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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을 정리하는 법 Apr 22. 2020

가장 멋있어야 할 시기의 내가

백수로 이 시국 버텨내기

 가장 멋있어야 할 시기의 내가 가장 비참해졌다. 아니 아직 '비참'이라는 단어를 쓰기엔 건실한 삶을 유지하려 발버둥 치고 있으니 괜찮은 걸까. 어쩔 수 없는 일들에 대한 철없는 투정인 걸 알지만 아무튼 그때의 나는 내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아직도 비엣젯 항공사에서 항공권을 취소한 금액이 입금되지 않았다. 2020년에 무슨 카드결제 취소가 3달씩이나 걸릴 일인가 싶다가 2020년에 대해 생각한다. 코로나 19 사태가 터지고 나서 그런 농담을 들었는데 '우리 어릴 땐 2020년이면 하늘에 자동차가 날아다닐 걸 생각했는데, 다들 방구석에 앉아서 커피나 4000번 젓고 있을 줄은 몰랐다고.' 나는 어떠한가? 꽤나 멋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휴학을 하고 어학연수로 베트남을 다녀왔다가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려 했었고, 대만에서 인턴십 프로그램에도 참가하려 했었다. 그러나 차츰차츰 하늘길이 막히고, 인턴십 프로그램은 취소되고 그렇게 굳이 휴학을 한 채로 학교 앞에 원룸을 구해 자취를 시작하게 되었다. 여행을 할 때를 제외하곤 급작스런 선택을 하지 않으려 애쓰는 나였는데 이번 선택은 누가 봐도 뒷일을 생각하지 않았다. 계약금과 첫 달 월세는 네팔행 항공권을 취소해 메우고 다음 달 월세를 메우기 위해 비엣젯 항공사의 환불 처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코로나 19가 불러온 항공권 취소 대란에 휩쓸렸다.


*

 그렇게 무턱대고 계약한 후, 입주 당일 마주한 방의 상태가 멀쩡하다는 점이 한동안의 위안이 되었다. 물론 혼자 이사 청소를 하면서 전 세입자 욕을 하기도 했지만, 금세 이 공간은 내 짐으로 채워졌다. 기숙사에서 8년이 가까운 생활을 하다 보니 한 학기에 한 번씩 이사를 해도 무리가 가지 않을 짐을 두고 살았고, 잦은 여행에서 헤진 옷가지들을 버리며 지내오다 보니 택시 한 번, 택배 두 박스로 짐이 옮겨졌다. 엄마는 종종 이 곳을 '숙소'라고 부르셨다. 통화를 할 때도 숙소냐고 묻는 질문에 나는 지금 여행 중이 아니라 내 삶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 말했지만 '뭐 원래는 숙소에 있어야 할 시기이긴 하니'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아직 돌아오지 않은 비엣젯 항공권 취소 비용이라거나 바닥나가는 통장 잔고를 기다리면서 내 공간을 유지할 순 없었다. 일이 필요했다. 몇 군데 면접을 보러 다녔고 처음엔 모두가 그렇듯 겉으로는 "된다는 보장은 없으니깐."이라고 말하면서도 잘 될 줄 알았다.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나의 말 습관은 혹시나 이 구직생활이 하염없이 길어지더라도 스스로 상처 받지 않으려는 방어기제였고 어제 면접 본 일용직 자리에 다음 날 아침 곧바로 불합격 문자가 오는 날들이 쌓이며 그 방어기제에도 금이 가고 있었다. 


*

 그즈음 홍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이미 내가 덴마크에서 한차례 바질을 키우다 실패한 적이 있는 걸 아는 여자 친구였지만 자취를 시작하면 ‘바질을 키울 거야!’라고 말을 하던 나에게 바질 트리를 사주었고 홍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분갈이를 해 주려고 인터넷에서 흙 1kg을 사고 나니 생각보다 많은 흙이 남아있었다. 그 김에 냉장고에 있던 파 두 뿌리를 흰 부부만 잘라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심었다. 백수가 부엌살림에 보탬이 되려고 농부일을 자처한 것이다. 원래는 빨리 키워서 먹을 생각이었던 파에 꽃대가 자랐다. 처음엔 새로 자라는 잎사귀인 줄 알았는데 손가락 한 마디처럼 동그랗게 톡 튀어나온 녀석이 꽃봉오리인 줄은 꽃대가 원래 잎보다 한참이나 더 자라고 알았다. 파와 바질, 세 친구를 키우면서 아침에 일어나야 할 이유가 생겨버렸다. 햇빛이 잘 들도록 창을 열어주고 한쪽으로만 해가 비치면 잎이 다 휘어버리니 골고루 햇빛을 받도록 화분을 돌려주는 일 이것이 코로나 19가 나의 휴학을 격타한 이후 나의 아침 일과이다. 

 이번엔 근처에 자취를 하는 친구에게 상추 씨를 받아 한 가지 실험을 했다. 촉촉이 적신 휴지 위에서 싹을 틔우고 흙에 심는 방법과 바로 흙에 씨를 뿌리고 싹을 틔우는 방법을 비교했다. 주변에선 이젠 아예 농업인의 길로 들어섰다며 원룸이 아니라 텃밭을 계약하지 그랬냐고 농담과 핀잔을 반씩 섞어 주었다. 그래도 휴지 위에 올려다 둔 씨앗 들은 아랑곳 않고 하루새 뿌리를 내어 온 힘을 다해 아래로 아래로 조금이라도 더 양분을 얻겠다고 뻗어 내려갔다. 나는 그때 이 집에 오고 처음으로 혼자 

'아 이 집에서도 변하는 게 있구나.'

라고 감탄을 내뱉었다.

 그제야 바라본 파가 열심히 보이지 않는 노력을 다해 꽃봉오리를 뿌리 위로 올릴 때 홍이는 둥글게 잘 다듬어져 있던 모습에서 무성히 잎을 피워내 한껏 몸을 부풀린 고슴도치가 되어있었다. 나는 한없이 멈춰서 있다고 생각했는데 매일 아침 햇볕을 들이고 물을 주는 일상이 눈에 띄는 변화를 낳았다.

내 집안의 작은 텃밭은 이렇게 변화하고 있다.

 

*

 한동안 여행의 꿈은 접어야겠지만, 며칠 전엔 강변에 최갑수 선생님의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를 들고나가 '여행 에세이를 읽으며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것만으로도 꽤 괜찮아지는 중이야.'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는 나의 새로운 공간에서 변화하고 있는 것들을 알고 기대하고 있다. 파 두대는 나날이 꽃봉오리 끝이 여물어 가는 게 곧 꽃을 피워낼 것만 같다. 딸기 철이 끝날 무렵 딸기주를 담갔는데 벌써 술은 벌게지고 딸기는 희어진 게 맛있게 익어가는 중이라 믿고 있다.

 여행을 떠나

 매일 서정적인 글로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매일 새로운 환경에서 열불같이 화를 쏟고 식지 않더라도 

 나의 오늘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은 바질 향, 파꽃, 달큼한 딸기주 혹은 상추 싹의 씁쓸함으로 기억될 것이다. 

나는 첫 자취와 함께 내가 '가장 멋있어야 할 시기'를 바쳐 비로소 나의 일상을 만들어 갈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오늘도 나의 하루는 흐르고 있다. 집 앞의 은행은 잎을 내고있고 딸기주는 맛있게 익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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