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목을 조른다. 숨이 막힌다. 숨 쉬고 싶다. 이러다 죽겠구나 싶으면 주말이다. 많은 양의 비에도 망설임 없이 집을 나섰다. 숨이 끊기기 전에 그곳에 당도해야 한다.
숨을 쉬어야 해.
죽을지도 몰라.
그곳의 문을 열고 빽빽한 서가 앞에 서자 숨통이 트였다. 각 잡고 서 있는 그대들을 보니 살겠다. 이제 살 수 있겠다 싶다.
이곳의 사람들은 앉아 있건 서 있건 모두 그림자 같다. 표정의 큰 변화 없이 잔잔한 일렁임만 있다. 말하지 않아서. 움직이지 않아서 좋다. 그림같이 평화롭다.
이곳만 세상이 멈춘 듯하다.
소음이 허용되지 않는 곳. 그 고요함도 좋다. 번잡한 세상과 단절된 듯, 세상에서 가장 안온한 나의 유토피아.
도서관이다.
창과 창이 맞닿은 모서리 자리. 이 도서관의 명당이다. 앉기 힘든 자리다. 오늘은 운이 좋았다. 냉큼 자리에 앉아 그녀의 책을 펼쳤다. 지난달부터 이 책만 읽고 있다. 재미있다. 일상이 목을 조르니 억수로 재미있지 않으면 활자 자체가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그녀의 글은 가을볕과 바람에 잘 말린 곶감 같아 야금야금 아껴 읽어야 한다. 홀랑 읽어버리면 삶이 낙이 사라져 버린다. 야금야금 깨물어 입안에서 천천히 굴리면 달콤하다. 달콤한 글이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브런치'라는 곳이다. 그녀가 쓴 글을 읽으며 배를 움켜잡고 웃었다. '풋' 하고 웃으면 숨통이 트였고 어느새 '꺄르르' 웃고 말았다. 어떤 글은 숨구멍이다. 그녀는 그런 글을 쓰고 있다.
그녀가 궁금했다. 추측하기 시작했다.
국문과 아니면 문창과다 (확률 90% 이상)
문장을 보건대 등단했다 (확률 99% 이상)
나는 그녀가 몹시 부러웠다. 잘 쓴 글을 보면 부럽다. 나도 이만큼만 쓸 수 있다면, 소원 이뤄주는 악마라도 찾아왔으면 좋겠다.
왜 나에게 안 찾아올까. 오라. 수명으로 거래하자 해도 나는 할 수 있단 말이다!
브런치에 글 쓰던 그녀가 책을 냈다. 한 공모전에서 당선된 것이다. 놀라지 않았다. 아직까지 당선 안 된 것이 더 놀라우니까.
시인이셨다.
문장력이 예사롭지 않더라니.
<현대시학>으로 등단!
부러움은 잠시 접고
글 잘 알아보는 내 눈을 칭찬하며.
그녀가 실제로 근무했던 도서관에 앉아
책을 읽었다.
작가님은 여기가 어딘지 아실까.
도서관은 세상에서 가장 안온하며 세상의 모든 평화를 품고 있다 생각했다. 그러나 도서관 노동자의 시선에선 역동적인 삶의 공간이었다. 도서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일상의 파고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 책을 읽는 이들이 찾으니 점잖은 일만 있을 것이란 건 착각이었다.
도서관은 노동 현장이었다. 대부 업체는 아니지만 일단 책을 대출해 주었으니 이용자가 연체하면 독촉해야 한다.
흥신소 직원은 아니지만 제자리에 없는 책을 찾기 위해선 중요한 단서인 청구기호로 온갖 추리도 한다. 추리 과정이 눈물겹다.
또한 의사도 아니지만 상처 입은 책들을 말끔하게 봉합하는 다정한 의식도 치른다.
사람이 발길이 이어지는 한 도서관 안에도 삶이 흐른다. 이용자로 바라본 도서관 풍경과 노동자로 바라보는 도서관은 달랐다. 같은 세계를 누구의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른 세계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변함없는 사실 한 가지는 도서관은 다정함이 머무는 공간이다. 책을 매개로 연결된 사람들이 찾는 곳이기에, 세상 그 어느 곳보다 다정하다.
책의 숲을 거닐며,
사랑하는 사람의 등을 바라보듯
책의 등을 오래오래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책의 숲을 거닐다 운명처럼 만나게 된 어느 문장에 설레는 경험, 연애할 때의 설렘과 견줄 수 있다. 정말이다. 경험해 보라.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책의 숲을 거닐어 보자. 이왕이면 <삶은 도서관>부터 만나자.
도서관에 대한 애정이 퐁퐁 샘솟게 될 거다.
그녀가 들려주는 흥미로운 도서관 이야기와
유쾌한 삶 이야기에 어느새 숨을 되찾았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도서관 문을 힘차게 열고 나선다.
일상으로 돌아가 숨 가쁘게 살아볼 테다.
숨이 막히면 언제든 달려올
나의 유토피아가
늘 이곳에 있으니까.
삶은 도서관이고
도서관에는 삶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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