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작성하는 작은 하루 일상
일기쓰는 게 엄청난 게 아니라는 걸 아이패드를 구입해서 굿노트 어플을 쓰다가 알았다.
하루 뭘 먹고, 어디에 돈 썼는지 궁금해서 쓰던 게 점점 하루 일과를 작성하는 걸로 넓혀가다 보니 재미가 있었다.
작성은 단순했다.
9:00 기상
10:00 아침 겸 점심
11:00 집 청소하고 커피 마심
12:00 양파랑 두부 사러 가게 다녀옴 1200원
...
이런 식으로 단순히 적고 나서 한두 달 뒤, 6개월 뒤, 1년 뒤에 다시 보니 그때의 심정이 떠올랐다.
별거 아닌 단어 하나, 글자 하나에 그 시간에 뭘 하고 다녔고, 그 다닌 시간 동안에 내 마음과 기분이 어땠는지 생생히 떠올랐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대충 작년 봄에서 여름 언저리에 있었던 일이라 생각하고 그 기억이 어쩌다 있었던 일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할 때 해당 일기를 찾게 되면 이마를 탁 친다.
'아, 오빠(남편)가 집에 없을 때 그런 일이 있었지. 출장 갔었구나!'
하며 6하원칙에 입각한 일의 전후과정이 상세히 떠오른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 날짜, 시간으로 되돌아 간 느낌이 든다.
이래서 유치원 때부터 일기 쓰기를 시키는구나. 그림이든, 글이든, 어떤 형태로라도 너의 시간을 남기는 습관을 만들다 보면 쓸데없어 보이는 증거들이 시간이 지나 쓸모가 있게 만드는 효과를 확인해 보라는 거구나.
우리 땐 아동심리나 발달에 대한 학문과 개념이 미미한 때라 그냥 시키는 거겠거니, 했는데 역시 옛 어른들 말씀 틀린 건 없구나. 책을 읽는 것, 일기를 쓰는 것, 모두 관 속에 들어갈 때까지 유효한 삶의 방식과 '좋은 습관'인 것이다.
경제적 관념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가계부도 함께 써야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진 않고 있다.
중국에 살 땐 가계부까지 열심히 작성했으나 한국에서는 대출이나 신용카드 실적 등의 사유로 생활비가 분산되어 사용되다 보니 가계부까지 작성하는 일기는 쓰고 있지 않다.
가계재정 상황을 따로 정리하긴 하지만 확실히 가계부와 일기 두 개를 동시에 쓰면 내 생활에 대한 가독성이 올라서 확실히 소소한 삶의 도움이 된다.
내가 쓰는 일기는 단순하다.
몇 시에 일어나고 몇 시에 어딜 갔으며 몇 시에 누구랑 뭘 먹었는지를 기록한다.
업무 중 네이밍이 될 만한 업무나 공부를 했다면 기록하고, 그냥 소소한 하루 일과 중 하나면 그냥 '일', '농땡이', '쉼', 이런 식으로 작성한다.
육아와 관련된 건 초록색 펜이나 형광펜을 사용하고, 진짜 기분이 안 좋은 일은 회색으로 표시해 둔다. 이러면 1년 후 다시 볼 때 가독성이 좋아서 중요한 포인트들을 훑어보기에 좋다.
위의 사진처럼 초창기엔 구체적으로 시간별로 무엇을 했는지 썼고, TV를 봤다면 뭘 봤고, 했다면 지금은 크게 일한 시간과 개인시간 정도만 구분할 정도로 작성한다.
`일
`집에서 육아
`주말 쉼
이런 식으로 말이다.
다행히 이렇게 쓸 수 있는 건 핸드폰으로 휘리릭 지나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있어서 가능하다. SNS 바다에서 2시간을 논다면 그중 10분 정도를 할애하면 오늘 있던 반나절의 일과는 작성할 수 있다. 이렇게 작성한 일기는 훗날, 브런치 글밥이 되기도 하고, 업무 플로우 확인하기도 하고, 부부싸움 시 유력한 증거 채택*도 된다.
*네가 그때 그랬네, 안 그랬네, 할 때 안 그랬음!!!!!!!, 할 수 있다.
여러 소소한 장점이 있지만 가장 좋은 건 작게 쌓이는 시간들을 통으로 묶어서 회상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게 왜 좋냐면 한 달간 이룬 성과, 심리, 변화를 확인해서 다음 스텝을 현명하게 선택할 때 빠르게 판단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독서나 풍부한 사고력 등의 뒷받침도 있어야 하지만 독서, 비판적 사고와 함께 한 축을 이루는 골드 트라이앵글 중 한 꼭지라고 보면 된다.
책을 읽고 생각을 하는 게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예측과 판단을 도와준다면 일기는 지난 역사, 나의 레퍼런스에서 중요한 부분만 형광표시해서 톺아본다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이 세 가지를 합치면 매우 만족할만한 결정을 내리게 해 준다. 물론, 만족할만한 결정이 성공으로 귀결되거나 최고의 선택이라는 것은 아니다. 개인과 개인을 감싸는 주변 환경에 긍정적이며 후회가 최소화되는 결론을 준다는 의미이다.
블로그던, 브런치던, 메모지던, 어플이던, 뭐든 좋다. 가장 손 닿기 쉬운 곳에 하루 세 줄 이상(단어수는 상관없음) 써보면 위인전 같은 나만의 업적이 되니 남은 하반기동안 열심히 업적을 쌓아보는 걸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