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꼰대들의 대표인일수도
나는 일에 관심이 많다.
삶의 우선순위로 따지자면 일이 1, 2위를 다투는 것 같다.
예전에는 일이 중요해! 라고 말하며 그렇게 살아와서 그랬다지만 지금은 치열하게 일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오늘 아침 뭘 먹었는지 기억 못해도 저번주 클라이언트가 무슨 메일을 보냈는지는 기억이 난다.
어제 딸이 응가를 누었는지 가물가물해도 엊그제 들어온 프로젝트의 논문은 기억난다.
정말 20대 때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는 꼰대 상사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자식들 생일은 기억 못해도 업무처리는 메모 안하고 다 기억하는 그런.
전에 일하던 보건소 소장님이,
"나는 일이 우선이야. 가족들한테 늘 미안하지만 어쩔수가 없다. 그게 내 원동력이고 그렇게 살아버렸어."
라며, 아래 직원들을 힘들게 몰아부친 점에 대해서 읍소하듯 말한것이 기억난다.
이해가 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족들이랑 사이가 안 좋은 것도 아닌데 왜 일이 좋을까.
일이 좋으면 왜 애를 둘이나 낳으셨을까.
가족들은 그런 엄마에 대해 무한 지지를 보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정답은 마음이었다.
소장님은 다른 2년 임기의 계약직으로 경력을 채우다 나가는 외부 보건소장들과 달리 밑바닥 현장부터 쭉 올라온 사람이었다. 우리때야 덜하지만 그당시라면 학벌, 성별, 공무원 시작 급수 차이의 유리천장이 공고한 때에 말단에서 4급까지 달았다. 그건 본인이 일에 대해 경외할만한 무언가가 있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그녀는 우스갯소리라도, "이렇게 고생하는데 자식놈들은~", "남편이라는 작자는~" 으로 운을 떼는 이야기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항상 나를 지지하는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과 그럼에도 나를 버리지 않고 응원하는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셨다.
그녀의 가족들로부터 직접 듣진 못했지만 모르긴해도 꽤 자랑스러운 엄마이자 아내로 표현을 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자라면서 "내가 누구때문에 힘들게 돈 버는데." 라는 레퍼토리를 자주 듣고 자랐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일이란 먹여살리기 위해 꾹 참고 억지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일평생을 살았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회사 나가는게 즐겁다고 하신다)
일을 하는 사람도, 일을 하는 부모님 때문에 집에서 오랜시간을 붙어있지 못하고 밖으로 돌았던 자식들도, 모두가 힘들기만한 시간이었음을 보여주는 대사이다.
돈이 없으면 살수가 없으니 돈을 번다지만 억지로 억지로 시켜서 하는 일을 하는 삶은 혼자 살땐 상관없지만 다 같이 사는 인생에선 서로가 서로에게 불행을 안겨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자라선지, 타고난 건지, 나에게 일은 억지로 하는것이 아닌, 하고 싶어서 하는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하루의 시간 중 잠자는 시간과 비슷하게 쏟으니까 말이다.
일이 좋아서 한다고 당당히 말해도 미안한 것은 어쩔수 없다. 밀접한 애착을 보일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전 세대의 가족에 소홀한 가장들처럼 '난 일이 먼저였어!' 정당화하며 살고 싶진 않아서 나는 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우습지만 회사에서 일을 까먹지 않고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써두는 장치들을 사용하여 가정에서 중요한 일들을 잊지않기 위해 열심히 기록하고, 외우는 습관을 들였다.
그럼에도 까먹어서 두번 세번 묻게 되어 동반자를 짜증나게 한다면 백번 사과하고 이런 것은 다음부터 절대 잊지 말아야지, 마음에 새긴다.
(아직 갈길은 멀다^^;;)
관심이 일이 먼저인 것도 미안하고, 내가 일을 좋아한 것도 미안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왜곡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끝까지 노력하리라, 그 노력에 짜증내지 않으리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