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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니 Apr 29. 2022

쓰리잡 엄마 직장인

2 - 메디컬 라이터

떠다니는 조각경력자에서 나노경력자가 된 MZ세대 아기 엄마가 7번째 직업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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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봉사단원-연구원-외노자 와이프-NGO PM-역학조사관-메디컬 라이터

출산하자마자 갖게 된 직업인 메디컬 라이터다.


메디컬 라이터란?

의학분야의 연구결과는 대부분 딱딱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논문의 형태로 발표되기 때문에, 의학정보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메디컬 라이팅(의학적 글쓰기)이 필요하다. 이러한 메디컬 라이팅은 의학 관련 기사, 보건교육, 임상시험계획서, 통계 해석이 필요한 보고서 작성 등에 필요하다. 주로 약사 출신 메디컬 라이터가 약/생명공학 등을 주제로 한 제약사 위주의 홍보 브로셔 제작 위주로 다루던 직업이었으나 요즘엔 임상시험 업계에서 프로토콜 작성, 연구계획 작성 등의 공문서, 보고서 등을 다루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의미로 확대되고 있다.
[출처] 메디컬 라이터가 뭐예요? [Kay]|작성자 친친


회사는 집에서 차로 20분 내외의 거리에 있다.

문제는 뚜벅이로 가면 1시간 정도 걸리는 출퇴근의 격차가 꽤 있는 곳이다.

집에서 20분을 출퇴근하다가 1시간을 가려니 이것은 꽤 고민이 되었다. 차라리 같은 동네 안에 있는 급여가 더 적은 곳에 갈까, 고민도 했으나 최종 선택은 몇 가지 이유로 현재 다니는 회사로 정했다.



이유 1. 면접 때 분위기

대표님과 시간이 안 맞아 다른 임원분들과 면접을 봤다. 내 이력서를 정독하신 것 같았다. 첫마디가, "이력이 저희가 찾으시는 분이네요."였다. 나 말고 다른 대안은 없어 보였다. 지원자는 꽤 많았다. 최종 지원율은 7:1이었다. 하지만 논문을 보고 써 본, 직접 연구 경력이 있는 분은 없었고, 실무 임상경력이 있던 간호사, 의료분야 전공 직업을 가진 분들이었나 보다.


면접을 진행하면서 예의 있고 정중하게 물어봐주시고 사적이고 어려운 부분은, "실례가 안 된다면"을 서두에 붙여주셨다. 그리고 전혀 실례가 안 되는 사적인 질문을 하셨다.
"출산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면접까지 와주셔서 죄송하고 감사하네요. 그럼에도 면접에 참여해 주셨으니 복직을 하시려는 것 같은데 출근이 가능하다면 언제부터 가능하신가요?"


무례한 질문이라면 '애가 어린데 출근되냐', '애 때문에 입사 늦어지는 건 곤란하다.' 등일텐데 그런 건 회사 측에서 하지 않았다. 상식적인 선에서 배려가 필요하냐는 질문이었다.


면접을 1월 첫 주에 봤고, 입사를 3월 첫 주에 '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당연히' 가능하다고 했다.


남편만 해도, 지난 6월에 입사한 회사에서 면접보고 일주일 이내에 출근하지 않으면 몹시 곤란하다며 빨리 나오라고 재촉하여 빠르게 입사했다.

최근 이직한 친구도 사직한 지 일주일도 안되어 새 직장에 출근했다.

그런 걸 보면 두 달이나 여유를 줄 수 있던 건 회사가 사람은 구하기 어려우나 그만큼 일이 산더미 같지 않고, 누군가 도망가서 땜빵하는 자리가 아니고, 어쨌든 나의 상황을 최대한 배려해 줄 수 있다는 배경으로 해석했다.



이유 2. 급여와 처우

회사의 최고의 복지는 급여라는 말이 있다. 결국은 돈이 최고다. 일주일에 7일을 일하던 역학조사관 시절을 제외하고 주 5일에 칼퇴(이젠 사라질 용어)가 가능하면서 월급이 밀리지 않을 정도로 벌이가 좋은 영리적 중소기업에서 협상한 연봉 중 최고가를 경신했다.


연봉협상, 이란 것도 처음 해봤다. 그전엔 이미 연봉테이블이 존재하는 연구사업비나 공무원을 했기 때문에 이미 까 놓은 연봉을 확인하고 입사를 할지 결정하는 수순이었으니 말이다.


그나마 직전 연봉을 높게 책정해 주신 연구책임자 선생님 덕분에 기준점이 1년 전 NGO에서 근무할 때보다 1000만 원 이상 높게 협상이 가능했다.


그 외 복지랄 건 없지만 연봉협상을 하면서 파악한 것 중 좋은 처우는, 저녁 회식이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한 달에 한번 점심 회식비를 제공하고, 직원들끼리 알아서 먹는 것 외엔 특별히 회동해서 가는 회식은 없다 했다. 입사해서 들어보니 코로나 때문에 2년간 회식을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래도 다른 지역에 있는 물류팀과 다같이 뭉쳐서 하는 회식은 1년에 한 번 정도 있다고 하는데 최근 3년 이내 입사한 직원들은 으레 하는 술자리 회식을 가져본 적이 없다 했다.



이유 3. 대학원 재학 가능 여부

면접 때, 대학원 입학 전이긴 했으나 지원했으니 대면 수업 시, 통학을 할 수 있다고 미리 고지했다. 회사는 괜찮다고 했다. 비대면이면 사무실에서 듣고, 대면이면 학교 갈 때 출퇴근 시간 유연하게 해 주겠다고 했다.


