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다시 제자리.
회사건물 화장실에서 새생명의 시작을 확인 한지 1여년이 지난 이후, 나는 다시는 그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했다. 참 깨끗하고 좋은 화장실이였는데 말이다.
다행히도 임신을 하고 나서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 음식냄새만 맡아도 헛구역질을 하는 티비 속의 장면은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축복이었다.
단지, 배가 고프면 속이 울렁거리는 정도 였기에 회사생활을 하면서 견과류나, 과일등을 싸가서 먹으면 그 뿐이었다.
임신 5개월쯤 되었을 때는, 친정식구들과 미리 예약해 두었던 유럽여행도 남편없이 잘 다녀올 수 있었다. 내가 임신소식을 처음 말했을 때 엄마의 대답은 "그럼, 우리 유럽여행은?" 이였다. 당시 굉장히 어이가 없었지만 요즘 말하는 MBTI 로 따지면 친정엄마는 대문자T 였던 모양이다.
5월에 알게된 임신소식을 회사에는 여름쯤에 얘기했고, 겨울이 다가오자 슬슬 나의 거취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가기 시작했다.
아주 큰 회사는 아니였지만, 그렇다고 작은규모의 회사도 아니였다. 내가 맡은 업무는 해외영업지원 업무였는데 그럭저럭 일도 마음에 들었고 90%이상이 남자직원인 점도 꽤나 마음에 들었다. 나이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팀장님과 직원들은 사이가 좋았고, 약 10%의 여직원들도 서로 의지하며 잘 지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꼭 다시 제자리로 다시 돌아오고 싶었다. 내 책상을 다른 누군가에게 넘겨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바람일 뿐이었다.
육아휴직이 시작 되는 날, 나는 편의점에 들러 스타벅스 커피 와 작은 편지를 적어 30여명쯤 되는 직원에게 돌렸다. 편지내용에는 빠짐없이 1년후에 만나요. 라고 적었다. 그동안 선배 여직원들이 육아휴직을 쓰고 돌아 온 전례가 없었지만 나만은 꼭 돌아올 것임을 알리는 선전포고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1년 후 나는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팀장님에게 꼭 갈 거라는 다짐을 내 비쳤지만, 팀장님은 씁쓸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딱 하루 회사로 돌아갔지만 내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나는 백기를 들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 날의 허탈했던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이제 내가 갈 곳은 엄마라는 자리 뿐이었다. 오랜만에 신은 뾰족구두에 발이 아팠다. 하지만, 발보다 더 아팠던 건 그 날의 내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