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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니 May 02. 2022

쓰리잡 MZ엄마

3 - 엄마 역할 비중

92년생으로 30대가 되어 첫아기를 낳은 일명 MZ세대 엄마다.

내가 기억하는 첫 세대는 X세대였고, 내가 중학생일 때 X세대가 부모가 된 것을 특집으로 다루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아마 정부 수립 이후 가장 개성을 강조하는 세대이자 가난이 없이 자란 첫 세대라고 대대적으로 떠들었던 것 같다. 


2000년대가 지나고 2020년을 맞이한 지금, 우리는 더 새로운 환경을 탄생시키는 세대를 맞이했다고 또 한 번 떠들썩하게 작명한 세대가 나의 또래이다.

X세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X세대는 10대 후반 20대 초반을 중심으로 이뤄진 사회초년생에 포커스였다면, MZ는 이미 회사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자리 잡은 '성인'을 다룬다는 점이다.

성인이지만 옛날 20대 중반과 다름없는 시간을 살고 있는 MZ세대를 소비의 축, 근로자의 축으로 여러 콘텐츠들이 만들어지고, 화제가 되어 다뤄지고 있다. 


나는 그중 직장인이자 대학원생이자 엄마인 MZ세대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꽤 많은 '엄마'들이 육아와 동시에 대학원을 다니는 모습을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왜 그런 걸까? 인생이 길어지고 아이가 자라면서 나도 자라야 살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라고 해석된다. 


신기한 점은,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엄마'들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엄마'라는 존재에 집중하게 되는 경향이 생겼다. 


육아에 대해,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원론적이고 진지한 고찰을 다루는 웹툰, 글, 영상 등이 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나만 해도 직장을 다니고 공부를 하고 있음에도 엄마란 무엇인가, 나는 엄마 자격이 있는가, 딸은 나를 엄마를 무슨 존재라고 각인할까? 등등의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돌 전에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등하원은 아빠가, 이유식도 아빠가, 하루 중 엄마는 아침에 잠깐, 밤에 잠들기 전에 목욕하면서 잠깐 보는 여자인데 2박 3일 주말에 자고 간 친할머니보다도 먼 존재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동시에 '아빠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아이에게 아빠는 삶의 반절 이상을 함께하는 사람이다. 아침에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하원해서는 놀아주고, 먹여주고, 기저귀 갈아주고, 재워주는 일생의 절반을 채워주는 사람. 

쉬는 날, 주말이면 공부하는 엄마를 대신해 유모차로 산책 시켜주고 목마 태워주고 밥 먹여주는 사람. 


그렇게 생각하면 그냥 우리 세대의 엄마 아빠 역할이 반전된 것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빠를 보는 시간이 엄마보다 적었어도 아빠는 여전히 아빠이고, 삼촌이나 할아버지로 대치되지 않았다. 엄마하고 보낸 시간이 많았어도 아빠를 가족에서 배제시키지 않는다. 여전히 아빠는 아빠로 존재한다.


,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위로가 된다. 



또 다른 느낌은 MZ세대, 신세대 엄마(촌스러운 단어 같지만 더 나은 표현이 생각 안남)이다. 

'엄마'는 고전적인 직업인데 'MZ세대'는 새로운 개념이다.


그래서 고전적인 '엄마'같지 않은 건가, 생각해본다. 

여전히 본질적인 건 같다. 

아이가 가족 중 우선순위 1등이고, 아이를 낳으면서 힘든 만큼 보람 있다. 


하지만 'MZ'라는 어감이 주는 느낌만큼 내가 중요하다. 내 자아가 많이 소중하다. 내 아이가 잘 되길 바라면서 동등하게 나도 잘됐으면 좋겠다. 아이를 위해 희생할 수 있지만 아이를 위해 내가 잘 되지 않으면 의미 있는 희생인가, 고민도 한다. 


그리고 새로운 MZ와 엄마가 더해지면 이질적인 특권이 부여되는 인상을 준다. 



