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방대 간호학과(자대병원 없음)를
무려 2.9학점이라는
어마어마한 점수로 졸업을 했습니다.
대학원?
꿈도 못 꿨고, 그것은 내 길이
아니라고 못 박았습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계약직 연구원을 하게 되어
대학원이란 것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왜냐면, 옆도 앞도 모두
석사 or 박사 뿐이었으니까요
어쩌면 내 경력을 발판 삼아
대학원을 가볼수도 있고,
지금 하는 일을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 싶어
진학에 성공합니다.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 있는
SKY 중에 하나인 곳을요
그러나 석사의 꿈은 매번 좌절되었습니다.
한 번은 결혼을 하고 중국을 가야 해서,
한 번은 중국어로 대학원 가기 힘들어서,
한 번은 영국 온라인 석사 과목을
패스하지 못해서,
매번 자퇴 아니면 수료로 끝났습니다.
시간은 또 흘러
아이를 낳게 되었고,
한국에 있으면서
석박통합과정을 가게 되었습니다.
첫 목적은 당시 일하던 연구소
내 장학 혜택을 받으려 했지만
보기좋게 떨어지고 고민하다
왠지 지금 안 하면 영영 못하게 되어
쓸데없는 원망을 품을 거 같아서
자비로 입학을 하였습니다.
출산휴가 종료와 함께 이직을 했고,
2022년 3월 2일 개강과
함께 첫 출근을 했습니다.
그렇게 들어간 대학원은 코로나로 인해
전면 온라인 수업이었고,
한 학기동안 회사 안에서
수업을 듣거나 집에서
동영상 강의를 들었습니다.
첫 학기부터 논문은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고 상담을 하였고,
교수님은 하고 싶은 걸 하라는
뜻깊은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뭘 할까, 하다가
학기말에 뜬 대학원생 연구제안서
공모전을 보고 지원을 했고
엉겁결에 당선이 되어
200만원이라는 거금이 생겼습니다.
제가 낸 제안서는 전 직장의
국제보건 사업 데이터로
연구를 하고 싶다는 것.
단, 기관이 오케이를 해야 가능하다는 것.
안 되면 그냥 상금 돌려주면 되지 모.
하는 생각으로 말씀드렸고,
수락해 주셨고,
모든 금액은 해당 데이터를 주는
현지 기관에 납부하였습니다.
덕분에 논문도 쓰고,
졸업도 하고,
박사(Ph.D.)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한 건
그냥 쓴 것뿐입니다.
모든 공은 내 운과
그 운이 있게 만들어준
관계자 분들의 것입니다.
저는 정말 한 게 차려준
밥상에 숟갈을 들었다 놨다,
한 것 뿐입니다.
그마저도 중간중간 힘들어
뒤지겠다고 하소연 했지만요.
최종본을 제출하고 쉬고 있는
25년 연말은
일단 가족들과 함께
그간 못 지낸 시간을
찐하게 보내려고 합니다.
"엄마! 농문(논문)은 언제 끝나요?"
하던 딸래미의 물음에 이제 끝났으니
같이 놀자고 할 때가 되었거든요.
이 자리를 빌어 오며가며
격려해 주시고 댓글 남겨주시며
안부를 전해주신 모든 구독자,
작가님들께 큰 감사를 드립니다.
글 재밌게 봐주시고
앞으로도 의미있고 유쾌한
글로 함께 하길 바래요!

사노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