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곳에서의 극단적 선택의 이해
뉴스를 처음 접하고 고질적 체육계 문제가 또 터졌구나 생각하고 보지 않다가 사건 기사가 자꾸 나와서 보니 몇 가지 안타까운 생각과 내 과거의 경험이 떠올랐다.
과거에 자살한 연예인, 운동선수의 비보를 접하며 개인의 입장은 생각 안 하고 '왜 꼭 그래야만 했을까?' 하고, 그릇된 의심만 있었다. 연예인이 힘들면 안 하면 되지, 왜 꼭 자살이 결론이 되어야 할까, 라는 단순한 생각만 있었다.
해외봉사를 하면서 겪은 일들이 그 시절 나의 고정관념을 깨는 계기가 되었다.
1분기 봉사단원 활동과 시련
국내 교육 때 들었던 봉사단원 사망 요인 중 자살이 꽤 큰 퍼센티지를 차지한다는 얘길 듣고 너무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사람이 힘들 때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단순히 감정으로 지나가면 다행이지만 심각한 수준에 이를 때도 있다. 그 수준에 이르게 한 데는 개인적인 생각과 외부의 환경이 한 사람을 고립시켜 한 가지 방법 외에는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그냥 나오면 되지. 왜 그런 선택을 할까.’
내가 직접 겪지 않았더라면
아마 체육선수들의 자살도 위와 같이 생각하지 않았을까.
고립무원이 주는 갇힌 생각의 위험
故최숙현 선수는 트라이애슬론을 굉장히 좋아하고 실력이 출중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운동 자체가 힘든 과정이지만 그녀는 이 길이 천직이라 생각할 정도로 자신의 종목을 사랑했을 것이다.
그래서 소속 기관 사람들의 잔인한 폭력도 감내하고 내부고발을 하면서도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내길은 이 길이고 한국에서 체육계는 매우 좁으니까 여기서 그만두면 어디서도 받아주질 않는다는 고립된 환경이 그를 감쌌을 것이다.
내가 그런 생각으로 극단적인 생각을 했었다. 해외개발협력 활동은 정말 재밌었다. 한국이라면 별로 어렵지 않았을 상황도 힘들게 헤쳐나가며 보람과 흥미를 느끼며 했었다.
인정받고 싶고 잘 해내서 계속 이런 일을 해보고 싶다, 욕심을 부리며 나아가다 내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연이은 나의 그릇된 성격에서 비롯된 실수들로 인해 결국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쫓겨나듯 출국을 했다.
처음 현지 직원과 문제가 생겼을 때는 한참을 괴로워하다 죽으면 편해질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한국에서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까짓 거, 회사에서 사표 쓰는 것도 아니고, '자원활동'을 하다가 문제가 생긴 것뿐이었다. 그로 인해 관련 기관으로의 취업이 좀 어렵고, 다른 관련 활동 지원에 제한이 있겠지만 개인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정도로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겐 그리 큰일이 아니다.
그게 아니면 뭐 어때. 다른 일을 하면 되지. 영원히 관련된 일을 하지 못하면 어때. 더 잘하는 일 찾아서 능력대로 일하고 있겠지.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을 못한다고 가족과 친구들이 날 잃어버릴 사실보다 최악인 건 아니었다는 현실을 주변 사람들을 통해 다시금 상기시키며 그래도 2년 가까운 시간을 채우고 돌아왔다.
결과적으로 그 시간들 덕분에 이후, 남편과 만나 서로 사랑하는 데 일조했다. 좋은 직장에도 취직해서 꿈에도 꿀 수 없던 대학원 공부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낙인찍혀서 못 갈거라 했던 국제개발 분야의 일도 다시 하고 있다. 세상은 내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건 나쁜 일인 경우도 있지만 좋은 일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故최숙현 선수는 나와 상황이 다르고 가해자들은 썩은 똥물에 튀겨도 시원찮을 놈들이다. 하지만 그녀의 선택에 어쩔 수 없는 감정이입이 되는 것은 그 상황에서 느꼈을 고립감 속에서 얼마나 괴로워했을지 느껴졌기 때문이다. 유능한 젊은 선수가, 사랑스러운 딸이, 소중한 친구가 사라진 자리를 어루만지는 이들에겐 가슴이 찢어질 듯한 일이다.
그는 트라이애슬론이 아녔어도 무엇을 해도 잘했을 것이며 트라이애슬론을 다시 하게 되어 원하는 성적을 거두며 보란 듯이 잘 살았을 것이다. 가해자들의 정당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아 억울함과 괴로움이 있었을지라도 종내에는 그들 모두 인과응보의 결과를 받을 것이고, 그들과 무관하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하루하루 뜨는 기사들에 분노가 끓어오른다.
어떤 환경도 한 사람이 목숨을 끊어야 할 정도로 정당한 상황은 없다. 죄를 지었으면 대가를 치르고, 더 이상 방법이 없다 생각해도 살다 보면 나도 모르던 새로운 방안이 나온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 해도 누군가는 나 때문에 슬퍼할 것이고 한 동안 그 힘듦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다.
에티오피아 집에서 홀로 힘든 생각들이 스쳐 지나갈 때면 한 가지 분명한 생각만 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죽고 내 시신을 처음 발견할 사람들은 날 끝까지 위로하고 지지하던 주변 단원들이다. 가끔씩 다른 나라의 단원이 피살되거나 질병으로 사망했다는 소식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하고 며칠은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같은 나라, 같은 지역 혹은 동기 단원들이 직접 목격한다고 생각하면 나로 인해 피해를 볼 것이 자명한 일이었다.
아무리 덜 트라우마 입게 하고 싶어도 그건 개인이 느낄 일이지, 자살한 사람이 해결하고 갈 문제가 아니다. 결국 남겨진 사람들은 큰 데미지를 입고 남은 임기 동안 괴로운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괴로워하길 바라는 인간들은 내가 죽든 말든 신경도 안 쓸 것이다. 좋은 사람이 피해 보는 게 싫은 세상이라면서 나까지 거기에 가담할 순 없었다.
오래 산 건 아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느끼는 일은,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부르다.
내가 알던 사람들이 행복하게 자신의 일을 하고, 주어진 가정을 돌보며 때론 돈을 많이 벌고, 때론 돈이 없어도 행복하고, 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다 행복하다.
그 반대의 경우, 아프거나 뭔가가 잘 안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가 그가 된 것처럼 몇 날 며칠을 감정이 이입되고 생각나고 안타깝다.
고마운 사람들에게 내가 잘 살아야 보답하는 것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