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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을 정리하는 법 Jun 11. 2020

알 수 없는 길에서 좌회전하기

 삶은 알 수 없는 길이라는 비유를 살아가다 보면 심심치 않게 듣게 되고 또 가끔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알 수 없는 길이기 때문에 이 길 위에서 언제 과속방지턱이 나올지, 지금이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U턴 기회인지 혹은 내가 밟고 있는 이 차선이 직진 차선인지 좌회전 차선인지 불분명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말 그대로(literally) 알 수 없는 길에서 좌회전을 하라는 당당한 저 내비게이션의 지시는 은유(metaphor)로써의 알 수 없는 길에서 꽤나 동떨어져 있었지만 나의 생각을 뒤집기엔 충분했다.


 저 지시를 받았을 때, 차박 여행을 마무리하고 태안에서 예산으로 가던 나와 G는 번호판에 '호'가 들어가는 어떤 그렌저로부터 쫓기고 있었다. 사실은 우리가 멀찍이 뒤에 있었지만 어떤 주체로부터 벗어나려 애쓰는 의미로 쫓기는 것은 맞았다. 차선이 줄어드는 병목구간 곧 왼쪽 차선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우리보다 앞서가던 흰색 포터 트럭은 갈피를 못 잡고 휘청거리고 있었고 G는 왼쪽 깜빡이를 켜고 차선 변경을 시도했다. 그때 왼쪽 차선 뒤에서 달려오던 그랜저는 엑셀과 경적을 동시에 누르며 우리 옆을 가로막았다. 가까스로 그랜저를 먼저 보내고 차선 변경을 했지만 우리 앞에서 달리던 그랜저는 어느새 오른쪽 차선까지 와 차창을 내리고 손짓으로 욕을 퍼부었다. 나는 분명 우리가 앞서 나가면 뒤에서 꽁무니를 따라올 것이니 먼저 보내자고 했고, "저거 분명 우리 앞에서 급브레이크 밟아가며 위협 운전을 할 거야. 멀찍이 보내자."며 G를 달랬다. 예상대로 그랜저는 계속 우리 앞을 가로막았고 심지어는 사거리 좌회전 차선을 밟고 있다가 직진 신호에 갑자기 우리 앞으로 달려들었다. 당진과 예산의 갈림길에서 다행히 그랜저와 갈라서긴 했지만

 "우리가 만약 앞에 있었다면 예산까지 따라왔을까?"라는 얘기를 나누며 나는 얘기했다.

 "운전의 목적이 목적지를 가는 게 아니라, 꼭 남을 이겨먹으려 드는, 목적성이 잘못된 사람이 있어"

그 끝에 알 수 없는 길을 만났다.


 나는 이 여행마저 쫓겨서 왔다고 생각이 들었다. 최근 H와 부산에 여행을 다녀오면서 마지막 부산역에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나는 네가 아무리 코로나 탓이라지만 휴학을 하면 국내라도 조금 여행을 할 줄 알았어, 하다못해 제주도 한 달 살기라거나" 그렇게 서해안으로 차박 여행을 계획했었다. H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꾸 경추 어디에 날카롭게 꽂히는 질문을 받는다. 태안에 가기 하루 전에도 다른 사람들 등에 떠밀려서 대학원을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질문을 받았는데 분명히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마땅히 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이런 연구를 할 거야! 하고 확신에 찼었던 나와 사실 아무것도 모르겠어 라고 불확실에 사로잡힌 내가 이곳저곳 뒤엉켜있어서 목에 털 뭉치가 낀 것 같았다. 그때 내가 나에게 너무 투자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이 말은 단순히 돈이나 시간 따위를 나에 쏟는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내 생각을 말하는 것 나를 표현하기를 지나치게 아끼고 있는 문제였다. 나를 잘 모르겠다는 이유로 나를 사용하는 것을 아끼다 보니 곧 무언가가 결핍된 것 같은 감정이 찾아왔고 무언가에 대한 결핍은 여행마저 쫓기는 감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알 수 없는 길에서 좌회전이나 하라는 저 내비게이션을 보며 길이 꼭 이름 붙어져있진 않아도 얼마든지 운전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털 뭉치처럼 엉켜있던 자아들은 답답한 것이 아닌, 원래가 그런 것이었다. 서로 상충하는 저 자아들이 있기에 인력과 척력으로 서로를 밀어내고 받아들이며 요동치는 것이 심장박동처럼 판막을 밀고 있음이 느껴졌다. 나는 아직 나를 잘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는 이야기할 수 있다.

(나는 나를 아직 잘 모르겠지만) 글 쓰는 걸 좋아해! 혹은 (나는 나를 아직) 잘 모르겠지만 연구는 하고 싶어!

'나는 나를 아직 잘 모르겠지만'은 이야기하지 않아도 모두가 내포하며 전재하고 있는 사실이다. 의식하지 않았지만 원래부터 내 옆에서 나를 뛰게 하던 자아이며, 전혀 좌회전 혹은 우회전을 하는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그를 너무 의식했던 나머지 '원래 혀를 어디에 둬야 하는지 잊어버린 사람'처럼 부자연스러웠던 것이다.


알 수 없는 길이지만 좌회전까지는 앞으로 500m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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