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한 치 앞도 모르는 것.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책장에 꽂혀있던 영어문법 책을 꺼냈다.
아이가 낮잠을 자고 있는 그 찰나의 순간에도 쉼을 허락할 수가 없었다. 그저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시간을 갉아먹고 나 자신을 도태시키는 일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눈에 들어오지 않는 활자를 한쪽이나 읽었을까? 앵~ 하는 소리가 들려 책을 접어두고 입고 있던 수유티셔츠의 지퍼를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금세 엄마품을 찾은 아이는 엄마가 왔다는 기쁨에 입가에 젖이 흐르는지도 모르고 방긋거렸다.
하지만, 나는 그 미소에 답해줄 수가 없었다. 방금 접어두고 온 책을 보는 것이 너와 교감하는 시간보다 더 값진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일상과 보상 없는 육아는 자꾸만 패배감을 안겨주었다.
두 아이들이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자,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
10시쯤 등원해 4시쯤 하원하게 되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무려 6시간이었다. 그 꿀 맛 같은 시간을 맛보자 어린이집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선생님들께 한없는 감사함이 솟아났다.
소중하게 얻은 시간을 잘 활용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원시간 이후에는 어린이집 놀이터에서 지박령처럼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몇 시간을 앉아있었야 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오기 전까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임무를 끝내야 했다.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그때의 나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처럼 허둥거렸다.
사실 아이들이 없는 시간 동안, 하고 싶었던 것은 돈을 버는 일이었다. 그동안 컴퓨터 자판을 신나게 두드려 대는 일만 했지, 별다른 경험이 없었던 나는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가을, 조리원 동기가 한국민속촌에서 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재미있었다며 언니도 하고 싶으면 지원해 보라고 했다. 하는 일은 현장학습 오는 초등학교3학년 아이들을 인솔하고 민속촌에 대해 설명하는 일일 가이드 일이었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라 걱정이 되었지만, 시간도 9시부터 2시까지라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있는 시간이었다.
첫 출근 날, 아이들을 후다닥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고속도로를 올라타 민속촌으로 향하는데 콧노래가 나왔다.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까르르 웃음이 나올 것 같이 심장이 간질거렸다. 어색하고 서툴렀지만 힘이 들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 달 후에 통장에 찍힌 30만 원이 나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것 같아 눈물이 핑 돌았다.
그 이후로도, 관심 있던 자격증을 취득하고 어린이집 영어파견강사에 지원해 교육도 받았다. 어린이집에 시연을 나가 수업을 하면서 내가 앞에 나가서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이제는 엄마가 아닌 나로서 살아갈 날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2019년 12월, 코로나 그 녀석이 오기 전 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