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석박통합과정 대학원생
쓰리잡 엄마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3월에 모든 것이 맞물렸을 뿐이다.
1번 타이틀은 석박통합과정 대학원생이다.
이야기는 출산을 2달 앞둔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1년 5월까지 온라인 석사과정 6번째 모듈을 종료하고, 휴학을 신청했다. 출산까지 쉬었다가 1월에 다시 시작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과목이 두 번이나 fail을 맞으면서 향후 석사과정을 지속할 수 있을지 미궁에 빠지게 된 것이다.
물론, 높은 확률로 다시 과정을 시작할 순 있겠지만 한국에 있으면서 온라인으로 하는 석사가 딜레이 되면 추후 박사과정 진학이 늦어질 것이고, 늦어진 진학도 그때가 되면 아기 때문에 할 수 있는지도 확실치 않았다.
이쯤에서 한국에서 공부하는 걸 알아볼까, 고민하던 찰나였다.
연구소에서 대학원생 전액 장학금을 주는 공고가 뜬 것이다. 맞다, 이런 제도가 있었지. 풀타임 대학원생이 아니어도 제휴하는 학교나 연구소 대학원을 다니는 연구원에게 장학금을 주는 제도였다.
문제는, 준비할 서류가 많았다. 현재 연구책임자의 추천서, 향후 지도교수가 될 교수님의 추천서(알지도 못하는 예비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세요, 하는 추천서를 부탁해야 함), 부서장의 승인 등이었다.
만삭의 몸이었고, 지도교수가 될 교수님을 찾아서 컨택을 해야 했다. 남은 기간은 2주일이었다.
'아, 정신 차려. 그깟 대학원 늦게 가면 되지. 나중에 가면 되지. 왜 무리하려고 하냐.'
아우성을 치는 이성과 내 맘대로 할 거야, 하는 감성이가 싸워서 이겼다.
아직 여름이 채 가지 않은 뙤약볕에 컨택한 교수님을 찾아뵈러 갔다.
참고로, 나는 교수님과 일면식도 없었고, 학회에서 마주친 기회도 없었다. 교수님도 학계에 오신 지 10년이 안 되신 터라 외부에 공개된 정보가 많이 없었다. 컨택을 하게 된 과정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석사과정, 박사과정, 석박통합과정
이렇게 세 가지 과정이 있었고,
학교는 특정 학교의 특정 학과만 가능했다.
그중 나는 석박통합과정을 가기로 결정했다.
전공은 일관성 있게 '보건학'을 선택했다.
석사과정은 이미 석사를 반이나 지나와서 다시 들어가는 건 의미가 없었고,
박사과정을 가려니 석사 졸업장이 없어서 불가능했다.
그 중간 과정인 석박통합을 하면 석사 논문을 쓰지 않고, 코스웍만 더 들으며 바로 박사논문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물론, 시간은 석사+박사 합한 것과 동일하여 아예 석사를 skip할 순 없었지만 절충안으로 택했다. 이미 내 상황에서 한국에서 바로 대학원을 간다면 절충안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연구책임자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지원을 결정한 뒤, 학교와 학과를 정해서 지도교수님이 되실 분께 메일을 보냈다.
처음으로 '컨택'이란 것을 했다.
컨택? Contact의 준말로, 대학원생이 지도교수님을 미리 정하여 메일로 입학을 요청하는 면담을 하고 입학 여부를 원서를 쓰기 전에 확정받는 것을 의미한다.
왜? 대학원은 학생 TO가 정해져 있고, 교수님의 연구 과제별, 연구실 상황별 인건비 책정이 다르고, 앞으로 학생을 뽑지도 않을 곳으로 입학원서를 쓰고 탈락하여 다음 학기에 또 지원하고 등의 시간 낭비를 없애기 위함이다.
그러나, 전공별, 학교별, 심지어는 교수님별 상황이 천차만별이라 컨택이 정답일 수도 굳이 안 해도 되는 것일 수도 있다.
보건학 전공은 현재는 많은 학교들에서 '보건'이라는 이름을 붙인 전공과목들이 본교 캠퍼스에 생겼지만 의대가 아닌 곳에서 보건학을 전공으로 대학원 과정을 개설한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보건'은 '예방의학'의 한 분과처럼 다뤄져 보건을 하려면 의과대학 내의 예방의학교실 등의 의대 대학원을 입학해야 했다.
하지만 21세기의 예비 보건학도들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왜냐하면 의사 말고도 보건과 의료분야에서 전문직 자격을 겸비한 각 분야의 의료전문가를 배출하기 시작했고, 보건의 성격을 따로 다루는 보건학이 각 학교마다 의과대학 소속이 아닌 독립된 학부와 대학원으로 승격이 되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이 아닌, 직장인이 주로 다니는 특수대학원이 아닌, 일반대학원의 보건학 전공을 선택했다.
학교를 선택할 때 첫째는 거리였다.
직장인으로서 다니기 위해선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기까지 생긴 가정이 있는 몸이라 뗄레야 뗄 수 없는 부분이 되었다.
두 번째는 학교의 명성과 교수님들의 연구분야였다.
학교를 선택하고 나서 전공 교수님들의 약력을 살펴봤다.
