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증

만사에 서두르고 참을성 없이 구는 증후군

by 김사눅

잘 고쳐지지 않는 마음의 빨간불이 몇 개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조급증이다.

증상으로는 느긋하지 않고 매우 급한 성질. 쉬어도 쉰 것 같지 않고,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듦.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으면 불안함 등 이 있다.


두 살 터울의 자매를 동시에 키워내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할머니세대에는 일곱도 낳고 여덟도 낳아서 키웠는데, 합창으로 울어재끼는 두 명의 꼬마악당들 앞에서 나는 전투력을 상실했다.

특히, 우리 엄마가 입버릇 처럼 하는 말이 있는데 "그게 일이가." 하는 말이다. 뜻으로는 '뭐 별로 힘들지 않다.' '이 정도는 일도 아니다.' 할 때 쓰는 것 같다.

내가 아이들 때문에 힘들어하건, 지쳐하건 엄마는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그게 일이가." 하며 얘기했다. 그럴 때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힘이 더 빠지고는 했다. 엄마 스스로에게 쓸 때는 자기 위안이었겠지만, 내 귀에 들어왔을 때는 나는 별 일도 아닌 거에 힘들어하는 사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엄마집에서 산후조리를 하던 날이었다.

어느 토요일, 아빠가 기차역에 가야 한다며 기차역에 태워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당시 여동생은 임신 중이었는데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태워줄 사람은 남편과 제부 밖에 없었다.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현서방이 아버지 좀 태워주면 되겠네." 했다. 남편은 홀연히 사라졌고, 엄마도 어디를 갔는지 집에는 나와 아이들밖에 없었다. 조금 있다가 첫째가 심심하다며 떼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둘째도 젖을 달라며 울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는 젖먹이를 안고, 한 손으로는 크레파스를 쥐고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는데도 남편이 돌아올 기미가 안보였다. 아이들은 그날따라 유독 함께 울어댔다. 결국 참다못한 나는 아이들과 함께 엉엉 울어버렸다. 셋이서 꺽꺽 대며 우는 장면을 누가 보았다면 가관이라고 했을 것이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엄마한테 그날 제부도 있는데 왜 굳이 남편이 갔어야 했냐고 따지듯 물었다. 나는 지금 애도 둘인데, 내가 힘든 건 안 보이냐고 날이 선 말을 내뱉었다. 엄마는 그게 무슨 큰일 이냐는 듯이 대답했다.

"걔네는 회사 가야 되잖아. 애 둘보는게 일이가."

심장 근처가 쿵. 하고 내려앉았다. 내가 회사를 다니지 않고, 돈을 벌지 않는다는 것은 이런 투정을 부릴 수 없다는 의미로 느껴졌다. 거의 평생을 전업주부로 살아온 엄마한테는 육아, 살림 같은 건 그냥 일상이었다. 힘들다고 말을 꺼낼 의미조차 없는 생활의 일부였다. 엄마가 느끼는 고단함은 회사를 다녀와 밥벌이를 한 자에 한하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 나의 조급증이 삐뽀삐뽀 거리며 사이렌을 울렸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당장 뭐라도 해야 한다. 다시 사회로 돌아가지 않으면 나는 도태되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고, 집에서 살림을 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다. 고로, 나는 아무 의미가 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자책하는 날들이 늘어났다. 가슴속에 큰 돌덩이가 내려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그 돌덩이가 아이들이 파고들 자리를 빼앗아 버렸다. 그런 날들이 오랫동안 지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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