 두고, ‘왕좌의 게임’을 만든 팀(플랜B)이 만들었으니, 믿을 만한 드라마임엔 틀림없다. 원작 소설은 출판 당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그 방대한 스케일에 미국 국정은 너무 사소한 일이 되어버렸다는 농담을 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 삼체에 나오는 내용 중 재미있는 가설이 있는데, 광활한 우주의 규모를 생각할 때 인류처럼 문명이 발달한 생존체가 지구에만 있을리는 없다는 생각으로 지구밖 외계인을 향한 지속적인 구애활동, 예를 들면, 매우 높은 출력의 전파를 쏘아올려 메시지를 보낸다던지, 고도의 주파수 캐치 기계를 활용해 외계로부터의 신호를 받으려 하는 활동 등이다. 그런 활동에도 외계인들이 쉽게 노출하지 않는 이유는 서로 간의 노출을 꺼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우주에 존재해 있는 생물체들끼리는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는 순간 어느 하나는 멸망을 해야되기 때문에 존재를 노출시키지 않는다는 가설이다. 이와 더불어 또 하나의 재미있는 설정은 지구로부터 신호를 받아 지구의 존재를 알게된 외계인이 지구를 멸망시키기 위해 우주함대를 출발시키려 하는데, 지구까지 도달하려면 400년이 걸린다는 것을 알고, 그 사이 인류가 엄청나게 발전하면 승산이 없음을 인지하게 되어, 미리 ‘지자’라는 소립자를 보내, 지구 전역에 있는 입자 가속기를 방해하고, 모든 시스템을 마비시켜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도록 한다는 가설이다.


우주의 기본 구성 요소에 대한 지식을 얻지 못하도록 방해한다는 가설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과학적으로 우주의 탄생과 원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물리적 학문이 ‘양자역학’이다. 외계인들이 지구를 멸망시키기 위해 가장 먼저 물리학자들부터 없애고, 더 이상 문명적 발전을 하지 못하도록, 우주에 대한 이론부터 파괴하고, 자신들이 도달할 때까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일거수 일투적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시스템을 갖춘다는 설정에 놀랍다.


[배움은 끝이 없다]


인간은 과연 얼마나 오래 살고 싶어할까? 만일 200년, 아니 영원히 살 기회가 주어진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기회를 받아들일까? 이런 가정은 생존 기간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사실 우리는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주어진 삶의 기간을 훨씬 연장해서 살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세상이 우리의 이해 수준을 벗어날 정도로 변하고,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게 된 후에도 계속 살아 있다면, 그 삶은 얼마나 공허할까?


남들보다 더 오래 사는 문제를 이야기하기 전에,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면 어떨까? 라는 질문에 설 뜻 ‘예’라고 대답을 꺼리는 것은 그 때의 젊은 패기와 에너지를 그리워하면서도, 그 시절의 방황과 혼돈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삶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더 이상 무의미한 것들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이 시기가 되면 자신이 누구인지 알며,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가도 안다. 일단 이 배움을 얻고 나면, 누구도 그것을 젊음과 맞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다. 나이들어 감은 이런 것이다. 그래서 한 참 젊을 때 당장 무엇을 이를 것처럼 동분서주, 심각하게 살아내는 삶이 부질 없다는 것을 나중에야, 나이들어 더 이상 행동하기 힘들 때쯤 알아내며, 후회한다.


너무 늦게 깨달아서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 경험으로 이해하고 깨달으면 늦는다. 한시라도 미리 알고, 주어진 시간을 유용하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배움으로 깨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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