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엄마가 열감기로 고생한 딸과 함께한 일주일
대학원 학기말, 한주 동안 아이가 아팠다.
일주일간 고열이 오르락내리락 반복하면서 밤새 푹 자지 못하면서 깨어 있을 때는 몸이 불편해서 칭얼대는 아이와 함께 남편은 가정보육을 하며 24시간을 보냈고, 나는 학기말이라 과제가 쌓여있어 남편은 '독박'에 가까운 간호와 육아를 했다.
소아 병동에서 일한 이력에 감사한 순간이었다.
당장 열이 나고 아픈 사실은 안타깝지만 통과의례처럼 겪어야 하는 부분이기에 그나마 조금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에 감사했다.
이쯤이면 열이 나고, 이쯤이면 열이 떨어지고, 이게 이 정도가 되면 응급실을 갈 상황이고, 지금 이 정도는 처방해준 약으로 증상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정도가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니 막연한 두려움에 있지 않아도 됐다.
*물론, 정말 응급한 상황이나 예상치 못한 통증 호소 등의 다이내믹한 경우만 아니라면 말이다.
아무리 집에서 남편이 아기를 전담하며 육아를 한다 해도 혼자서 아픈 아기의 뒷수발과 집안 살림을 책임지기는 한계가 있었다.
바로 시어머니에게 SOS를 불렀고, 시간이 되는 주중에 오셔서 육아를 해주셨다.
내가 집으로 퇴근해서 과제를 하거나 시험을 친다고 남편과 아이를 외면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기에 아이가 깨어있고, 남편이 집안일을 하는 동안 책이나 컴퓨터를 켜 볼 새도 없이 아이를 돌봤다.
다행히 아이가 아프기 전 주에 과제가 밀려올 것을 예상하여 먼저 끝내야 할 과제를 잠을 줄여가며 한 덕에 밤을 새우며 공부하지 않아도 됐다.
그럼에도 막 학기인지라 할 것은 쌓여있고, 일과 육아도 한 올의 틈도 없이 빽빽하게 몰려 있어서 회사에서는 회사일, 퇴근해서는 육아, 아기가 남편과 잠든 뒤엔 남은 집 정리와 과제를 했다.
왜 남편이 살림을 도맡아 함에도 불구하고 집안일의 몫이 있는가, 한다면 그럴 수밖에 없는 육아 병행 집안일의 양을 알아야 한다.
우리 집은 아이를 일찍 어린이집에 보내서 만 7개월이 넘은 지금,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어린이집에 갔다가 남편이 하원을 한다.
그 시간 동안 남편은 장을 보고, 빨래를 하고, 개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한다.
일주일에 두세 번 이상, 이불빨래, 수리해야 할 문이나 기계, 창고정리, 냉장고 정리 등등의 큰 일을 처리한다.
4시까지 아이가 없이 몰두할 수 있는 모든 집안일을 끝낸 뒤에 아이를 데려오면 이유식을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잠깐 재우려다 실패하고 등등의 육아를 한다.
그렇게 3시간을 불태우면 아내인 내가 퇴근한다.
저녁을 차려야 한다는 뜻이다.
저녁을 차려서 먹고 하면, 7시 반.
설거지는 내가 하고, 남편은 재료 정리와 내일 싸 줄 아내의 도시락 메뉴를 준비한다.
중간에 아이가 울거나 안아 달라 보채면 챙긴다.
도시락을 다 챙기고 나면, 다음날 먹을 아이 이유식을 또 만들어서 냉장 보관한다.
냉동용과 냉장용 이유식을 매끼마다 먹을 수 있게 만들어 두는데 오래 보관하면 버려야 하기 때문에 하루 한 두 번은 꼭 이유식 만드는 시간을 확보한다.
모든 일이 정리되고 쉬면 8시 반.
어른들이 교대로 씻고 와서 아이와 함께 자러 간다.
보통은 남편이 재우러 들어가서 같이 곯아떨어진다.
그럼 나는 그때부터 나만의 시간을 갖게 된다. 학기 중이었으니 대부분 공부나 과제를 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방문을 닫고 몰두했었다.
이러니 남편은 본인의 시간을 가질 여유가 없다.
집안일은 조금만 하다 보면 점심시간이고, 인터넷이나 어플을 켜고 놀려해도 금방 하원 시간이다.
나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집에 있어봐서 정말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아마 본인이 안 해본 사람들이 쉽게,
"집에서 있으면서 뭘 하는 거야?"
하는 거겠지.