어느 날 점심을 먹고 돌아가는 길에 직장 동료가 지금 행복하겠다고 얘기했다. 행복하세요?, 의문형이 아닌 행복하시겠네요, 주장형이다. 

이유를 들어보니 주변서 본 사람 중 가장 행복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든든한 가정이 있고(물질적인 든든함 제외), 사랑스러운 딸이 있고, 부모님 모두 건강히 살아계시고, 가까이서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있고, 서로 사랑하고 지지해주고, 나는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인정도 받고 있으니 말이다. 


사생활을 과하게 오픈하지 않음에도 저런 모습들이 눈에 보이는지 부러움 반, 궁금함 반으로 말을 건네 온다. 


그렇다. 숨길 것 없이 그렇다.

물론, 전보다 부지런해져야만 살 수 있어서 조금 피곤할 때도 있지만 왕관을 가진 자가 무게를 버티는 정도라 해야 할까. 오만방자하게 행복하다 떠들지 말아야지, 자중하면서 지낼 정도로 행복하다. 


친구들을 비롯한 동년배들은 이제 사회생활 중간 연차를 지나는 중이라 결혼이나 아기에 대해 부담스러운 숙제를 미루고 있는 중인데 난 이미 숙제를 다 한 뒤 남은 자기 자신의 진로나 다듬고 있으니 여유로워 보이는 걸 염두에 두고 위와 같은 이야기를 건네는 것 같다.


친구들이나 비슷한 또래들의 일상을 보면 심심하다,부터 노잼, 외로움, 우울증, 공황장애 등등이 최근 이슈 단어로 랭크된다. 매일매일 쳇바퀴 같다는 표현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오히려 자기 자신에 대한 신념이 확고하여 비혼, 딩크를 선언하는 또래들은 나나 남편처럼 홀가분하게 자유를 즐기면서 산다. 


아마 나이는 찼다고 어른들은 성화이고, 내 안에 확고한 신념은 없으며, 할 수 있다면 하고 싶기도 한데 확실히 안 하고 싶은 건 아닌데, 근데 할 수 있을까, 이런 걸 애초에 왜 생각하고 있는 거지, 혼자서 잘 살면 되지, 근데 왜 고민이 되지, 삶이 재미가 없지, 뫼비우스의 띠처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이지 않아서 고민이 되는 세대인 것 같다. 


인문학 강의를 하는 유명 교수는 이런 고민들이 인류가 최초로 '선택'을 할 수 있는 세대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연하게 답습하던 관습들을 그대로 따라하지 않아도 되며 심지어 그 관습들이 '특권'처럼 특정 몇 명만 수행하는 걸 보는 시대라 그런가 보다. 



돌아와서 그럼 난 엄마로서 행복한가. 엄마라는 직업에 대해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앞선 글들에서 나는 지금의 직업과 파트타임 대학원생의 위치가 맘에 든다.

내가 선택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선택을 위해 노력까지 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엄마라는 위치는 개인적으로 노력하지 않았다. 계획에 없었는데 축복처럼 찾아와서 남들 하는 고생 백만 분의 1도 모른 채로 행운아로 어부지리로 얻었다. 


내가 태어나자마자 '딸'이라는 위치를 타고난 것처럼 엄마라는 위치도 얻어걸렸다. 정말 얻어걸렸다는 표현이 맞다. 그럼에도 얻어걸린 것을 지키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기도 했지만 이 정도 희생으로 받은 선물을 지키는 게 맞나, 고민을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엄마 역할 비중은 세 가지 직업 중 가장 적은 시간을 투자하는데 대외적 이미지로는 가장 큰 차지를 한다.


직장인이면서 '엄마', 학생이면서 '엄마', 그냥 '엄마', 누구 '엄마', 딸이면서 손녀의 '엄마', 며느리이면서 손녀 '엄마', 손녀이면서 증손녀 '엄마', 타이틀이자 직함이다.


회사에서도 00 과장이면서 '00 엄마'라서 동갑 직원들 중에 가장 어른처럼 바라보는 그런, 어려운 직원?


