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라이킷 87 댓글 27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지구별 정착기

<프롤로그-최초의 빛>

by 도란도란 Mar 04. 2025
아래로


그 빛을 본 순간 깨달았다. 빛은 분명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산골 마을의 새까만 밤엔 별이 지천으로 깔린다. 가까이 있는 별은 더 가깝고 멀리 있는 별은 더 멀어 아득하다. 저녁을 먹으면 곧 이부자리를 깐다. 이불의 무게에 여섯 살 꼬마는 잠시 휘청거린다. 덮는 순간부터 작은 몸을 짓누르는 무거운 솜이불이었다. 밤 사이 질식사하지 않는 것이 늘 불가사의였다.     


  “변소들 다녀와.”     


꼬마의 엄마였다. 자기 전의 불문율이다. 변소로 가는 길은 모험이었다. 차고 매서운 바람이 숭숭 들이치는 창호지 바른 문을 열고, 꼬마는 밖으로 나간다. 마루를 밟는다. 나무 마루는 20킬로 남짓의 무게에도 ‘삐그덕’ 소리를 낸다. 까치발을 들고 서너 발이면 봉당 앞이다. 슬리퍼를 신고 마당을 가로지른다. 달빛은 차고 넘쳐 하늘에 번지고 한편에는 별무리의 강이 흘렀다. 온통 까만 세상에 빛들은 더 찬란한 빛을 뿜어냈다. 꼬마는 대문은 잘 닫혔나 확인하고 마당에 서서 뒷산을 두루 훑는다. 그놈들의 눈빛을 찾는다.    

 

꼬마의 할머니가 그랬다. 옛날에 호랑이가 산에서 내려와 집 주변을 한참 어슬렁거리다 돌아간 적이 여러 번 있다고. 꼬마는 믿었다. 할머니는 아주 옛날에 세상에 왔으니 모르는 게 없고 거짓말도 하지 않았다. 언제 또 호랑이가 내려올지 알 수 없다. 꼬마의 가장 무서운 꿈도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거였다. 등에 그놈의 커다란 송곳니가 박히면 얼마나 아플까, 꼬마는 상상만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생태계에선 항상 피식자가 주의해야 한다. 호랑이의 눈빛을 쫓아 산자락 세 곳을 샅샅이 살핀다. 호랑이 눈빛이 보이지 않으면 다음은 ‘괭이’다. 꼬마에게 해를 가할 수 있는 포식자 중 두 번째로 무서운 존재였다.

     

  “괭이가 잡아간다.”     


또 할머니다. 말 안 듣고 말썽 부리고 칭얼거리는 아이는 괭이가 잡아간다. 사실 여섯 살 꼬마는 호랑이보다 괭이가 더 무서웠다. 괭이는 악마의 모습이었다. 입을 쩍 벌리면 양쪽의 날카로운 송곳니, 붉은 혓바닥, 살기를 내뿜는 누런 눈에 허리를 곧추세워 언제든 달려들 기세였다. 호랑이는 물어갈 것 같은데 괭이는 맞서 싸워야 할 것 같았다. 꼬마의 송곳니는 작고 뭉특했다. 애초에 괭이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그놈들의 눈빛이 모두 없음을 확인하면 비로소 변소 가는 길로 접어든다.     


마당의 반은 시멘트다. 잡초와의 전쟁에 일찍이 넌덜머리가 난 꼬마의 부모는 마당에 시멘트를 쏟아부었다. 현명했다. 끝없이 살아나는 존재와의 싸움은 빠른 항복이 답이다. 마당의 딱 반만 시멘트를 부은 것은 꼬마를 사랑이었다. 꼬마가 소꿉놀이를 더 재미있게 하려면, 넘어져서 무릎의 상처가 깊지 않으려면 흙과 풀이 필요했다. 꼬마는 그것을 먼 훗날이 되어서야 깨닫는다. 삶에는 꼭 뒤늦게 깨닫는  있고 늦어질수록 후회도 그만큼의 몸집을 키운다.     


대문 옆에는 비닐하우스가 있고 그 옆이 변소다. 흙과 지푸라기와 나무로 지었고 지붕만 기와였다. 변소의 문은 나무판자 여러 개를 붙여 만들었다. 문을 열면 여기도‘삐그덕’ 소리다. 알전구가 있으나 꼬마는 켜지 않는다. 문을 열어 놓으면 달과 별만으로 빛은 충분했다. 문을 열자마자 정면의 깔때기거미와 눈을 맞춘다. 꼬마의 주먹만 하고 새까만 녀석은 낮에 보면 흠칫 놀라는데, 밤에 보면 까만 세상에서 오히려 영롱하게 빛났다. 녀석의 거미줄 집도 은빛으로 반짝였다. 깔때기거미가 한 마리뿐이었다면 둘은 친구가 되었을 테지만 아쉽게도 그들은 무리였다. 변소 안 여기저기에 은빛 집은 매일 늘어갔다.


