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고 별일 없어 보이는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만,
사실은 많은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소리없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마치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매스컴에서 항시 떠들지 않기 때문에 잘 안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죠.
회사는 장사가 잘 되고 팀원을 채용하였고, 그 중 한분은 빠르게 수습기간 안에 퇴사하셨습니다.
서로가 맞지 않았다고 하지만 직원이었던 사람은 일방적으로 강력한 단체의 힘 앞에 약한 개인이었다고 상처입었을 수 있고, 회사는 괜한 시간낭비를 했다고 생각하는 잡음 사이에서 그 두가지를 모두 알고 겪어낸 제 자신도 있었죠.
그나마 다행인 것은 회사는 계속 장사가 잘 되고 있어서 저를 갈구고 탓할 시간이 없었고, 나간 직원은 새로운 일들로 바삐 지내고 있어 직접적인 원망을 더 듣지는 않았습니다.
상반기 바쁜 틈을 타 5월에 가족여행이란 걸 다녀왔습니다. 작년엔 시부모님과 아이, 남편이 대만 해외여행도 다녀오고 기차를 타고 부산에도 다녀온 경험이 있어 올해는 아이의 외가인 저의 가족들과 강원도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잘 다녀오고 어버이날을 앞둔 어린이날 주말에 별거아닌 별 일로 지금까지 만나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 일은 오늘의 저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요.
표면적으로는 저의 엄마와 아이 아빠 사이의 장서갈등이지만 만약 우리가 아주 건강하고 견고한 관계였다면 지금까지 연락을 안하고 있게 됐을까요?
그렇진 않았을 겁니다.
시간이 지나서 더 적나라한 글을 풀수 있다면 자세히 이야기 하겠지만 어쨌든 원래 그렇게 태어나서 반 백년 넘게 산 중년 여성과 30대 중반의 애아빠가 서로의 꺾을수 없는 어떤 지점이 충돌한 것이죠.
대놓고 말하면 저의 엄마가 약속 시간을 잘 안지킨다는 점이 원칙적으로 위배되는 행동이었으나 단순히 번복되는 지각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그 과정과 태도가 저에게도 쌓여온 시간들이 이제는 실타래 풀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남편과 저는 완벽한 사이일까요?
절대 그렇지 않죠.
우리도 항상 불안정하고 싸우고 나 혼자만 견디고 참아준다고 서로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아이가 우선이 되는 삶으로 살아내고 있죠.
저는 앞선 글들과 출간한 책에서 보았듯이, 사회적 인간으로 세상에서 내 일을 하고 내 밥벌이를 하며 외부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참 중요한 게 저란 사람입니다.
남편은 사회적인 성향이나 가족과 내부의 사람이 전부이며 이 안에서의 행복을 위해 항시 노력하고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언제나 남편의 가치관은 적절합니다. 가정이 우선이어야 하고,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으로 대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어야 하는 철칙이 맞습니다.
그러나 가족이 좋다고 아이와 배우자 하고만 하루종일 이불 위에서 껴안고 살면 죽습니다. 돈도 벌어야 하고 살림도 해야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지요.
문제라면 문제인 것이 요즘 세상에서 적당히 가만히 앉아서 주는 돈만 받고 평생을 살기엔 세상이 급변하여 언제 밥벌이가 위태로울지도 모르며 스스로 성장하지 않으면 일이 주는 권태로움과 스트레스에 자칫 가정의 평화를 위협하는 칼날이 되곤 하죠.
그런 핑계를 대며 저는 나름대로 같이 잘 살려면 내가 가진 바깥으로 도는 사회적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더 많은 일을 벌리고 사람들을 만나곤 합니다.
상반기는 그 모든 일들이 폭발하여 아이의 안위보다 나 자신의 부업을 더 소중히 한 파렴치한이 되었습니다. 반박할 여지는 없으나 남편의 말에는 늘 어폐가 있습니다.
"그냥 회사만 잘 다니면 되잖아."
그렇지. 회사가 당장 내년에 망하진 않겠지만 정말 소기업 회사 하나만 바라보고 내 모든 인생을 다 책임져 줄거라고 생각하나? 코로나 때도 연봉 동결을 할 정도로 세태에 흔들리는 회사를?
당장 내년에 매출 안나오면 연봉협상 못하고 삭감될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는 회사를?
진짜? 본인도 당장 출근하려면 애를 어디다 떼어놓고 나가야 하는 상황이면서?
물론 나의 욕심과 부업은 괴리가 커서 원하는 큰 재산 증식과 안정성을 절대 가져다 주진 않지만 뭐라도 해봐야 실패를 겪으며 다음 스텝을 계획할 수 있는 것인데 말입니다.
