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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니 Oct 26. 2024

나를 남겨놓는 것

작가 유영님을 추모하며

오늘 배우 김수미님이 별세하셨다는 뉴스가 떴다.

사인은 고혈당 쇼크


자주 보던 카카오웹툰의 작가 유영님도 몇 주전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뉴스를 봤다. 


쌍둥이 아이를 낳고 그중 한 아이에게서 장애가 있던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웹툰으로 그리던 작가였다. 


내가 임신을 하던 즈음에 그녀의 웹툰을 보기 시작해서 많은 부분이 공감이 되었고, 여전히 개선되지 않는 법적인 제도적인 사회적인 문제들을 알게 되었다. 


바쁜 일상 속에도 가끔씩 그녀의 일상은 점점 나아가는 희망을 보여주었고 일면식도 없는 팬이라고 하기엔 미약한 구독자였지만 하루아침에 벼락같은 소식에 마음이 무거웠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서 아이들과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내는 일상들이 올라오면서 멋있고 잘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그 단란하고 행복했던 가정의 일상이 도무지 가늠이 되질 않아 가슴이 많이 쓰렸다. 


그럼에도 가족을 통해 인스타에 올리는 피드를 보며, 이 상황 속에서도 아이를 생각하고 서로를 바라보며 힘을 내는 유족들의 삶이 다시 한번 부디 더 잘 되시기를 바라는 희망의 기도로 이어졌다. 



어느 날 갑자기 의도하지 않았고 본인이 초래하지도 않은 죽음을 목격할 때마다 허망함과 동시에 공포감이 들었다. 


아이가 없었을 땐, 공포감이래 봐야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죽다니, 정도였지만 아이가 생기고 나니 이 아이의 일생은, 이라는 감정으로 바뀌었다. 


작가님의 작고 소식에 한 가지 든 생각은, 아이들이 엄마의 사랑을 그대로 보고 자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아주 상관없는 남이 보아도 그녀의 삶과 육아는 치열하면서도 사랑밖에 없는 인생으로 가득했다. 


카메라로 다 담지 못한 순간의 마음과 고뇌까지 담겨있는 기록물이 영원히 남는다면 깊은 슬픔 속에 남겨진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살아가면서 큰 희망과 선물이 될 것이다. 



내 가족 일은 아니지만 한 번씩 갑작스러운 소식을 듣게 되면 우리는 인생이란 무엇인가, 멍하니 떠올리게 된다. 


자식이 없을 때는 삶의 존재 이유 같은 걸 곰곰이 생각했다면 자식이 생기고 나선 생존이라는 키워드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 문제에 대해 여러 원인과 변수들을 언급하며 돈과 집과 환경의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내 지극히 사적인 의견에는 생존의 문제가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이를 갖기 전에 왜 아이를 가져야 하는지, 가지고 싶은지, 가지고 싶지 않은지, 고민한 이유의 중앙에는 돈 문제가 아니었다. 커리어 문제도 부차적인 것이었다. 


충분히 아이가 자립할 시간만큼 내가 살아 있을까, 내가 부모로서 아이를 가슴에 묻어두지 않는 삶을 평생 누리고 살 수 있을까. 


어이없게도 내 고민은 서바이벌 게임 같은 현재의 시간 속 생존이 얼마나 안정적인가를 생각했을 때 불안한 것이 아이를 갖지 않은 가장 큰 이유였다. 


남편과 결혼을 한 신혼에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특히, 타국에서 살기 시작한 신혼 생활이었기에 안전 인프라가 한국보다 불안할 수도 있는 중국이었기에 서로가 온전히 생존하는 시간을 오랫동안 누리는 게 결혼생활의 첫 번째 목적이었다. 


갑자기 아이가 생기고 나서도 나의 생존 불안은 계속되는 것 같다. 뉴스에서, 주변에서, 들려오는 생존이 끝까지 성사되지 못한 이야기들은 한 번씩 나의 불안을 시뮬레이션하게 만든다. 


'우리는 운이 좋아서 함께 살아가고 있을 뿐이야.'


그저 운이 너무 좋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생각으로 결론지으면 무겁던 마음이 다시금 살아갈 용기를 주곤 한다. 


인생은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질 수 있으니 같이 있는 시간 동안은 미워하지 말고 따뜻하게 사랑하는 마음만 키워서 살아보자고. 


상반기를 거쳐오면서 지난 글에 가족과의 관계가 참 어렵고 이제는 좀 끊어버리고 싶기도 하다는 이야길 남겼다. 


어리석은 마음을 뉘우치라는 듯이 유명인들의 비보는 다시금 생존에 대해 생각하게 하며 지금 겪는 갈등은 생존하고 있기에, 너무도 안정적으로 생존이 된다고 생각하는 오만함 때문이라, 경종을 울렸다. 


내일 전원이 꺼지듯 서로가 살아있는 눈으로 반짝이며 소통할 수 없을 확률은 타자를 치는 일개 인간이 계산할 수가 없다. 


적어도 서로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 순간만큼은 최선을 다해 함께 살아있는 시간을 누리자고 되새겼다. 


글을 쓰고 글을 읽고 있는 지금의 우리는 살아있지만 언제까지고 살아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 말아요. 


그리고 남겨진 우리들은 떠난 이를 추모하되, 남은 내 생존이 이전보다 더 큰 가치로 살게 되었음을 잊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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