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노니 Dec 26. 2019

결혼 준비

스몰웨딩, 아니 가족 웨딩 준비

굵직한 신변 정리를 해가면서 본격 결혼식 준비를 시작했다.

순서는

자동차 구입

상견례-결혼 기념사진

택일

장소

예복

청첩장 주문

집 계약

신혼여행 예약

우리 부부가 가장 원했던 건 상견례 겸 식사로 우리가 결혼했음을 알리고 혼인신고하고 뾰로롱 날아가는 것이었으나 현실은 가족들끼리라도 모여서 사진을 찍고, 사진을 찍으려면 예복을 입어야 하고 등등 부가적으로 원하는 것이 있었고 해야 하는 도리가 있었다.

보통에 비하면 많이 하지 않는 것이지만 부부 둘만이 모든 것을 주도하지 못하는 상황은 여느 부부들과 다를 바 없었다.


스몰웨딩이 주는 어감은 현대식 젊은 사람들의 트렌드 웨딩이라는 느낌 같으니 나는 간단 웨딩 혹은 가족 웨딩이라고 부르고 싶다. 웨딩도 거창한 느낌이라 가족 결혼식 정도가 적당하겠다.



상견례부터 드는 비용은 천만 원이 넘지 않는 예산이 들었다(신혼여행 가서 쇼핑한 돈은 제외). 결혼 준비 비용 외에 1,300만 원을 소비한 곳이 있었는데 그건 차량이었다. 남편 회사의 경우, 한국인이 사는 시내 동네와 차로 한 시간 넘게 떨어진 곳이라 결혼해서 출퇴근을 하려면 차가 꼭 필요했기에 결혼 준비하면서 제일 먼저 쓴 큰돈이 자동차 구입비였다. 아주 저렴하지만 너무 작아서 위험하진 않은 차로 구입했다.


여러 플랫폼에서 도움을 얻었지만 그중 숨고(숨은 고수) 어플에서 모든 고수님들을 섭외해서 결혼식을 준비했다. 처음엔 구글링으로 스몰웨딩을 검색하고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장소 예약 어플이나 후기가 있는 플랫폼에 들어가서 가입하고 구경하면서 어디에 뭐가 있고, 일반적인 웨딩홀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의 결혼 준비를 공유받으며 다이어리에 따라 하고 싶은 건 적어 넣고, 아닌 건 빼버렸다.


상견례 장소는 지방에서 오시는 시부모님과 경기 북부에 있는 우리 가족이 만나기 쉬운 중간지점으로 고속터미널역 부근을 찍고 주변 상견례 장소로 마땅한 식당을 물색했다. 광고 후기글과 개인적인 후기글을 구분해서 가려내는 게 시간이 많이 걸렸다. 가격은 예비신랑과 둘이 책정하고 예약하면서 계산을 끝냈다. 식사 후 계산 실랑이를 방지하고자 그랬다.


상견례에서 처음 본 사람은 아가씨뿐이었는데 우리가 분명 얼굴을 다 알고, 심지어 나는 상견례 전에 결혼 인사드리러 가서 잠도 자고 왔는데도 다 같이 모여 있으니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어색한 덕담이 이어지다가 신랑이 이제 일어나실까요, 해서 근처 카페로 갔는데 웬걸, 분위기가 급 친목회가 됐다. 상견례 식당이라고 검색해서 찾아가지 말고 어디 동네 고깃집에서 구들장 지지며 앉아 있는 게 더 나은 걸까, 생각했다.



예비신랑이 한국에 와서 같이 결혼을 준비하는 시간은 상견례 시간이 유일했으므로 이때 청첩장에 들어갈 결혼사진을 찍었다. 둘 다 장시간 모델이 되는 걸 기피했고, 하루 종일 피곤하고 돈이 많이 드는 웨딩사진이 나중에 보면(평소에 잘 보지도 않고) 유치해 보일 것 같아 사진은 간소하게 하고 싶었다. 콘셉트는 옛날부터 내가 원했던 흑백사진으로 친정집에서 가까운 사진관을 예약해 찍었다. 다 해서 사진까지 고르는데 2시간 남짓 걸렸고, 사진사님이 돌잔치 아이 다루듯이 뽀로로 손인형을 흔들며 어색한 표정의 우리를 즐겁게 해 주셔서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날짜는 엄마가 받아왔고(교회에 다니지만 사주, 택일 좋아하심) 시댁에선 상견례에서 확실하게 우리 편한 대로 하라고 해두셔서 신랑의 회사에 허락을 구하고 말씀드렸다. 날짜가 11월 후반기라 좀 춥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다행히 오전엔 따뜻하고 괜찮았다.