대학원을 다녀서 일주일에 2-3일은 밤 육아를 함께 못하지만 주말과 남은 평일의 저녁은 아이와 전적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엄청 육아를 잘하고 핸드폰을 한번도 안보고 유튜브를 안 틀어주는 만점은 못 되더라도 정서적, 물리적 학대없이 즐겁고 웃음이 가득하게 서로 웃고 춤추고 놀이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하고 있는 내 입장에선 사뭇 억울하고 씁쓸한 태도였습니다.
내 기준에서 한달에 두 세번은 외부활동으로 제한시간 없이 자유를 주는 게 적절하다 생각했지만 남편은 한달에 한번도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허락해주는게 어디야.'
생각했던 것이 몇 차례 외부 일정을 캔슬당하고 나니 울분이 쌓여서 금쪽이답게 과격한 행동으로 터트리고 부부 상담을 받으러 갔습니다.
하필 처음 간 부부상담소가 너무 별로라서 장기적으로 상담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려고 했던 계획이 무산되었지만 남편은 남편대로 자유를 허락하려고 노력했고, 부부 둘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우리 셋이 있어서 행복하면 행복한 거 아냐, 라는 그의 주장에 우리 둘의 독립적인 시간과 행복이 필요하다는 제 요구를 노력해주는 남편이 고마웠습니다.
한달이 지나고 아이는 수족구 등 몇차례 아팠습니다. 회사는 여전히 바빴고 새로운 사람을 구하는데에도 시간을 쏟았습니다.
셋이서 살아가는 데에는 큰 불편함 없이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부부가 건강하고 행복한지는 의문이기는 했지만요.
그러다 어제 남편과 저희 엄마가 갈등을 겪은 것처럼 저희 부부도 별 거 아닌 하나의 일이 도화선처럼 불을 지피게 되었습니다.
날이 더웠고, 모두가 짜증이 가득했고, 계획에 없는 장소에서 갑자기 들어갈 카페를 찾은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일까요.
내 더러운 성질머리의 끝에서 나온 넘어질 뻔해서 툭 튀어나온 "아, 씌ㅂ~!!" 비명에 짜증내지 말라는 농담같았다던 그 한마디가 너무 마음에 깊이 남아서 버럭 짜증을 내버렸죠.
그리고는 모든 일정은 캔슬.
"아! 집에 가!"
화가 났고 차에서도 징징대던 아이를 달래지 않던 내게 얕게 소리를 질렀고, 가는 내내 묵음. 돌아가는 내내 신경질적인 핸들.
도착할 때 즈음 근처에 세워줄 테니 잘못한 걸 생각해보고 2시간 뒤에 오라는 말에 금쪽이스러운 반항으로 전두엽이 찌릿하게 괴성을 지르며 내렸습니다.
아이가 있는데..
그때 내리고나서 신호등에 멈춰있는 차로 달려가서 아이한테 미안하다고 울고불고 사과할까, 생각만 나고 남편과의 감정싸움은 생각도 안 나더라구요.
내가 저주받던 그 모습대로 됐구나
너도 나처럼 똑같이 살아보라고 폭언을 자주 붓던 누구의 말처럼 애 앞에서 괴성을 지르는 미친년만 남았구나
남편의 의도는 화를 삭이고 카페에서 커피나 한잔오라는 부드러운 의미가 있었다고 후에 얘기했지만 그 당시에는 니 태도에 내가 화를 내도 되는 명분이 됐으니 잘못을 뉘우치고 오라는 체벌같았죠.
가만히 앉아서 화를 삭일 수 있는 정신 상태가 안되어 그늘 한 점 없는 뙤약볕을 30분 동안 걸어왔습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한가지 뿐.
이렇게 아이 앞에서 화를 내었다면 다음번은 더 자주 그러지 않을까.
우리가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할 수 있을때 평화롭게 헤어지는 게 맞지 않을까.
모든 결혼의 이유가 가지각색이듯, 이혼과 별거의 이유도 다르겠지만 이런 허접한(?) 이유로도 그럴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흔하고 뻔한 애 때문에 어떻게 그래, 라는게 90%지만 정말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들이 시발점이 되어 큰 결정을 내리는 게 아닐까.
많은 생각이 드는 주말이었습니다.
참 잘 살고 있어 보였는데 별 거 아닌 일들도 소소하게 터져줍니다.
매일 뉴스에서 누가 죽었다는 게 아무렇지 않은 세상에서 이 정도 불행쯤이야, 생각하지만요.
하반기에는 이런 관계들이 잘 해결되고 각자의 마음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