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주 52시간제가 시작되던 2010년대 후반부터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퇴근 후 삶의 경계가 불분명했던 과중한 업무 지옥 속에서 개인 시간을 보장받는다는 의미에서 일과 개인의 삶이 밸런스를 맞춰간다는 뜻의 신종 은어였다.
2020년대 후반을 달리는 지금, 또 다른 신종 키워드가 생겼다.
이름하여, '워라블(working-life blending, 혹은 워라하; working-life harmony)'이라는 말이다.
워라밸이 일과 삶의 경계가 명확한가를 의미하는 말이었다면
워라블은 일과 삶이 얼마나 조화로운가를 의미한다.
아래 그림 예시처럼 일이 끝나고 개인의 삶이 터치받지 않는 것이 이전까지의 이상향이었다면, 진정으로 본인 일의 몰입을 원하는 상황이라면 워라블을 원하는 경향으로 바뀌는 것 같다.
명확한 워라블이라고 할순 없지만 내 지난 4년간의 직장인으로서 파트타임 대학원을 마친 워킹맘의 삶이 유지되었던 이유도 워라블 덕분이었다.
물론, 회사는 엄연히 정확한 출근과 퇴근시간이 존재한다.
허나 회사가 나에게는 육아와 대학원의 양립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배려 하에 유동적으로 이 부분을 활용하면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8시 출근 - 5시 퇴근이지만 8시에서 8시 20분 사이의 유동적 출근, 혹은 아이를 데리고 출근해서 20분 정도 등원을 하는 시간을 배려받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육아기 단축근로를 사용하기도 하고, 사용하지 못할 시에도 수업 시간에 대한 배려로 주중 낮 시간에 이른 퇴근이 가능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퇴근!' 이라며 업무를 배제했는가?
그렇지 않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퇴근 후 아이를 재워놓고, 수업 중 받는 이메일에서, 나는 쉼 없이 일을 쳐내고 있었다.
삶이 너무 팍팍하고 어렵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가끔은 끊이지 않은 불의 사슬에 갇힌 기분이었지만 대부분의 일들이 '간단한' 문자와 전화로 소통하여 끝낼수 있는 것이기에 어려움보다는 만족감이 컸던 탓에 가능했다.
3교대 간호사였다면 반드시 그 시간 안에 할당된 근무시간을 채워야만 나올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다해도 외부에서 소통만 잘한다면 충분히 일을 할수 있다는 만족감 덕분이었다.
덕분에 빠른 직관력과 판단을 기르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훈련받은 워라블 능력은 학위논문을 쓸 때 빛을 발했다.
업무와 논문 쓰기가 빽빽하게 차 있을때 급한 일을 분배하고 조정하며 논문을 썼고, 아이와 있는 시간을 가급적 포기하지 않으면서 두가지 업무를 쳐낼 수 있었다.
그 덕에 박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고, 앞으로의 삶에서도 워라블을 지향하며 살게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아이가 있는 가정을 두고 있는 양육자에게 워라밸은 어찌보면 너무도 가혹한 일상의 굴레가 되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건 규칙성보다 불규칙성이 난무하는 시간이 더 많다.
이런 경우, 아이를 무조건 내 업무시간에 맞춰 돌보는 것보다 아이의 시간에 맞춰 내 업무를 리드하는게 적절할 때가 많다.
내 시간은 9-6에 묶여있다면 그 중간에 발생하는 모든 사적인 것들을 하나도 관여하지 않아야 6pm 이후에 주어지는 온전한 내 시간에만 육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사유로 많은 경력 단절이 발생하게 된다. 고로, 앞으로는 워라밸의 틀에서 워라블로 발전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당연히 모든 사회적 현상에는 장점과 단점이 공존한다.
워라밸이 완벽하지 않았던 것처럼 워라블도 완벽하진 않다.
업무가 내 시간을 침범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우는 아이를 안고 있으면서 클라이언트와 통화를 하게 될 경우가 워라밸이 지켜질 때보다 99.9%의 확률로 발생하게 될것이다.
그럼 워라블을 원활하게 잘 사용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무엇일까?
워킹(working)에 있어서 '전문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전문성은 여러 정의가 있지만 워킹맘으로서 가지는 전문성이라 함은 전화로 질문을 받아도 그 자리에서 대답할 수 있느냐, 인 것으로 정의한다.
나에게 전화로 질문을 하는 것도 단순히 내 업무라서가 아니라 이 질문의 답은 이 회사에서 나밖에 할수 없는 것이고, 고로 그 질문의 답도 내 입에서 곧장 나와야 한다.
단순히, "이 물품 어디있어요?" 같은 문의사항이 아니라 "이거를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어요."에 대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의 해답이 필요한 경우다.
질문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도대체 뭔지 몰라서 묻는 것이니 내 입장에서는 풀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전문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정의한다면, 전문성이 꼭 어려운 지식만이 지니는 업무의 영역은 아니다. 의학, 과학에서만 사용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지식이 그 사람의 입으로 즉각 나오는 모든 것은 전문성이 된다.
일례로, 작년 이사한 집에서 갑자기 정전이 났고, 뭔가 문제가 있을때 관리소장님은 전화로 모든 걸 알려주셨다. 어디어디를 보면 되고, 어디어디에 전화를 하면 되고, 그래도 안되면 어디어디에서 주중 몇시쯤 방문할지 알려주겠다고 하셨다. 새로 이사온 우리는 이 건물과 단지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기 때문에 관리하는 분의 전문성을 따라 행동했다.
'그까이꺼, 누구나 다 아는거.'
그렇다. 전문성은 특정한 인물만 독점하는 정보를 가졌느냐가 아니라 필요한 사람에게 적절한 순간에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관리소장 아저씨가 배전함 있는 위치만 알겠는가?
누수가 났을때, 건물의 하자보수가 올때, 분리수거 할때, 이사 할때, 등등 개개인 입주자가 여기저기 전화하고 알아볼 일을 일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답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입주자들은 이러한 전문성을 가진 관리인 덕분에 매번 힘들여서 중구난방으로 수소문하지 않아도 된다.
바로 이런 것이 내가 생각하는 워라블의 핵심이 되는 전문성이다.
일차로 회사와 기관 안에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 더 높은 단계라면 그 안에서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
감사하게도 나는 가진 능력에 비해 이런 부분을 담당할 수 있는 회사로 출근을 했고, 회사는 이 부분을 인정해 줘서 서로가 윈윈하며 공존할 수 있었다.
어쩌면 앞으로의 나의 삶은 이런 부분을 더 깊숙이 지향하게 될 것이다.
워라밸보다 유연한 근무 관계를 가진 워라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