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끝은 아니겠지?
"엄마! 엄마!"
아기새들이 짹짹거리듯, 쉬지 않고 불러대는 소리에 귓구멍을 틀어막고 싶었다.
하루이틀 그리고 삼일이 지나면 상황이 나아질까 싶었지만, 뉴스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거의 지구종말 격이었다.
결국, 그녀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코로나19와 함께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결과는 새드엔딩으로 끝날 게 분명했다.
작은 아파트에 갇혀, 아이들과 보낸 2년의 시간은 '힒듬'이라는 단어와 '혼자 있고 싶다'라는 감정뿐이라 생각했다.
(얼마나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었는지, 큰 딸이 그려준 엄마의 모습이다.)
이제 막 시작하려 했던 일들도, 코로나에 묻혀 사라졌다. 어린이집 파견강사로 시연을 10군데 정도 나갔었는데 7 군데서 2020년도에 수업을 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아무 계획도 쓸 것이 없던 다이어리를 폈다. 빼곡하게 시간을 정리하고 들뜬 마음에 '화이팅!!' 이라는 글자도 적었다.
그러나, 3월이 되고 4월이 되어도 코로나가 잦아들 기미가 없자 어린이집 원장님들로부터 수업취소 전화가 하나 둘 걸려오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제대로 수업을 하지 못하고, 계약했던 업체마저 폐업에 이르렀다.
당시에 나보다 힘든 사람들이 백배, 천배는 많았겠지만 나 역시 그들 못지않게 좌절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내 의지와 상관없이 엄마라는 족쇄를 차고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다시금 갇혀야 했다.
어린이집도 문화센터도 가지 못하는 상황에, 우리가 기댈 곳은 자연뿐이었다.
인적이 드문 숲이나, 공원 등을 두 아이와 함께 쏘다녔다.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가려버려, 눈으로 얘기하는 아이들이 안쓰러워 아무도 없을 때는 마스크도 벗기고 마음껏 뛰어놀게 해 주었다. 그러다가 누가 오는 소리가 들리면 후다닥 마스크를 씌웠다. 이 상황이 언제 끝날 지 몰라 누구를 원망할 수도 화를 낼 수도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이 그렇게 흘러가기 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이제와 생각해 보니 아이들과 내내 붙어 웃고 울고 한 시간들은 바꿀 수 없는 값진 날 들이었다. 서로 심심하다 보니 온갖 아이디어 가 총 출동했다.
미니 수영장을 사서 거실에 펼쳐놓고, 미끄럼틀을 연결했다. 수영장 가득 이불을 펼쳐놓고 미끄럼틀에서 내려오기를 반복 한 날도 있었다.
밀가루 놀이를 해주겠다며 시작했다가, 후회에 땅을 친 날도 있었다. 하루가 끝나면 입이 바싹 말라있었다. 남편이 오면 그 하루를 보상받듯 맥주를 하마처럼 마셔댔으니, 뱃살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코로나19도 서서히 힘을 잃어갔다. 큰아이가 6살에 시작한 코로나가 2년을 꼬박 채우고 세상이 제자리로 돌아오려는 듯 봄과 함께 꿈틀거렸다.
이제는 오랜 침묵을 깨고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다. 어떤 것부터 시작해야 할까 머릿속이 복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