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턴은 없어.

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by 김사눅

맑고 까만 눈으로 하루종일 나만 바라보는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 그때는 악몽과도 같았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33년의 시간이 무너지는데는 단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작은 입을 왱왱 거리며 알 수 없는 울음을 마주할 때마다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조리원에서 배운 데로 손가락에 입을 대보고 젖을 물려봐도 여전히 울음이 멈추지 않을 때는 두려움 마저 급습했다. 그렇게 아기와 나는 창살없는 감옥에 갇혀 허둥거리고 있었다.


어느 엄마들은 아기띠를 허리에 척 메고 씩씩하게 나가기도 했고, 어느 엄마들은 유모차를 이리저리 굴리며 커피숍 한쪽에 사악 하고 주차를 시키고 우아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나를 그 어느쪽도 아니었다. 유모차를 끌고 나가서 갑자기 마주하게 될 계단이 두려웠고, 아기띠를 메고 다니면 우지끈 허리가 부러질 것 같았다.



하루는 용기를 내어 유모차를 끌고 20분 거리의 친정엄마 집으로 향했다. 혼자 홀가분 하게 걷던 그 길을 커다란 보라색 유모차와 함께 걸으니, 그 길이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왠지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기분이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뭐가 그렇게까지 이상하고 부끄러웠는지 모르겠다. 모든것이 처음이라 낯설고 어색했다.

사거리에 다왔을 때, 유모차에서 자던 아기가 오토바이소리에 화들짝 깨었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부웅 소리를 내며 지나갔지만, 아기는 어느새 빼액 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나는 멀어져 가는 오토바이를 한참을 째려보았다. 한번 시작한 아이의 울음은 그칠 줄 몰랐다.


아이의 울음 소리는 점점 커졌다. 아무리 유모차를 흔들고 달래보았지만 쉽게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모든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기분은 그저 기분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건지, 유모차 안에 아이를 쳐다보는 건지 아니면 사실은 아무도 관심이 없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우는 아이를 안아주자니 유모차를 끌 방법이 없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이미 절반 이상을 왔다. 그날의 한걸음이 산티아고 순례길보다 더 고행스럽게 느껴졌다. 겨우 엄마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사실 엉엉 울고 싶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다 되돌리고 싶었다. 작은 핸드백을 손에 들고 걷던 내가, 커다란 유모차를 밀며 헐레벌떡 쫓기든 걸어온 사실조차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왜 다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엄마가 되는 건지, 나만 이렇게 모든게 혼란스럽고 어려운건지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런 소리를 입밖으로 꺼냈다가는 엄마라는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 같았다.



그 날 이후로, 유모차를 끌고 나가는데 용기가 붙었다. 어늘 날은, 산책을 하다가 유독 어르신들이 많이 계신 순대국 집 앞에 발길이 멈췄다. 뜨끈한 순대국 한그릇을 먹으면 축 처진 기분도 나아질 것 같았다. 잠든 아이가 깨지않게 유모차를 좁은 가게 안에 들이밀었다. 순대국 한그릇을 허겁지겁 먹고 있을 때, 어르신들의 눈길이 그제서야 느껴졌다. 호의적인 눈빛은 아니였다. 마치 '뜨거운 순대국집에 애를 데려와서 위험하게...' 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눈빛이었다. 나는 그때의 일을 아직도 조금은 후회한다.


나는 사실 발칙하게 큰소리로 외쳤어야 했다.

"여기 소주 하나요."



결국 그 날 유모차를 돌려 집으로 유턴하지 못한 것 처럼 엄마라는 타이틀은 반납 할 수 가 없는 극명한 사실이었다. 하늘 아래 가족이라는 매듭으로 우리는 영원히 꽁꽁 묶인 것이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데, 남들 보다 시간이 더 걸리기는 했지만, 나는 여전히 엄마라는 자리가 어렵고 또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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