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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니 Nov 20. 2023

실패 컬렉터

책을 내고 홍보가 필요하다 해서 개인용으로 지인들과 소통하던 인스타그램의 계정을 하나 더 만들었다. 브런치에도 이벤트 홍보할 겸, 더 많은 사람들에게 브런치 글로는 시시콜콜하지 못했던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 


인플루언서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기왕 하는 거 더 많이 홍보가 되려면 노출이 되는 기회를 노려야 하니 꾸준히 올렸다. 이 정도면 다른 사람들이 흥미를 느껴 내 책에까지 접근하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를 품으면서 말이다. 


결과는 보기 좋게 실패!

같이 시작한 다른 계정들은 한 달에 천명, 만 명 확확 오르는데 내 계정은 하루에 한 명 정도만 팔로우를 했다. 성과가 없으니 역시 재미가 없어졌다. 한 달간 출간이 될 때까지 매일 데일리 일상을 올렸는데 차츰 시들해지면서 이틀에 한번, 사흘에 한번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동료와 수다를 떨다가 번뜩, 짤막한 숏폼 형태의 스토리가 생각났다.

이야기의 주제는 어떻게 지금 대학원에 들어왔는지, 였다. 


당시 임신 8개월의 만삭이었는데 여차저차해서 지금의 지도교수님을 컨택(대학원 입학을 위해 미리 면담하는 것) 했다. 


요 짧은 대목이 콘텐츠로 탄생한 것이다.

[만삭의 임신부가 한 일]

제목만 보면, 태교라던가, 요가라던가, 신생아 교육, 같은 게 떠오를 텐데 대학원 컨택이라니

반전미가 있어 보여 만든 콘텐츠는 예상대로 조회수가 높았다.


그 뒤에 만든 콘텐츠들도 자극적인 반전미를 노렸는데 연달아 성공은 못했고, 내 비루한 성적표가 잭팟을 터트려줬다. 


자신의 약점을 노출한 것이 큰 사랑을 받다니 인생은 정말 모를 일이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성적표 릴스가 무서우면서도 본격적으로 내 실패 모음집을 낱낱이 까발릴 때가 됐구나, 싶다. 



간호학과 4년을 2.9로 졸업하고,

첫 병원에서 태움 받았다고 도망치고

그 뒤 병원에서 1년 겨우 채우고

아프리카로 도망치고

현지인이랑 그만 좀 싸우라고 쫓겨나고

한국 와서 병동 가자마자 하루 만에 퇴사하고

겨우 들어간 연구간호사 자리는 결혼한다고

또!! 1년 만에 그만뒀다.


이쯤 되면 실패 컬렉터다.


그럼 성공할 때가 되지 않았니?

아직 멀었다.


내가 굳이 굳이 일하고 싶다고 퇴사한 남편의 중국회사는

코로나가 심해지자 직원들이 그만둔다고 월급을

두배로 올렸다고 했다. 


지금 내연봉?

남편 마지막 연봉의 반토막밖에 안 된다, 하하하

그래서 불행한가?


아니! 내가 자초한 실패들은 내가 결정한 삶의 방향이라 완벽하게 행복하다


그뿐이랴.

우격다짐으로 남편 그만두게 하고, ngo 파견 근무자 할 거라더니 홀랑 조건 더 좋아 보이는 역학조사관 가더니 임신하자마자 바로 그만뒀다.


"그러게, 다니던 직장 그냥 다니지."

"그러게, 박봉에 ngo는 왜 지원해 가지고 남편 벌어다 주는 돈으로 중국에서 살지 그랬냐."


맞다, 다 맞는 말이다.

왜 돈도 안되고 업적도 안 되는 그딴 경험한다고 쓸데없는 짓을 했을까.

근데 그렇게 안 했더라면 책을 쓸만한 경험치가 없었을 것이요, 사람들에게 제공할 정보가 다양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아이를 만나서 박봉이지만 행복한 직장생활과 학업, 그리고 가족과의 생활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정신을 못 차리는 나는 임신 중기에 몸담고 잇던 연구원에서 대학원생 전액장학금 지원을 했다가 보기 좋게 똑떨어지고 컨택한 교수님을 찾아가 입학을 한다. 당연히 전액 장학은 아닌 상태로 말이다.


"야 4-5년간 고생하고, 학위로 돈 몇 천만 원 날리네, 일류대나 유학도 아닌데 그거 해서 뭐 함?"

이라고 하면 팩트 맞다.

반박할 여지가 없는 진실이다.

그럼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동의하니까 후회하니, 아무것도 도전하지 말걸 후회하냐고 묻는다면 마찬가지로 눈곱만큼도 그런 생각은 없다.


쓸데없이 트라이 안 했다면 지금처럼 행복한 대학원 생활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소액이지만 학교에서 지원하는 장학금에 학기마다 받고 있어서 이 부분도 도움이 된다.



이쯤 되면 실패하려고 일을 벌이는 사람이다.


그렇게 모인 실패의 과정들이 우습기도 하고,

재밌어 보이기도 해서 올린 브런치 글을

한데 모아 책으로 만들었다.


자비던 기획이던 자본이 투여된 것은 스트레스가 된다. 이것은 내가 얌전히 책 같은 것을 내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기획서를 쓰고 제출하고 계약하고 편집하는 숱한 과정을 겪으면서 생각한다. 그것을 안 했을 때의 내 시간과 하고 나서의 내 시간을 비교한다. 스트레스받고 돈만 버리고, 성과 없는 책을 출판했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시간을 그리워하고 후회할까?


눈곱만큼도 후회하지 않는다.

해서 남는 게, 안 해서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 좋으니까 말이다.


나는 실패한 사람인가.

쓸데없는 일 해서 손해 본 사람인가.

팩트로 조지면 맞는 말뿐이지만 정신승리든 뭐든 압박 없이 마음이 편하고 행복지수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지금을 누리는 게 패배자의 삶일지언정 너무 행복하다.


"나 같으면 안 하고 말지, 쪽팔리게."


맞는 말이다. 쪽팔리고 돈 아까운 쓸데없는 도전들의 연속이 내 삶이다.

그래서 행복해졌다고 하면 너무 억지일까.

쓸데없이 일 벌이고 모조리 다 실패했는데 왜 때문에 행복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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