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가 있는 삶(1)

단지, 나를 위해서

by 김사눅

오늘 하루도 어영부영하다 보면 지나갈 것이다.

아이들이 벗어난 자리에는,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양말이며 속옷이며 과자봉지까지 나뒹굴 것이다.

나는 그것들이 내 삶을 방해하는 걸림돌인 양, 신경질적인 손놀림으로 치워버릴 것이다.

그리고, 그 작업이 끝나면 소파에 드러누워 핸드폰 속 다른 이의 인생을 관망하며 이유 없는 시샘과 질투를 마음속에 쌓고 있을 것이다.


시험점수를 얻기 위한 목표, 대학을 가기 위한 목표, 취업을 하기 위한 목표, 결혼을 하겠다는 목표.

지금까지의 삶은 매번 목표가 있었고 그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시스템이었다.

엄마가 된 이후, 나의 목표라 함은

빠른 육퇴 이후 마실 맥주와 야식 고르기

뿐이었다.


그 목표는 또 얼마나 성실히 이행했는지, 원체도 배에 살이 잘 붙는 체질인데 배만 불룩하게 나오니 아이를 낳은 건지, 아이를 가진 건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문화센터에 줌바수업을 간 날이었는데, 신나게 춤을 추고 있는 나를 강사님께서 자꾸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셨다. 수업이 끝나고 강사님이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으셨다.

"임신 중인데, 괜찮으세요?"

"아하하, 선생님... 이미 낳은 배 예요..."

" 아, 네..."

수업시간 천둥처럼 컸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개미처럼 작아졌다. 나도 덩달아 같이 작아졌다.


그리고 며칠 후, 동네를 서성이다 보니 새로 생긴 헬스장이 보였다.

현수막에는 'PT 할인'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고, 나는 뭐에 홀린 듯이 헬스장으로 올라갔다.

(그러고 보니, 그 헬스장이 있던 자리는 내가 20살 무렵 남자친구와 이별을 맞이했던 돈가스집이었다.

나도 모르게 홀린 듯 들어간 이유가 있었다.)


트레이너와 몇 마디 상담을 나눈 것뿐인데, 나는 이미 회원가입서에 사인을 하고 있었다.

트레이너의 말솜씨가 워낙 좋기도 했지만 헬스장에 들어서는 순간 울려 퍼지는 쿵쾅대는 음악과 벽에 걸린 사람들의 바디프로필 사진들이 내 속에 숨겨져 있던 목표본능을 '훅' 하고 건드렸다.

회원가입서를 손에 쥐고 계단을 내려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통장도 같이 가벼워졌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내일부터 정기적으로 가야 할 곳이 생겼다는 기대감과 새로운 일이 벌어질 것 같은 희망이 더 컸다.



첫날, 이런저런 대화 끝에 그가 내 막냇동생의 동창의 남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금세 내적친밀감이 생겨서 인지 평소 같았으면 혼자 생각했을 얘기가 쉽게 나왔다.


"선생님, 저도 저렇게 바디프로필 찍을 수 있을까요?"

"그럼요, 회원님이라고 못할게 어딨 어요."

"에이, 저런 분들은 저랑 다르잖아요."

"뭐가 달라요?"

"다르죠~제가 어떻게 저런 걸 찍어요."


"아, 그럼 회원님은 못 찍으세요."


나의 크지 않은 눈이 번쩍 띄었다. 보통 이럴 때는 하실 수 있어요. 해봐야죠.라는 격려의 말이나 같이 해봐요. 제가 도와드릴게요.라는 회유의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싶어 트레이너를 쳐다봤다.

트레이너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자, 다음세트요."라고 말했다.


순간, 뱃속에서 꿈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로 산 7년 동안 보이지 않게 꾹꾹 눌러왔던 이름 모를 감정 들이었다. 나 스스로 나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 필요 없는 사람. 무의미한 사람으로 지칭해 똘똘 뭉쳐놨던 돌덩이가 창자를 넘어 위장을 넘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아닌데요!! 저 할 수 있는 데요!! 저 3달 후에 바디프로필 찍을 건데요!!."


아차! 싶었지만 내 목소리가 매우 컸던지 헬스장에 모든 시선들이 나를 향해있었다.


"그래요? 그럼 시작해 보죠." 트레이너는 또다시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지금 뭐라고 지껄인 거지? 당장 그 말 취소해.'라고 하기에는 트레이너의 눈빛이 달라져있었다.

처음에 그 와 나누었던 대화가 머릿속을 스쳐 지났다. 그는 자신이 해병대 조교 출신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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