현재까지 비대면 수업이라 회사에서 편하게 듣고 있다. 가끔 발표도 하고, 마이크로 질문도 하는데 알아서 방해 안되게 안 찾으시고, 밖에서 통화해 주신다. 수업시간 기억하시고 최대한 그 시간엔 사무실에서 조용히 해 주시고, 문의할 때도 카톡으로 주신다.



이유 4. 업무의 난이도

메디컬 라이터의 주 업무는 어려운 연구논문을 보고 쉬운 말로 풀어주는 것이다. 내가 있는 회사는 광고대행사로 주고객은 제약사들이다. 제약회사에서 신약이 나와서 홍보를 하기 위해서는 일반인에겐 불가능하고 전문의약품은 특정 의료인들을 대상으로 전문적인 내용만으로 홍보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내부에서 직접 홍보물을 제작해서 영업을 돌리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약품의 임상시험 등의 관리만으로도 벅차기 때문에 늘 거래하는 전문 광고대행사를 이용해 홍보물을 제작한다. 단순 브로셔만 만드는 게 아니라 학회 전시로 MICE(컨벤션, 프레젠테이션 산업)쪽에서 홍보하는 것도 하려면 대행사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메디컬 라이터 일은 매일 들어오는 일이 아니라 프로젝트성으로 외주를 주는 부분이 많다. 프리랜서 분들이 경력도 많고, 한 가지 프로젝트만 잡아서 하니까 편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회사 입장에선 자잘하게 처리해야 할 '전문적인' 부분이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싫었던 것 같다.


무슨 말이냐면, 보통은 기존에 제작된 작업을 재수정하는 식으로 작업을 의뢰하는 게 80%다. 물론 한 번 프로젝트성으로 외주를 주는 것도 꽤 비싼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만들고 나면 copyright이 회사에 귀속되기 때문에 제약사는 한 번 이용한 대행사를 통해 재탄생 시킨 여러 가지 결과물을 사용하길 원한다.


문제는, 재수정할 때마다 자잘하게 발생하는 내용의 신빙성 확인을 해 줄 사람이 회사 내부에 상주하지 않으면 디자이너들이 곤란하게 된다.


예를 들어, 뇌졸중 약물 홍보물을 처음에 만들었을 땐 3쪽짜리 브로셔로 제작했는데 00 학회에서 부스에 비치할 한 면짜리 배너를 만들기로 했을 때 기존에 있던 연구 결과표나 레퍼런스를 편집할 때, '이렇게 해도 되나?' 하는 지점이 생긴다. 물론, 광고주에게 물어보면 해결은 되지만 광고주 입장에선 바빠 죽겠는데 이런 마이너 한 것까지 세세하게 물어보는 대행사 말고 [일단 알아서] 해준 다음 전체 수정만 피드백 던지면 [다시 알아서] 해주는 대행사를 원할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대행사 내에 상주하는 메디컬 라이터가 있는 곳을 선호하게 되고, 대행사는 그래서 상주 메디컬 라이터를 고용하려고 한다. 영업 측면에서 이득이 된다고 판단이 되니까 말이다.


그런 이유로 내가 뽑혀서 들어온 것인데 회사에는 비밀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업무가 쉽다(!!!).

왜냐면, 전에 하던 일들은 A to Z 사업담당자로 프로젝트를 이끌기 위해 계약이 된 것이라 고용된 내내 프로젝트가 걸려있고, 타임라인에 맞춰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프로젝트가 들어올 때까지 사무실에 앉아서 기다리다가 중간중간 마이너한 레퍼런스 검수 등을 보는 일인 것이다.


한마디로 전에는 김밥천국 요리사로 모든 주문을 들어오는 족족 다했다면, 지금은 김밥 공장에서 밥에 단무지만 올려주는 역할인 셈이다.


그럼 레퍼런스 검수는 무엇이냐. 위에서 설명한 '재탄생 한' 브로셔나 부스 내용물을 보고, 표의 위치와 레퍼런스 번호가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게다가 제약사 내부에서 1차 메디컬 리뷰를 검토하고 온 것이기 때문에 근거가 되는 레퍼런스도 밑줄 쫙쫙 그어져 해당 내용만 보면 된다.


그마저도 익숙해져서 해당 내용과 홍보물이 일치하지 않으면 논문 안에서 내용 찾아서 긁어주는 일도 해주고 있다.


이전에 하던 일들에 비하면 굉장히 마이너하다. 그러나 이 회사에선 내 업무는 나만 알고,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하지만 연구를 해본 사람들은 안다. 논문을 쓰는 게 아니라 보는 것만 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심지어 그 논문이 미리 밑줄까지 쳐 준 논문이라면 말이다.



위의 이유들로 다닌 지 1달 정도 됐을 때 계속 다니기로 마음을 굳혔다. 게다가 내가 하는 일이 대학원 학기 중엔 비수기라 일이 없어서 과제하고, 수업 들으면서 연구실처럼 다니고 있어서 몸과 마음이 편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처음 입사할 때 나이와 경력 고려하여 직급도 다른 3년 차 직원들과 같은 직급으로 들어갔는데 2개월 수습이 끝나고 부서장으로 승진 발령받았다. 급여와는 무관한 승진이지만 말이다ㅎㅎㅎ.


+ 이 모든 해피한 결말을 위해 입사일 전날에 멍청하게 카카오톡 계정 피싱범들에게 덜컥 정보를 주어 해킹을 당했나 보다...... 한동안 지금 브런치 계정에 들어올 수 없었고 한 달간 노력 끝에 겨우 다시 로그인에 성공하여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있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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