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름다운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가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단순히 생존을 위해 애쓰다 야망을 조금 이루고, 가족을 이뤄, 아이를 낳고 그러다 늙어서 어느 날 사라지는 것?
중국에서 전해 내려오는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이 남자는 자신의 그림자를 경계했고, 자신의 발걸음 소리를 무서워했다. 어느 날 혼자 걷고 있는데 구름이 걷히더니 쏟아지는 햇살이 긴 그림자를 만들었다. 남자는 공포에 떨며 달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그림자로부터 도망치려고, 하지만 아무리 빨리 달려도 그림자와 발걸음 소리를 피할 수 없었다. 남자는 그렇게 달리고 또 달리다가 지쳐 쓰러져 죽었다. 달리기를 멈추고 나무 그늘에 앉아 쉬기만 했다면 발걸음 소리도 사라지고 그림자도 사라졌을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두 가지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한다. ‘괴로운 상태’와 ‘아름다운 상태’이다. 괴로운 상태는 주위에 혼돈의 에너지를 만들고, 아름다운 상태는 삶에 조화로운 일을 불러들인다. 누구나 아름다운 상태에 있기를 원한다. 하지만, ‘아름다운 상태’는 그리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인생수업’의 저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이 세상은 사랑과 두려움으로 채워져 있다’라고 말한다. 나를 비롯해 가족, 연인, 직장 동료, 이웃, 친구 등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으로 대하느냐, 혹은 두려움으로 대하느냐에 따라 세상은 변하고 움직인다. 두려움은 괴로움을, 사랑은 아름다움을 대변한다. 이처럼 우리의 내면에는 ‘괴로움’과 ‘아름다움’이라는 두 가지 근원적인 감정이 자리 잡고 있지만, 사실은 ‘괴로움’ 또는 ‘아름다움’만이 존재한다. 그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둘 중에 한 쪽을 선택해야 한다. 그 곳에 중립지대란 존재하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아름다움의 감정을 선택하지 않으면 자신 안에서 두려움이나 괴로움에서 비롯된 부정적인 감정을 발견하게 된다.
괴로운 상태는 무의식의 영역이다. 인간의 삶에서 축적되고, 오랜 된 습관이 만들어낸 업보이기도 하다. 괴로운 상태에 있으면 고요도 기쁨도 용기도 온전함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이것은 극복 가능한 상태이다. 괴로운 상태에서 벗어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그 상태가 계속 찾아 올 것이고, 결국 늘 슬프거나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날 수 있다. 그렇게 상처 입은 상태로는 물질적 부도 행복도 사랑도 유지할 수 없다. 절박함이 때로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그렇게 이룬 성취는 순간의 만족만 줄뿐이다. 기껏 최고 자리까지 올라가고도 도무지 무엇이 더 소중한지 알 수 없어 방황하며 너무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명상, 기도, 화려한 휴가조차도 화산을 꺼보겠다고 던지는 작은 얼음 조작에 불과하다. 우리에게는 위로 그 이상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변화가 필요가 필요하다.
의심할 여지없이, 괴로운 상태는 파괴적이고 아름다운 상태는 생명력을 주고 원기를 회복시킨다. 괴로운 상태에 오래 있을수록 삶은 더 엉키고 도무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게 된다. 문제가 쌓이고 혼란이 가중되고 혼돈이 커져만 간다. 그런 삶은 끊임없는 전쟁이다.
좌절, 실망, 질투, 미움 등 괴로운 상태가 계속되면 삶이 모든 면에서 엇나가기만 한다. 가족과 싸우고, 직장동료들과 싸우고 사회와도 싸운다. 괴로운 의식의 상태에서는 우주의 모든 힘이 적대적인 것만 같다.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어떤 행동을 하든 삶은 더 심한 혼돈 속으로 곤두박질칠 뿐이다.
아름다운 상태에 있으면 창의성이 발현되어 문제에 대한 놀라운 해결책이 떠오른다. 망가진 관계가 치유되고 이로운 관계가 생겨난다. 생각이 맑아지고 지성은 날카로워지며 마음은 평화롭고 가슴으로 교감한다.
아름다운 상태에서는 갈등을 부르는 혼란이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주변 사람들과 많은 교감을 나누게 되고, 거기서 더 발전하면 평화, 고요, 자비, 기쁨을 느끼고 두려움이 사라지는 초월적인 상태로 깨어난다. 이 상태가 되면 온 우주를 관통하는 생명력의 흐름을 타게 된다. 그리고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그러므로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이 상태가 강력할수록 더 쉽게 의식의 흐름도 바꿀 수 있게 되고, 열망하는 것도 더 쉽게 이룰 수 있다.
괴로움은 감정적으로 매우 불편한 경험이다. 거의 알아차리지 못하고 넘어가는 괴로움으로는 짜증, 걱정, 실망감 등이 있다. 이런 감정을 그냥 두면 두 번째 단계로 화, 불안, 슬픔의 감점이 찾아온다. 이런 감정을 없애는 법도 배우지 못하면 급기야 분노, 원한, 공포, 우울감에 빠질 수 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강박 상태이다.
문제는 누구에게나 있다. 심지어 동식물도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문제를 경험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직장을 잃었다고 스스로 실패자라고 생각하며 종일 침대에서 뒹굴겠는가? 아니면 눈앞에 새로운 기회가 펼쳐지고 있다고 보겠는가? 살고 있는 지역이 지진이나 태풍으로 피해를 입었다면 그런 비극이 또 일어날 것 같아 공포에 질린 채 살겠는가? 아니면 침착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이웃과 사회를 돕고 재건하려 노력하겠는가?
무엇 때문에 우리는 이렇듯 삶에 다르게 반응하는가? 바로 우리의 존재 상태 때문이다. 누구나 살다보면 문제에 직면한다. 가난, 정치적 불안, 사회의 억압, 자연재해 등의 심각한 문제에 직면할 수도 있다.
아름다운 상태는 장벽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문을 열어주며 문제를 정복하게 하고 심지어 가장 큰 문제에도 창조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당신 의식의 그 진정한 힘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가야 할 길이 있다. 그리고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먼저 중요한 결심을 하나 해야 한다. 다름 아니라 앞으로 절대, 단 하루도 고통 상태를 용납하며 살지 않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아름다운 내면의 상태에서 살겠다고 다짐해야 한다.
괴로움 속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은 하루를 낭비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의식 속에서 사는 삶이 진정한 삶이다. 괴롭고 힘든 하루가 나에게 주어진다 해도, 이겨내고, 극복해야 한다. 당장 상황이 좋아지지 않는다 해도, 의식적으로 무장을 해야한다. 그래야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