직접적으로 알고 지낸 분은 없었고, 학회에서 지나가며 마주친 분도 계시지 않았다. 최근 퍼블리시된 논문을 보았더니 예전에 온라인 석사과정 과제하면서 참고했던 논문을 쓰신 교수님이 계셨다.
그리고 경력과 논문 이력을 보니 내가 연구하고 싶은 분야를 다루시고 계셨다.
결정과 동시에 메일을 보내고, 하루 이틀 기다렸으나 답이 없으셔서 리마인드 메일을 보냈다.
알고 보니 교수님 학교 계정 메일과 다른 기관 계정의 메일을 보냈었는데 기관 계정 메일이 없는 계정이라 아예 모든 메일이 도착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리마인드 메일을 읽으시더니 바로 가능한 시간을 보내주셨다.
그것도 여러 날짜와 시간을 상세히 적어주셔서 퇴짜는 아니겠구나, 예상을 했다.
해가 쨍한 날, 반차를 내고 컨택 면담을 다녀왔다.
9월이었고 아직 한참 더울 때였다.
입구를 찾지 못해 헤매다가 시간에 딱 맞춰 교수님 연구실로 입장했다.
입학을 위한 청탁의 사례가 될까 아무것도 들고 가진 않았다.
준비물은 오로지 나의 연구경력이 나와있는 이력서였다.
내가 들어가자마자 차를 내어주셨는데 꼼꼼하게 온도를 체크하시면서 티백을 우려내어 주실 때부터 사려 깊으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력서를 꼼꼼히 봐주시고는 여러 가지 궁금한 부분들을 물어보셨다.
오히려, 임신을 했고, 향후 육아를 할 점에 대해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여주셨다. 이미 많은 학생들이 육아를 병행하고 있기에 힘들지만 결국 다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위로에 장학금이 떨어지더라도 입학할 마음을 굳혔다.
더 구구절절한 질문은 지금 시점에서 과한 앞선 걱정 같아서 짧게 면담을 마치고 추천서를 부탁에 응해주신단 답변을 듣고 귀가했다.
모든 서류를 완료하고(영어점수는 새로 토익을 쳤다. 기준점수가 낮아서 높은 점수가 나오지 않아도 가능했다), 제출을 한 지 1주 후에 면접일이 발표됐다.
면접은 5인의 내부 위원으로 구성된 임원분들 앞에서 면접 질의응답 식으로 진행됐다.
면접을 보고 난 뒤, 될 것도 같고, 안될 것 같기도 한 기분이 들었다.
면접 대기실에는 슬리퍼를 신고 온 지원자도 있었고, 정장을 차려입고 온 사람도 있었다.
질문 내용도 연구원에 설치된 대학원에 진학할 의사는 없는지 등을 묻는 것으로 봐서 장학금 전체 TO는 한정적이며 그중에서 연구원과 직접 관련이 있는 학생에게 우선 지원을 하겠다고 보였다.
역시나 탈락이었다.
마음은 슬펐으나 기꺼이 추천서를 써 주신 연구책임자 선생님과 교수님께 감사의 인사와 안타까운 소식을 전달했다. 그리고 남편과는 앞으로 어찌할지 고민을 했다.
"이번에는 가지 말자."
남편의 권고였다.
출산을 하고 나서 내년 3월이면 일도 해야 하고, 바쁠 것이니 꼭 가고 싶더라도 한 학기만 뒤에 가자고 말이다.
하지만 그럴 거면 그냥 온라인 석사를 어떻게든 끝내고 기다렸다가 박사과정을 지원하는 것이나 시간 차이는 없었다.
시간은 흘러 아기가 태어나고 12월의 어느 날 갑작스레 계약이 끝날 것이란 통보를 받았다. 연구책임자 선생님의 향후 거취 때문에 일자리를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 됐고, 계약이 12월에 종료되었다.
다행히도 바뀐 법 때문에 계약직도 계약기간 내에 출산휴가를 시작했으면 계약이 종료된 후에도 출산휴가 급여를 고용보험이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덕분에 1월 한 달까지도 급여를 받으면서 출산휴가를 마저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계약이 종료됨과 동시에 사직이라 실업급여가 나왔다. 그때 내 머리를 스친 생각은, '대학원 다니면서 육아하면 좋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었다.
심지어 학교 홈페이지 들어가 보니 2차 모집까지 진행 중이었다.
대박.
이것은 기회다.
일단 시작하고 보자.
해 보다가 안되면 이번엔 진짜 학위고 뭐고 다 포기하자.
남편과 상의하고 협상 끝에 그래 가 보아라, 내가 육아 휴직하고 집에 남아있겠다.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봐라, 하여 지원을 했고 합격을 했다.
학교 다니는 후기는 차차 올리겠습니다.
회사랑 병행하며 육아하면서 한 달 다녀본 결과, 대만족하고 있습니다.
교수님들이 초등학교 선생님처럼 통계의 통자도 모르는 사람도 알아들을 수 있게 친절하고 상세하게 알려주셔서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잘 뜨고 있습니다.
컨택했던 교수님은 지금은 지도교수님이 되셨고, 면담할 때도 현재의 고민*과 앞으로의 고민**까지 훌훌 털어버리고 편히 공부할 수 있도록 서포트해주시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고 싶은 연구를 하면서도 굶어 죽지 않을까요?
쓰리잡 엄마 시리즈 다음 편은 '직장인-메디컬 라이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