딸이기만 했을 땐 아무도 내가 누구의 딸인지 관심도 없고, 신경도 안 썼는데 엄마일 때는 신경을 많이 쓰는 눈치다. 결혼한 직후 애 없는 유부녀로만 있을 때완 또 다른 포지션이다. 

엄마라는 이미지가 갖는 모습은 단 한 개도 없는데, 엄마가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자꾸 남의 집 엄마들을 찾아본다. 인스타나 브런치에 육아 관련 글이나 그림이 보이면 어김없이 들어가 정독하는 버릇이 생겼다. 


하는 얘기들은 늘 비슷하다. 엄마로서 살림하고, 육아하는 이야기. 육아하는 고충. 육아하는 기쁨. 일과 양립하는 육아의 고충 등. 흔한 일상, 흔한 이야기인데 화자가 달라질 때마다 구미가 당긴다. 그 자리에서 정독하고 구독하고 팔로우를 한다. 


왜일까. 아마도 같은 직업을 지녔으나 나와는 다른 모습으로 엄마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신기하거나 궁금해서 그런 것 같다. 


아이는 사랑하는데 서투르고 힘들어서 나만 이런가, 싶어서 쳐다보는 것 같다. 

'역시 우린 동지들이군요. 그런데 모습이 다 다르네요.' 하면서 말이다.



5/2 현재 아기는 이유식을 시작했고, 서서히 앉고 서려고 낑낑대며 연습을 하고 있다. 가만히 눕혀 놓으면 지루하다고 금방 운다. 장난감에 호기심을 가지고 장난감 도서관에서 빌려온 새로운 아이템을 즐겨하다가 지루해서 쳐다도 안 보고를 반복한다. 


엄마, 아빠, 할머니 등 자주 봤던 사람들을 인식하고 눈을 마주치면 활짝 소리 내어 웃는다. 자기만의 웃음코드가 생겨서 별로 웃긴 얘기나 행동도 아닌데 조금만 빵 터지면 "에 헤헤 헤헤헤~"하고 꺄르륵 끊임없이 웃는다. 


옹알이가 발음이 생겨서 외계어를 하는 느낌을 준다. 

손으로 모든 걸 만져보려 하고 움켜쥔 것은 절대 놓지 않는다. 

목욕을 할 때 물보라를 일으키며 첨벙 댄다.

가끔 피곤할 때 목욕시키면 짜증을 내며 힘들어 하지만 첨벙 대면서 놀면 기분이 풀린다. 

이유식은 입에 들어간 것의 반이 밖으로 배출되지만 변은 점점 사람다운(?) 변으로 변해가고 있다.

분유를 200ml씩 먹고 있다.

손가락은 더 힘차게 빤다.

소리 나는 튤립 동요 장난감을 제일 좋아한다.

갖고 있는 옷의 절반이 작아져서 창고에 들어갔다. 

유모차와 카시트가 곧 다음 사이즈로 넘어갈 예정이다.

올여름 입은 옷은 내년 여름에 볼 수 없다. 

올 겨울엔 아이가 신을 신발을 사야 한다.

예방접종은 이번 달이 신생아 때 맞을 필수 예방접종이 종료되는 것이 많다.

젖병 꼭지가 3단계로 넘어갔다.

기저귀도 3단계로 넘어갔다. 

모든 단계는 끝이 다 다르지만 보통 4-6단계에서 유아기로 접어든다.

유아기가 되면 진짜 사람 다운 사람처럼 밥도 먹고 화장실 훈련도 한다.

그때부턴 생애 기억이란 걸 남길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바라는 게 있다면,

아프지 않고 건강히 자라는 것.

아프다면 덜 아픈 것.

엄마가 싫지 않길.

엄마가 보고 싶을 정도로 외롭지 않길.

행복하길.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갈 힘을 얻어가는 성장기이길.


그리고 나에겐,

아이에게 바라는 일이 위의 사항뿐이길.

더 많은 욕심부리지 않길.

같이 행복해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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