집에서 잠깐 식탁을 닦거나 화장실을 정리하거나 오래된 선반장을 들춰보기만 해도 뒤돌아서면 밥 해야 하고, 뒤돌아서면 하원 시간이고 그렇다.
그런데, 아이가 열이 나서 아프면 다른 아이들에게 전염될 수 있는 질환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등원을 할 수 없다. 그럼 위에서 열거한 모든 업무와 동시에 아이를 들춰 업고, 안고, 달래가면서 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6개월이 지난 아기들은 기본 8킬로에 육박하거나 10킬로에 가까울 수 있다.
2킬로 아령을 손목에 묶고 설거지를 하거나 청소를 한다고 생각해 보시라.
얼마나 무겁고 조금만 움직여도 힘들겠는가.
게다가 그 아령은 계속 움직이고 울어대며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다. 그렇다고 휙휙 쉽게 다룰 수 있는 성질의 '물건'이 아니기에 아주 무겁고, 예민한 보물처럼 다루면서 집안일을 해내야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뻔히 알고 있으니 남편에게 내가 퇴근해서 내 공부를 하겠다고 방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나마 남편이 최대한 배려해 주어 정말 밤을 새야 할 것 같은 상황이라면 기꺼이 혼자서 위의 모든 육아와 살림을 감내했지만 본인의 체력도 바닥일 때면 SOS를 쳤고 응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대학원 공부도, 일도, 육아도 직/간접적으로 겪어본 일들이었기에 과제를 할 때에도, 아이가 아플 때에도 이전의 경험으로 눈치껏 빨리빨리 해낼 수 있어서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다.
아이가 열이 안 떨어진 것은 아니었으나 오르락내리락 불안하게 열이 잡히지 않을 때에 남편이,
"응급실에 가 볼까. 밤에 더 아프면 어떡하지."
이미 오후 5시에 소아과에 다녀와서 약을 타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밤새 컨디션이 처질까 봐 동동대며 물어볼 때마다 정말 응급한 상황, 진짜 위중한 상황에 대해 매일 같이 봤었기에 이 정도로는 응급실에 방문해서 고생하는 시간이 더 컸기에 간호를 잘해주며 보살피자고 다독였다.
*정말 응급한 상황은 가까이에서 분 단위로 관찰/간호할 때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냥 열 좀 안 나니까, 정도로 응급실에 가지 말자고 한 것은 아닙니다.
아이가 아프면 무조건 전문의의 상담과 진찰이 1순위지만 의료자원 또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 진료가 없는 시간에는 '찐' 응급이 아니면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건 당연하기 때문이다.
집에서 해열제 먹고 열이 잡히는 정도라면 따뜻한 온수목욕과 팔이 빠지도록 서서 안아주는 보살핌, 시원한 온도와 적절한 가습이 있는 습도로 환경을 조성하고 살뜰히 간호를 하는 것이 '평범하게' 아픈 아이에게 최선의 치료이다.
나도 내 애가 아프면 불안하고 안타깝고 그랬지만 확실히 판단을 해야 하는 순간에는 이전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결정을 하게 되었다.
대학원 공부도 마찬가지였다.
과제들은 기존의 경력들과 맞닿아 있는 부분들이 많아서 갑자기 아예 모르는 새로운 걸 창조하는 작업들이 아니었다. 여전히 배울 것은 많았지만 기존에 하던 통계분석이나 논문 작성을 토대로 과제물을 제출하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시간 투자 대비 아웃풋이 좋았다.
1학기 성적은 일반적인 대학원생의 올 에이플은 받지 못했어도 B가 나오지 않은 처음 받아보는 성적표라서 개인적으로 이만하면 됐다, 하고 마무리한 셈이다.
그래도 신생아 시절의 수면패턴보다 양질의 수면을 유지하면서 지냈다.
그 시절엔 아기가 2시간씩 쪽잠(눕지도 못하고 앉은채로)을 잤는데 3시간 이상 등을 대고 깊은 숙면을 취했으니 역시 신생아 육아의 삶의 질보다 나았다.
아이는 다행히 항생제를 제대로 먹고 2일이 지나서 정상체온을 유지했고, 열꽃이 피긴 했어도 흉 없이 무사히 첫 돌치레를 치렀다.
여전히 내 아이는 효녀 콘셉트에 충실해서 아플 때도 밤동안에 쭉 수면을 했고, 하염없이 울거나 보채는 등의 일로 걱정을 보태주지 않았다.
귀여운 딸내미와 성실한 남편 덕에 첫 학기를 무사히 보낼 수 있었으니 앞으로 남은 2년 반도 이번 학기처럼 무사히 보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