날짜 선정이 끝나고, 미리 봐 뒀던 친정집에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시골에 있는 한옥 한정식집을 찾아갔다. 돌잔치로 가끔 후기가 올라온 곳이지만 결혼식을 했단 얘기는 없어서 괜찮으려나 싶었는데 예상 하객수와 수용인원이 동일하고 식사도 정갈하게 나오는 편인 것 같아 이곳으로 선택했다.

여름이 넘어가는 길목에 예약하러 가서 결혼 당일에는 초록 초록한 맛이 조금 줄었다.

당일날 식사가 어떻게 될지, 우리의 식 진행이 몇 분에 끝날지 의논한 뒤, 계약금을 걸어두고 돌아왔다. 이제 남은 건, 예복과 청첩장이었다.



예복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이유인즉슨, 장소와 예식에 어울리는 옷을 찾기가 어려웠고 굳이 화려한 걸 찾자니 돈도 아깝고 위의 장소에 맞는 화려한 예복은 없었다. 해서, 그냥 상견례 때 입은 깔끔한 세미 정장식으로 입고 인사나 했으면 좋겠다 하니 친정엄마와 불이 붙었다. 이쁘게 입고하자고, 사람들도 오는데 해서 별것도 아닌데 날이 서가지고 싸웠다. 결국은 엄마 승. 대신, 드레스는 야외에서 하니 날도 춥고 그러니까 한복집에 가서 다 같이 빌리는 것으로 하자고 결론지었다.


신랑은 장모님이랑 싸우지 말라고 지금까지도 한국 간다 하면 장모님의 말에 토 달지 말고 투덜대지 말라고 어린이집 가는 딸내미한테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고 당부하는 엄마처럼 교육시킨다. 그래서 한복도 둘이 가면 싸울 거니까 자기 엄마를 붙여줘서 감시자로 명했다.


다행히 사이좋게 손 잡고 가서 분란 없이 잘 봤다. 마마들 옷 구하는 게 어려웠는데 두 분 피부톤이 정반대라서 그랬다. 내 거랑 신랑 거는 금방 고른 뒤, 한 시간가량 여러 가지 디자인을 고르고 골라 중전마마 당의가 제일 괜찮아서 낙점되었다.


한복 입혀주시는 코디님은 시엄마 보고 친정엄마가 딸 시집보내는 게 아쉬우신 것 같다고, 따님 한복만 보고 계신다고 애틋하다며 탈의실 안에서 속삭여서 친엄마는 옆에 분이라고 말해줬다.



청첩장도 구글링 해서 사람들이 많이 하는 업체를 선택했고, 샘플 보내준 걸로 보고 선택했다. 예식장 지도는 없어서 내가 괴발개발로 그려서 보냈는데 그래픽 하시는 분이 고생 좀 하셨을 거 같다. 그림을 잘 그려서 보내주셨다.


청첩장도 다 맞추고 신혼여행지를 선택하는 일이 남았다. 처음엔 신랑이 자기가 갔던 아프리카 트럭킹(트럭 타고 이동하는 단체관광)이나 내가 갔던 탄자니아의 잔지바르(관광지 섬)로 생각했다가 신혼집이 한국이 아니니까 신행 후 고생할 걸 생각하면 가까운 데 가자 결정했다. 비행시간이 적고 가깝고 바다가 있는 괌으로 갔다. 실제로 괌은 아기 돌잔치용 여행을 많이 오는 것 같다. 우리같이 커플끼리 온 사람도 많았는데 커플 여행보단 쇼핑 득템으로 수확을 보실 분들이라면 꼭 가길 추천한다.



위의 모든 일들은 내가 찾아보고 선택하고 신랑에게 알려주면 승인받고 부모님한테 승인받고 진행한 일들이었다. 결혼 준비할 때 우린 우리 처지에 맞게 한국에 있는 사람이 한국에서 있는 모든 일을 담당하고 중국에 있는 사람이 중국에서 필요한 모든 일을 담당하기로 해서 크게 어렵거나 불편하진 않았다. 오히려 사공이 줄어들고 나 혼자 뱃머리를 책임지니 편했다. 엄마랑 부딪힐 때나 결정장애가 올 때면 조타수(신랑)가 와서 돛을 잘 바꿔주어 서로 만족스럽게 결혼 준비를 마무리 지었다.


