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은 그대에게
회사의 제품본부 팀원들이 워크삽을 가던 길이다. 차는 GPS를 따라 움직이니 경로를 벗어날 일이 없었지만, 그들의 대화에는 정해진 경로가 없었다. 그들의 대화는 휴가 계획, 아이 양육, 회사 일을 넘나들다가 다시 아이 양육으로 넘어갔고, 또다시 책과 친구, 영화 이야기를 하다가 마지막으로 워크삽을 떠나기 전까지 작업 중이던 새 제품 디자인에까지 다다랐다. 집에 돌아올 때쯤에는 제품에 들어갈 주요 기능이 웬만큼 정해졌고, 이후 팀원들의 도움을 받아 몇 주 뒤에 제품을 출시했다.
어떻게 그들의 대화는 “작은 아이가 이번에 중학교에 들어가”로 시작해서 “다음 분기에는 제품 출시할 수 있겠다”로 마무리될 수 있었을까? 흐름은 전혀 없었다. 다만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의 대화에는 작은 발자국들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부터 여덟 시간 동안 그냥 일 이야기를 해보자’라고 했다면 절대로 이런 대화의 결과를 맞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 번에 하나씩 작은 발걸음을 떼면서 그들은 아주 신선하고 가슴설레는 새로운 아이디어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이것이 문제 해결 과정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특히 '생각 머리'가 활성화되었을 때는 더더욱 그러하다. 한 아이디어에서 연관성 없는 아이디어로 뛰어넘는 비약은 사실상 잘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이미 맞다고 결론지은 것들에 인접한 가능성들을 머릿속에서 굴려보면서 조금씩 위대한 발견으로 나아갈 뿐이다.
당신의 뇌 속 뉴런들은 이렇게 목적을 지닌 채 두서없이 여정을 떠나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생각이 산으로 가는 것'이 한가로움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창의적 해결책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직접적으로 문제에 대해 논의하기 보다는 약간은 비켜서서 어느 정도 두서없는 대화를 차근차근 이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새로운 연결고리를 잇는 것은 대체로 '무의식 세계'에서 일어나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 발견 과정 자체를 서두를 수는 없다. 정보를 분류하고 재조합하는 과정에서 돌파구를 발견하기 위해 가끔은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이 자유로이 흐르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살면서 무언가 우연히 발견했던 경험이 있지 않은가? 질 좋은 수면이나 샤워, 공원 산책 같은 것이 창의적인 통찰력에 불을 지피기 위한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우리의 뇌는 그동안 숱한 시간을 지나오면서 쌓아온 방대한 양의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 무의식 세계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러니 자주 휴식을 취하면서 뇌가 가장 잘하는 활동, 바로 자유로운 여행을 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휴식이나 여행은 여유로운 자만이 누리는 특권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요조건이 되고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2005년 스탠포드 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해고당했던 서른 살 시절의 이야기를 청중들에게 들려주었다.
“실패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된 셈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실리콘밸리에서 도망쳐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차츰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여전히 하던 일에 애정이 있다. 애플에서 쫓겨났다고 해서 그런 생각까지 변한 것은 아니다. 쫓겨났지만, 여전히 애정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롭게 시작해 보기로 했죠.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저에게 최고의 사건이었습니다. 성공에 대한 압박이 사라진 대신, 모든 것이 불확실하지만 새로 시작하면 된다는 가벼운 마음이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그 사건 덕분에 저는 더욱 창조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의 이야기에는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이 꿈꾸는 리더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때로는 나의 찬란한 삶이 주변으로부터 버림받아 외딴섬으로 떠밀려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럴 때 일수록 좌절하지 말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떠밀려 간 곳에서 새로운 비전을 발견할 수도 있다. 멈춰야 제대로 보이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성인으로서의 책임감과 외로움에 준비되어 있는 사람은 없다. 풋풋한 젊은 시절을 내어주고 어른의 삶으로 접어들었다고 해서 나팔을 불며 신나서 떠벌리는 사람은 없다. 서인의 삶이란 경계선도 구분도 없이 그저 길게 이어진 끈과 같다. 그러니, 길을 잃어버리기 딱 좋다.
세상일이란 모두 잘 되기를 원하고 있지만, 오히려 잘 되는 경우보다 뜻한대로 안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인생이다. 원하던 방향대로 가지 못할 때, 우리는 잠시 방향을 잃고 방랑자가 된다. 하지만, 네비게이션이 길을 잘못 찾아 들어갈 때 곧바로 방향을 다시 잡듯이, 대부분 생각 고리를 찾아 다시 방향을 바로 잡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런 방황 속에서 바로 방향을 잡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동안 '경험과 생각' 속에서 축적된 데이터가 남아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