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아니면 도

판은 이미 시작되었다.

by 김사눅

성격이 조금은 모나서일까? 나에게는 다소 극단적인 성향이 있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서 호주행 비행기 표를 끊어 버린다거나,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이 굴다가도 어느 한 면이 틀어져버려 정을 뚝 떼고 말끔한 헤어짐을 갖는다거나(지극히 내 기준) 하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그러나, 엄마가 되는 일에서도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할 줄을 나조차도 몰랐다.

합의 없는'딩크족'을 계획하면서, 계획과 전혀 다르게 첫아이를 낳고 말았다.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내가 모르던 세상 속에 던져짐으로 인해, 앞으로의 모든 계획과 인생의 목표가 뒤바뀌었다.


첫째가 순해서였을 수도 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둘째까지 낳아버리자 하면서 남편의 손을 덥석 잡았다. 남편은 동그란 얼굴에, 동그란 눈으로 "진짜?" 하면서 좋아했다. 남편은 자녀를 셋 정도 낳고 싶을 정도로 아이 욕심이 있었지만, 육아를 하면서 늘 세모로 눈을 뜨는 내 앞에서 말도 꺼내지 못한 것이다.


"아니, 그렇잖아. 안 낳을 거면 안 낳는 거였는데, 이미 한 명 낳아버렸는데 어떡해? 몰라. 한 명 더 낳아버려!"


그렇게, 첫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할 무렵 나는 또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아주 감사하게도 둘째는 자기 숟가락을 쥐고 태어난 아이였다. 회사를 퇴직할 때, 1년 정도의 휴직을 얻는 대신 조용히 책상을 빼기로 했는데 그 1년 안에 임신을 하게 되어 다시 한번 육아휴직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의 얼마 안 되는 월급으로 둘째를 키우기가 겁나던 와중에 일이 이렇게 되어 참으로 감사했다.



보통 주위에서도 둘째를 임신하면 첫째는 어린이집에 갔다. 한참 몸을 뒤뚱 거릴 때 첫째가 3살이 채 안 됐으니, 그동안 첫째를 돌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동그랗게 불러오는 배를 숙여 겨우 손이 닿을만한 아이와 하루 종일 같이 있는 게 무리임에도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기가 싫었다.


내가 첫째여서 그랬을까? 앞으로 우리가 단둘이 함께 하는 시간은 지금이 마지막일 거라는 내 욕심에 잘해주지 못하면서도 출산일이 다 될 때까지 첫애를 품에 꼭 끼고 있었다.




출산가방을 싸야 되는 날이 다가오자, 남편도 이제는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자고 했다. 이제 24개월을 채웠으니 어린이집에 가는 게 이상할 노릇도 아니었다. 조리원에 있는 동안 친정엄마가 하루 종일 아이와 매어있는 것도 힘들 거라는 생각에 아파트 안에 있는 가정어린이집을 방문했다. 나의 우려와는 다르게 새로운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 빙그레 웃는 아이를 보자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그리고 '좀 이따 보자.' 하고 인사를 한 후 주차된 차로 돌아왔는데,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설마... 엄마들이 첫 애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오열한다는 그 순간이 지금인 건가?'

어처구니가 없게도 자꾸 눈물이 쏟아졌다. 나와 떨어지는 순간 조금 흔들리던 아이의 눈빛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렸다. 단풍잎 같은 손을 흔들던 모습도 가슴을 아려왔다.


모성애는 어느 날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게 아니라, 학습된 사랑이라는 나만의 개념이 정립되는 순간이었다.




둘째는, 태어나기 전에 시립어린이집에 대기를 넣었다. 12개월이 되기 전 자리가 났다며 연락이 왔다. 둘째는 첫 번째 생일을 어린이집에서 맞이했다. 그날은 전혀 눈물이 나지 않았다.


어린이집 문을 닫고 나오면서 '추어탕이나 먹으러 갈까?' 하며 신나게 발걸음을 돌렸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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