정화조도 없이 땅을 깊게 파서 만든 변소는 문을 염과 동시에 지독한 냄새를 풍겼다. 온 가족의 똥이 나날이 쌓이고 쌓여갔다. 이들이 모이고 합쳐지면 귀한 존재가 되었다. 그들의 종착지는 밭이었다. 거름이 되었고 농작물을 탐스럽게 키워 냈다. 세상은 돌고 돌고 또 돌았다.   

  

변소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절대 발을 헛디뎌선 안 된다. 빠지는 순간 똥독에 오른다. 예로부터 똥통에 빠진 아이는 오래 못 산다 했다. 뒷간 귀신의 노여움을 사기 때문이다. 꼬마는 뒷간 귀신님께 소원을 빈다.     


  “뒷간 귀신님, 저를 가엾게 여기시어 똥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또 다른 치명적인 위험도 있다. 똥통의 깊이를 알 수 없으니 질식사도 가능하다. 꼬마의 키는 겨우 1미터 10센티에 불과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똥과 함께 할 수는 없다. 그러니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일을 봐야 한다. 고개를 돌리면 바구니에 얇은 달력을 네모 모양으로 잘라놓았고, 월간지 과학동아가 있었다.


  과학을 느끼는 즐거움, 미래를 보는 창


꼬마는 과학의 즐거움 보단 미래를 보기로 한다. 관심 코너는 스티븐 호킹 박사가 들려주는 우주 이야기였다. 외계인이 지구에 오면 어떻게 될까. 박사는 외계인이 전화를 한다면 받지 않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외계인이 웜홀을 통해 지구로 왔다면 현재의 지구 과학 수준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발달한 문명이고, 지구를 정복하는 건 너무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박사의 이야기에 한참 빠져 있으면 다리에 서서히 쥐가 찾아온다.

똥 구렁텅이에 빠져 똥독에 오르지 않으려면 하던 일을 멈추고 끊어야 한다.


쥐가 오려는 허벅지를 살살 주무르며 신중히, 단호하게 일을 마치고 일어선다. 인간은 때로 꼭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고야 만다. 꼬마도 그러했다. 몸에서 나온 그들이 어떻게 자리 잡아가는지 내려다본다. 아직 몸의 열기가 남아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와 스멀스멀 올라오는 냄새에 꼬마는 흡족한 표정이다.    

 

올 때는 한세월이나 돌아갈 때는 달음박질이다. 한겨울의 추위가 이미 온몸에 파고들었고, 새까만 밤의 공포도 뒤늦게 찾아든다. 마당을 가로질러 호다닥 가볍게 뛰어가던 꼬마가 갑자기 멈추었다. 그리곤 뒤를 돌아 하늘을 보았다. 변소 위에 유난히 밝은 별 하나가 꼬마를 향했다. 별빛이 쏟아져 내렸다. 꼬마의 동그란 얼굴 가득 해사한 웃음이 번지고 별빛 못지않게 빛난다.

 

꼬마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난 저 별에서 왔다!’     


꼬마는 여섯 살이었고 나였다. 나는 별에서 왔다. 고로 난 지구에선 외계인이다. 삶에서 최초로 만난 빛이 그 별의 눈부신 반짝임이었다. 가늠할 수 없는 아득한 거리에서 별은 내게 줄곧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너의 별이야.     


브런치 글 이미지 1




  “이 현, 얼른얼른 안 들어와! 감기 걸릴라.”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지구인 엄마는 무섭다. 쏜살같이 뛰어 봉당을 오르고 까치발로 두 걸음에 나무 마루를 지나 창호지 바른 문을 연다. 솜이불속으로 파고 들어가 얼굴만 빼꼼 내민다.     


  “엄마,  다리 밑에서 주워온 거 순 거짓말이지? 난 별에서 왔어. 그치?”

    

  “어이쿠, 그걸 이제 알았어? 얼른 자. 9시야.”     


내 존재의 어마어마한 비밀을 알아버렸다. 그러나 인간의 아이로 살려면 밤 9시에는 잠들어야 했다.


며칠 후,

나는 전화를 받았다.

받아선 안 된다 바로 전화였다.  

화요일 연재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