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후 2주가 된 초보작가의 소회
2023년 10월 10일에 출간을 하고, 딱 2주가 지났다.
여느 작가님들의 말과 같이 일상생활은 달라진 것이 없다.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것도 아니요, 책이 잘 팔린다고 소문이 난 것도 아니다.
다만, 출간 전까지 책 한 권의 글을 계속 읽어오고, 수정하고, 작성한 탓에 소소하지만 확실한 변화가 생겼다.
책을 쓰고 나서 얻은 것
책 읽는 속도가 빨라졌다. 내용 확인을 위해 반복해서 책 한 권을 통으로 읽다 보니 책 읽는 속도가 늘었다. 전에는 책 한 권을 사거나 대출하면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대여 연장을 할 때까지 꽉 채워서 한 달에 한 권 겨우 읽을 정도였다.
속도가 느린 것도 있지만 책을 읽는 것이 매일 밥을 먹듯이 하는 행위가 아니었기에 몸에 배지 않아서였다. 같은 책이라도 여러 번 읽고, 정확한 검수가 필요하니 정독을 하며 속독을 하는 능력을 얻게 됐다.
덕분에 읽어봐야지, 했던 책들을 맘만 먹으면 주말에 아이를 재워놓고 한 권 뚝딱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잠들기 전 여전히 스마트폰과 한 몸이 되어있긴 하지만, 한 번씩 종이책을 집어 들기 시작하면 한두 시간 만에 정독이 가능해졌다.
책의 핵심은 내용이다. 그러나 책을 둘러싼 마케팅과 표지, 인쇄, 색감도수 등도 책의 한 부분이다.
전에는 책 제목과 목차, 내용 정도만 훑어보고 책을 골랐다면, 지금은 출판사 이름, 편집자와 담당자들이 몇 명이 있는지, 표지 재질과 후가공은 뭐가 들어갔는지, 내지 재질과 폰트와 글씨 진하기 등을 확인한다.
'이 표지 그림은 삽화 작가님이 따로 그리셨구나. 찾아봐야지.'
'여기랑 여기 페이지마다 글씨 굵기가 좀 다르네. 글자 설정을 잘못하셨나 보다.'
'여긴 편집자랑 검수가 4명이나 되네. 만드는 데 오래 걸리셨겠다.'
결혼을 해본 사람이 결혼식장에 가면 보는 눈이 달라진다던데 딱 그 말이다.
예전엔 작가가 누군지 제목과 목차를 대충보고 무슨 내용인지만 확인했는데 이제는 제목을 어떻게 지었을지, 목차의 작명센스는 어떻게 발휘했을지, 표지는 어떤 종이인지, 책 내지 중 인쇄가 고르지 못한 부분이나 잉크 찍힘이 눈에 잘 보인다.
*그렇다고 내 책이 완벽한 건 절대 아님
저 디자인과 인쇄 종이를 작가가 선택했을지, 실제 나온 모습을 보고 좋아했을지, 상상해 본다.
전에는 작가=셀럽이라고 느꼈다면, 이제는 이 책을 쓴 사람의 평범한 일상을 머릿속에 그려보게 된다.
은퇴하고 나서 쓴 글이라면 지금도 후속작을 작업하며 북토크와 소소한 만남들을 이어가고 계시겠지. 응급의학과에 근무하는 의사의 글이라면 오늘도 당직을 하며 바쁘게 살고 계시겠지. 육아하는 엄마 작가라면 지금 이 시간 애들 등원시키고 책홍보와 하원 후 장보기를 하고 있겠지.
화려하고 유명한 일상들만 살 거라고 생각한 '작가'라는 타이틀이 나에게도 붙으니 꼭 그렇진 않겠구나. 읽고 있는 책의 저자들의 평범한 일상을 상상하게 된다.
책에 관해서는 어떤 책이더라도 나보다 낫다는 대전제를 깔고 읽게 된다. 역시 이렇게 잘 쓰시니 이만큼 팔리셨겠지, 하는 기분으로 에세이든 기술서든 존경의 마음으로 읽는다.
비단 책뿐만 아니라 전에는 그냥 그냥 흘러가는 TV의 광고, 드라마, 영화들도 우러러보게 된다. 대스타가 나오는 띵작 말고 '시간 때우기용', '가볍게 볼만한 영화', '엄마들의 아침드라마'라는 표현이 붙는 어떠한 형태의 콘텐츠라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땀/눈물이 배어있을까 생각한다.
톱스타가 뭐 홍보한다고 개그프로까지 나오나, 했던 게 창작자의 자기 열과 성을 다한 작품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바꾸어 생각한 하게 됐다.
앨범, 드라마, 영화.......
대단한 작품 아니고서는 그저 그런 거라고 치부한 내 치부를 때린다.
글자만 써도 이렇게 시간이 걸리고, 부족한 게 많고, 다른 이들의 노력이 들어갔는데 영상이 되고, 스타일을 꾸미고, 홍보를 하다니, 모두 대단한 창작자들이라는 생각뿐이다.
전처럼 칼 같은 비평이 쉽사리 나오지 않는다.
을메나 고생했을고, 생각이 먼저 든다.
사람을 새로 만나는 게 스트레스인 성격도 있지만 나 같은 파워 엔프피(ENFP; 외향형 인간)인 경우, 너무 신나는 일이다.
물론, 서비스나 일이라면 다른 이야기겠지만 책을 만들고 좋은 점 중 하나는 내가 배우고 싶고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확장되는 것이다.
나이, 학벌, 직업에 상관없이 나와 비슷한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된 것이다. 전에는 내가 사는 바운더리 안에서만 만나고 이야기했다면 반경이 넓어진 상태에서 훨씬 다양해진 사람들을 만나는 건 신나는 일이다.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돈을 주고서라도 모임에 가고, 연인을 이루기 위해 비싼 돈을 지불하며 플랫폼과 업체를 이용하는 현대사회에서 공짜로 결이 비슷한 사람들을 마구마구 만날 수 있는 건 초대박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전에는 학점 2.9면 3점 초반
토익 490은 500 초반
이라는 반올림식이 었다면
책을 내고나선
2점 대학점
400점대 토익이라 한다.
어설플수록 책을 쓰려는 의도(모자란 사람의 천직 찾기)를 알아봐 줄 것 같아서 하는 어그로 아닌 어그로이다.
모자라고 찌질해 보이던 과거가 더 이상 부끄럽지 않게 된 것도 하나의 수확이다. 부족하고 실패해서 다행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책이어서 만족스럽다.
아마 책을 쓰면서 돈을 버는 것보다 이런 소소한 획득이 더 크다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