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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란 Dec 21. 2021

어디 갔어

“늘 근처에 있어, 걱정하지마.”

선생님은 점심시간이면 음악실에 와서 나를 찾았다.

나도 선생님이 보고 싶어 실기시험을 핑계로 점심시간이 되면 누구보다 빠르게 밥을 먹고 음악실로 올라가 봄을 기다렸다.


하루는 수행평가 때문에 음악실에 조금 늦게 올라간 날이 있었다.

선생님은 내 자리에 앉아서 피아노 건반을 바라보며 아이처럼 시무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민망해져서 선생님 앞에 머뭇거리며 딱딱하게 서 있기만 했다.

선생님은 옆으로 슬쩍 비켜주더니 의자를 팡, 팡, 치면서 앉으라고 눈빛을 보냈다.

자리에 앉아 자연스럽게 나는 건반 위에 내 손가락을 얹었고, 선생님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어디 갔었어, 계속 기다렸는데.”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서 나도 모르게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평소보다는 낮고 느리게, 무겁지만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게.

선생님은 감싸는 멜로디가 포근해졌는지 한쪽 손을 내 허벅지 위에 올린 다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처음 듣는 노래네, 좋다. 곡 이름이 뭐야?”

“늘 근처에 있어, 걱정하지마.”

“응?”

“곡 제목이에요.”


선생님은 눈웃음을 지으며 내 귀에 스윽- 하고 숨소리를 내뱉으면서 지나가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내게 다시 돌려주었다.


“나도 늘 근처에 있을게, 걱정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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