신랑은 차를 사고, 집을 보러 다녔다. 차가 생겨서 대중교통이 없는 시골 공장에서 시내로 나올 수 있는 자유의 몸이 되어 중국어 한 마디 못하는 내가 그나마 가장 편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둘러보았고, 집도 그런 환경이 있는 곳으로 정했다. 주말마다 10곳 넘게 보러 다니고 동영상과 엑셀에 정리한 조건들을 정리해서 나한테 보고하는 일을 3주가량 했다. 계속 더 봐봤자 처음 집만 못해서 몇 개의 후보군을 선택해서 비행기표를 끊고 가서 직접 봤다. 그렇게 내 눈으로 보고 임대 계약을 했다. 여기선 한 달 월세를 일 년 치로 계산하면 더 싸게 해 주니 1년 계약으로 임대료를 한꺼번에 주고 보증금을 십 분의 일로 걸어둔다. 이사하는 날 보증금은 돌려준다.


부동산은 조선족 중개업자가 하는 곳에서 보고 우리에게 계약사항을 일러주면 우린 그런가 보다 하고 사인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위험한 거 아닌가, 싶지만 모르는 걸 어쩌나, 하면서 계약했다.

(그래서 한국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부동산에서 계약한다)


한국인들이 사는 아파트 단지 내에는 에어비앤비 같은 민박이 많다. 한인 커뮤니티 카페에서 보고 연락하면 예약이 가능하다. 그곳에서 이틀 밤 자고, 신랑 먼저 출근하는 거 보고 공항으로 갔다. 이런 삶이 곧 시작된다니, 예고편만 봐도 가슴이 찡한 느낌이 들었다.



가슴 찡한 느낌은 돌아오자마자 퇴사일까지 일 마무리하랴, 연차 소진하랴 정신없이 사라졌다. 퇴사하고 나서 좀 여유로워지나 했더니 2주 동안 집 정리, 짐 정리, 서류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신랑이 귀국할 날이 오고 있었다.


결혼 전날 저녁 퇴근하고 한국행 비행기를 타신 양반은 밤 10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결혼식이 친정 근처라 장모님이 마중 나가겠다 했으나 시댁 식구도 미리 올라와 계셔서 본인 아들이니 본인이 데리러 가신다 하여 시엄마, 나, 아가씨 셋이서 시엄마의 드라이빙으로 인천공항 나들이 갔다.


신랑은 프러포즈를 안 했다. 안 한 것 반, 못 한 것 반이었는데 사귀면서 둘 다 프러포즈가 진정한 의미의 프러포즈가 아니라면 굳이 하지 말자 생각했다. 결혼 준비하느라 바쁜데 시간을 쪼개어 이벤트를 또 하지 말자에 동의했다. 이벤트 속의 이벤트라 어설퍼서 기억에 남는 것도 좋고, 감동이어서 기억에 남는 것도 좋을 수 있지만 여력이 없다면 그냥 넘어가자는 게 우리 입장이어서 그냥 안 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시's women은 프러포즈는 무엇을 했니, 어떻게 했니, 오손도손 대화거리를 내었는데 세상 그런 거 없단 얘기에 분노하셨고, 공항에서 만난 아들을 반가워하시다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리라고 구박하셨다.


"요즘 남자애들 중에 프러포즈 안 하고 결혼하는 애는 너 밖에 없을 거다."

당장 결혼 취소하라고, 좋은 남자가 또 있을 거라며 아들이 없어졌으니 그냥 나는 딸이 둘인 셈 치련다, 하시며 신랑은 놀림당하며 숙소로 향했다.


아직도 명절에 가면 프러포즈 안 한 남의 집 아들이라는 타이틀로 조리돌림 당한다. 그래서 프러포즈를 했어도 재밌는 추억이었겠지만 안 한대로 재밌는 추억이 생겨서 가끔 "그래서 프러포즈 언제 해?" 하며 놀린다.


그 외: 코이카 귀국단원 연구 참여자로 인터뷰를 했었는데 가장 첫 질문이,

"봉사활동 다녀와서 가장 크게 얻은 것 무엇인가요?"에 “남편이요."라고 답했더니

"와이프요,라고 답한 단원도 계셨어요, 하하하."

무사히 귀국해서 거기서 만난 사람과 결혼한다는 게 신기한 일임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게다가 또다시 외국으로 생활하러 간다니 돌이켜보면 참 재밌어 보이는 인생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