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하는 사람은 계속 잘됐으면 좋겠어요.
혜자스럽다는 신조어는 GS25에서 출시한 '김혜자 도시락'에서 비롯됐다. 가격 대비 풍성한 내용물이 김혜자스럽다는 말로 구전되어 인터넷 소비층들에게 가성비가 좋고 양질이 보장된 제품, 내용물 등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지만 이 글에선 다루지 않겠다.
혜자스럽다의 어원인 김혜자 선생님은 국민배우이며 오랜 시간 아프리카 구호활동에 열심인 사람으로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탤런트다. 그녀와 동시대를 살지 않은 9N년생인 내가 처음 김혜자란 사람을 만나게 된 곳은 책이었다.
코흘리개 초등학생 때 본 그 책은 함께 봉사를 수년간 다닌 작가가 김혜자와 갔던 현장 활동들을 쓴 수기였다.
'뭐든 10년 이상은 해야 뭔가를 해봤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1시간짜리 수업을 듣기만 해도 지루한 내게 그녀는 [매우 멋있는 사람]으로 들어왔다.
처음으로 김혜자라는 사람의 이미지를 느끼고 나서 언제 티브이에 나와서 또 유명해지나, 하고 기다리게 되었다. 한동안 티브이에 잘 나오지 않아서 아프리카 간다고 안 나오나 보다, 그런 데 가려면 더 유명해져야 좋을 텐데 또 안 나오나, 하며 기다리길 몇 년이 지나 기억에서 잊힐 즈음 유명 작가와 황금시간대인 주말드라마에 출연했다는 얘기를 듣고 첫방부터 막방이 될 때까지 본방을 사수했다.
'아, 좋은 드라마로 다시 유명해지셨어. 좋은 일 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그 뒤로는 너무 오랫동안 종적을 감추는 일 없이 영화나 드라마 등에 자주 출연해 주셨다. 게다가 하나같이 내 맘에 드는 작품들 속에 찰떡같은 캐릭터로 나와주셔서 괜스레 어릴 때 바라던 일 중 한 가지가 이뤄진 듯한 간접경험을 겪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 또한 성인이 되고 그녀를 비롯한 당시 여러 인물들이 아프리카, 봉사활동 등의 키워드로 출판, 강연을 하던 시기라 막연히 그런 세계를 동경하며 간호학과에 들어갔다. 오래지 않아 에티오피아 봉사단원으로 가게 되어 작게나마 꿈을 이루었다.
에티오피아에 입국해서 현지 적응 훈련을 받고 있을 때 '카더라 통신'을 들은 적이 있다. 아프리카의 한 한인민박 사장이 그녀의 까탈스러움을 말하며 "영부인 납셨네." 하는 이미지로 남았다는 후문이었다.
팬이라고 할 것도 못 되지만 나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사람이었는데 역시 그녀도 다 포장인가, 연예인은 어쩔 수 없는 그런 부류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랬는데 살다 보니 똥인지 된장인지 먹고 나서도 똥도 맛있네, 하는 무딘 나도 현지 가정집에서 홈스테이(완전 현지식의 가정보다 생활수준이 더 나은 집)를 할 때마다 항상 설사며 두드러기며 난리가 났다. 문제는 몸이 이상이 생기면 나에게 베풀어 준 호의마저도 거절하게 되며 웃으며 좋은 일 하자는 일이 인상을 찌푸리며 외면 모드로 스위치가 바뀐다. 그래서 그 뒤로 나도 아프리카에 있으면서 새로운 숙소에서 묵게 될 때면 매트리스부터 가구까지 살충제를 살포하고 조금이라도 가려워지거나 몸이 안 좋아지기 시작하면 바꿔달라 하는 지경이 되었다.
아프리카 환경은 우리 수준의 시골집 벌레들이 아니다. 악어와 하마 같은 위협적인 동물들이 곤충의 모습으로 변형되었다고 하면 비슷한 비유일까.
그녀와 관련된 소문이 카더라 통신인 것도 있지만 설사 그말이 사실일지라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컨디션 고장 나면 진료를 보러 병원 의자에 하루를 다 보내고 컨디션이 좋아질 때까지 아무 일도 못하게 된다. 한두시간 걸려서 여행 다녀온 것도 아니고 좋은 모습으로 좋은 일하러 갔는데 민폐만 끼치고 갈 순 없는 노릇이니 필사적으로 내몸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실제로 그녀는 유년시절부터 유복하게 자라 모자람 없이 자랐다고 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해가 간다.
연기를 하더라도 자신의 선행이 시장가치에 이용될 땐 거절하나 모금의 도움이라면 거절하지 않았다. 돈이 목적인 일도 사익이냐 공익이냐에 따라 철저히 자신의 재능을 사회적인 것으로 돌렸다.
그런 그녀가 한 도시락 사업의 광고모델이 되었다. 단순히 이름을 빌려준 정도가 아니라 직접 제조공장을 찾아가서 품질을 확인하고 계약을 할 정도로 꼼꼼히 살펴보고 결정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탄생한 '김혜자 도시락'이 하나의 트렌드를 만들어냈다. 뿐만 아니라 제품 이미지에도 혜자롭다, 라는 표현을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아무것도 모르는 초등학생이 할머니뻘 되는 여배우를 조용히 응원하다가 정말 잘 돼버려서 너무나 뿌듯하다. 이런 사람이 어디 나뿐일까. 조용히 있던 자신의 스타가 결국 좋은 일로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이하고 변치 않고 유지되는 명성에 행복한 팬으로 남는 것은 생각보다 기분이 좋은 일이다.
그 행보가 멋있어서 계속 그녀가 안전하고 건강히 성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