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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니 Jan 23. 2024

첫 책 인세 후기

3달 된 초보 작가의 소회

23년 10월에 첫 책으로 직업 에세이를 출간하고 석 달이 지났다.


연말이 지나고 새해가 되자 문자가 들어왔다. 

인세 정산을 위한 계좌번호를 확인하고 며칠 후 1년에 한 번 들어오는 인세를 받았다. 


어떤 출판사는 월별로 받기도, 분기별로 받기도 한다. 출판사에서 많은 종수를 출간하고 작가가 많다면 1년 혹은 2년에 한 번, 간혹 출판권 설정 일자가 끝나는 3년이나 5년에 한 번 정산을 한다고도 들었다. 

(출판권: 저작물을 원작 그대로 인쇄 및 문서 또는 도화로 복제 · 판매할 권리)


내가 받은 금액은 45만 몇천 원이다. 

계약서 조항의 '팔린 금액'의 10%가 들어왔다. 

어디에 얼마나 팔렸는지 보여주는 엑셀 시트까지 상세하게 첨부가 되어 있었다. 


팔린 금액이란, 책의 정가가 아닌 서점 납품가와 인터넷 할인가로 팔린 금액을 말한다.

내 책이 만원이라면 유명한 대형 서점인 교보, yes24, 알라딘에는 정가의 60-70% 가격으로 납품한다. 


왜?


사람들이 책을 가장 많이 사게 되는 플랫폼이니까!

책을 살 수 있게 좌판을 열어주는 장소(온/오프라인)에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책)을 주는 것이다. 게다가 출판 업계엔 '반품'이 당연하다. 갑질을 하는 횡포가 아니라 관행처럼 이어져 오는 법적으로 가능한 반품이다.


책이란 재화의 특이성 때문이다. 소비자 법에 의하면 어떤 업체가 물건을 팔기 위해 사들인 물건은 정해진 % 이내에서 정당한 반품이 가능하다. 단, 파손이 안 됐다는 조건 하에서.


대개의 물건들은 소비재이기 때문에 헐값에 팔면 팔았지, 반품이 일상적이지 않다. 유통기한이 있거나 일회용이거나 하는 이유들 때문에다. 반품을 하는 배송료를 들이느니, 그냥 팔고 말지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책은 그게 안된다.

써서 없어지는 재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고로 멀쩡한 반품이 가능하고 법에서 이런 구조에 대한 특이성을 인정하여 명시해 놨다. 인세는 이런 반품될 수 있는 상황까지 고려하여 인세를 정산한다.


계약서에도 '팔린 금액'의 00%를 주겠다고 서로가 확인하고 사인을 한다.


이런 부분을 깔끔하지 못하게 처리하는 출판사도 많다고 들었다. 다행히 내가 계약한 출판사는 잔뼈가 굵은 해당 분야 1인자인지라 자동화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모든 판매 현황을 그대로 공개하여 의문을 품을 여지가 없다. 


계약하면서, 중간중간 궁금한 것을 문의하면서 다 알고 있는 사항이라 인세가 적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오히려 팔린 권수를 보며 스스로 대박이라고 깨방정을 떨었을 뿐이다.


왜냐면, 지금도 인플루언서라고 하기엔 뭐 할 정도의 애매한 구독자 수와 팔로워 수를 가진 SNS 계정주지만 출간 당시엔 더 아무것도 없던 시절이라 누가 나를 알고 책을 사주겠나, 싶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슷한 시기에 출간한 훨씬 유명한 분들의 책들도 100권 이상을 출간한 달에 넘기지 못했다는 말을 들어서 100권이 내 목표였다.


목표치의 3배가 넘는 숫자를 달성했으니 쾌재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손익분기점을 찍으려면 판만큼 또 팔아야 한다는 사실은 그저 그런 책을 출간한 초보작가 나부랭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럼에도 책의 영향력과 인지도가 유의미하냐고 묻냐면 나는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전에는 어디 가서 이런 사람입니다, 브런치에서 글 써요, 해도 SNS를 하나 파서 하는 애구나, 정도로 인식해 줬다면 지금은 "책을 썼다고?"라는 대답의 피드백이 돌아오는 것을 느낀다.


베스트셀러 작가?!! 이런 건 아니고, 신뢰를 주는 힘이 있다.

누군가에게 인스타 디엠을 주거나 잠깐 대화를 나눌 때 이거 뭐 하는 새끼지?, 보다 책 쓴 놈이네, 하는 반응이 보인다. 


책 쓴 놈이 사기꾼이네,라는 소리를 들으려면 [역행자]만큼 베스트셀러가 되어야 그런 악플을 받는 것 같다. 근처도 못 간 초보작가 나부랭이는 '신뢰'를 얻게 된다. 


얘가 좀 특이한 경로를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특이해서 책까지 냈구나, 하고 방어벽을 살짝 풀고 대해주는 덕에 다양한 사람들과 터놓고 대면/비대면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두 번째 책도 준비 중이다.

한번 실용서적을 출판하는 출판사에 기획서를 돌렸다가 시장성 부분에서 좋지 않다는 평을 듣고 텀블벅 펀딩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그간 브런치 매거진 [대학원 안 가고 메디컬 라이터 되는 법]에 쓴 내용과 더 필요한 깨알 같은 지식과 노하우를 영혼까지 끌어모아 원고를 작성하고 있다. 


펀딩은 다음 주 중에 열리고, 2월 한 달간 열어둔 뒤에 3월에 배부할 예정이다. 내가 한 일거리, 생활거리를 말하는데 책으로 푸는 게 습관이 된 것 같다. 부디 내 습관이 타인들에게 들을만한 거리이길 바라본다. 


책도 논문처럼 한번 결과물을 내면 빠져나올 수 없는 진흙같이 스며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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