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따갑기 전에 한 바퀴 돌고 오자는 아내 말에 길을 나섰다. 요즘 통 운동을 못해 몸이 찌뿌둥했다는 말까지 덧붙이니 미적거릴 명분이 없다. 오전 7시 30분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해는 벌써 얼굴을 때린다.
가보자 순댓국밥집까지는 걸어서 50분 정도 거리. 강가로 나서니 둑길에 길게 자리한 나무가 터널을 만들었다. 시원한 바람과 깨끗한 공기는 게으름을 이겨낸 선물이다. 산책로에서 내려다보니 가마우지가 물속을 헤엄치는 모습이 보인다. 오디는 아직 앳된 모습으로 수줍게 달려있다.
40분쯤 걸었을 때 전화벨이 울린다. 큰딸 림의 전화다. 엄마 아빠 아침에 뭐 하시냐며 출근길에 안부를 묻는다. 아침 운동 나왔다니 칭찬이 한 바가지다. 차 한 잔 들고 공원에 들렀단다. 사무실 들어가기 전 큰 심호흡과 함께 하루를 준비하는 림. 사회 초년생의 긴장이 핸드폰을 든 손에 느껴진다. ‘자기 관리 잘하네. 충분히 즐기고 들어가라. 사랑하고 응원한다. 울 딸! 파이팅!’
순댓국밥집엔 새벽 운동하고 식사하러 온 한 무리가 소란스레 식사 중이다. 순대 국밥을 주문하고 3분도 안 돼 나왔다. 시장한 내 속 사정을 아는가 보다. 새우젓을 약간 넣어 간을 맞추면 기대하던 그 맛이다. 아내는 은근슬쩍 비계 붙은 부분을 내 뚝배기에 밀어 넣는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당당하다. 눈을 흘겨보는 용기를 내보지만 무시한다. 오늘은 깍두기가 제대로 익어 더욱 맛있다. 먼 길을 걸어온 보람이 있다.
카페 문 열기엔 이른 시간이라 길 건너 편의점(GS25)에서 2,600원을 주고 따뜻한 아메리카노 두 잔을 샀다. 손끝에 전해지는 온기가 좋다. 편의점 앞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려는데 머리 위로 제비가 오간다. 올해 처음 보는 제비다.
제비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뒤쪽 처마 밑에 제비집이 두 개나 있다. 큰 제비가 자리를 비운 사이 얼른 일어나 둥지를 올려다보니 무언가 움직임이 보인다. 새끼 제비 세 마리가 머리를 살포시 내밀며 꼬물대고 있다. 가까이 보려면 테이블을 밟고 올라서야 했다.
신을 벗고 올라갈까 하는 마음으로 주위를 보니 어미 제비가 뒤쪽 전깃줄에 앉아 나를 째려보고 있다. 아무래도 이쯤에서 포기해야겠다. 제비집만 쳐다보다 자리에 앉으며 머쓱함을 커피 한 모금으로 달랜다.
벽에 붙은 사장님의 안내 문구가 정겹다. ‘올해도 집 나갔던 제비가 다시 돌아왔습니다.(어닝 밑에 있어요..) 가끔 제비들이 "실수"를 합니다. 몇 달만 너그러이 양해 부탁드립니다.’ 사장님의 애틋하고도 재치 있는 제비 사랑이 느껴진다. 제비가 ‘실수’한 흔적도 예뻐 보인다.
아파트가 우리의 주거형태로 자리 잡으면서 처마 있는 집 찾기가 어려워졌다. 그와 함께 제비도 집 지을 터를 구하는데 애를 먹는다. 그러니 제비를 보는 것만도 귀한 일이 되어버렸다. 제비가 집에 들어와 보금자리를 트는 것은 좋은 일이 생길 조짐이고, 새끼를 많이 치면 풍년이 든다고 한다. 사장님 가게에 대박이 나려나 보다. 덕분에 울 딸들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