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깜깜한 밤, 아들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경찰입니다, 김건씨 보호자 되십니까?” 순간 가슴이 철렁내려 앉았다. 입대하고 첫 번째 휴가중인 아들의 전화기로 경찰이 전화를 걸었다는 건, 아들이 전화를 하지 못하는 불가항력의 상태이거나, 더 큰일이 일어났다는 거니까. “네 제가 아버지입니다.” 경찰은 아들이 술에 취해 쓰러져 있다고 했다. 급히 차를 몰고 정자역으로 향하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밤에 오는 전화는 좋은 소식은 없다. 한밤중에 전화가 울리면 나는 오래전 여름날 밤의 전화벨 소리를 떠올리게 되고, 그 기억은 여전히 나를 두렵게 한다.
푹푹 찌는 여름방학 시작일 밤이었다. 방학이 되면 학교에 안 가도 되고 늦잠을 잘 수 있으니 마냥 기뻐야 함에도, 오히려 성적 때문에 혼날 것이 두려워 무서움만 가득한 저녁이었다. 엄마는 설거지 중이었고, 뉴스데스크가 막 시작하는 즈음, 다이얼 전화기의 요란한 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하니 멀리서 들려오는 묵직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기 포항경찰서인데 김상원씨 집 맞나요?” “네” “전화받는 사람은 김상원씨와 어떻게 되나요?” “동생인데예.” “어른들 안 계시나?” “엄마 계시는데예.” 경찰은 엄마 말고 남자는 없냐고 물었다. 큰아버지댁 전화번호를 알려드리자, 큰엄마는 30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도착하셨다. 그녀는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안방에 앉아 담배를 피우시며 엄마에게 소식을 전했다. “상원이가 죽었단다. 물에 빠져서.” 여름이라 안방과 현관 등 문이란 문은 다 열어놨는데 엄마는 소리 내며 울었다. 대성통곡이 뭔지 수업시간에 배우긴 했던 것 같은데 정확한 의미를 그 순간 알게 되었다.
둘째형이 죽었다는 소식은 너무나 비현실적인 얘기여서, 큰엄마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듣던 당시에는 나에게 어떠한 슬픔으로도 다가오지 않았다. 다만 성적표를 보여드릴 생각에 죽을 지경이었던 나는 어린 마음에 이 어수선함이 다행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마당에서 어찌해야 할지 몰라 서성대고 있었다. 빨간 노끈에 담긴 커다란 수박 한통을 들고 ‘한 많은 대동강’을 부르시며 흥겨운 발걸음으로 대문을 열고 들어오시던 술 취한 아버지는 엄마의 울음소리에 노래를 멈추셨다. 끝내 그 수박은 먹었는지 못 먹었는지 기억이 없다.
근처 사시던 이모부가 도착하시고 새벽에 대절한 택시를 타고 어른들은 모두 포항으로 향했다. 좋지 않은 건 안 보는 게 좋다는 어른들의 일방적인 결정에 14살의 나만 집에 남았다.
장례식장이 어디였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에 없다. 단지 먹을 게 많아서 배가 부른 느낌이 좋았다는 생각은 난다. 형의 죽음은 실감나지 않았는데, 음식과 과일의 풍성함과 넉넉함은 현실로 느껴졌었던 철없던 14살의 나.
캠핑 간다고 다락의 배낭과 코펠 등을 챙겨 나갔던 둘째형은 3일 만에 유골로 우리에게 왔다.
다락에서 짐을 꺼내던 형에게 내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새벽부터 먼지 떨어진다는 잔소리였다.
엄마와 나는 둘째형을 부곡동 부곡암 주변 산속에 골고루 손으로 뿌렸다. 그 뼈 가루는 따스했다. 생전에 엄마랑 아버지가 다투시면 항상 엄마의 편이 되어 엄마를 따스하게 보호했고, 공부를 제일 잘하여 공부에 한이 맺힌 부모님 모두를 만족시켰던, 그 형은, 뼈 가루도 따스했다. 뒷돈이 많이 오가던 시절, 화장터의 담당자에게 팁을 더 주지 않아 곱게 가루가 되지 못해, 몇 개의 덩어리도 만져졌다. 그 중 하나의 뼈 조각을 호주머니에 넣어 집으로 가져와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갖게 된 우리 집의 화단에 몰래 묻었다.
그래서인지 40년이 지난 지금도 좌천동 그 집의 풍경이 자주 꿈에 나온다. 주차는커녕 계단을 여러 번 올라야 닿을 수 있는 그 집. 멀리 부산진역과 그 뒤의 바다가 보이는 산복도로의 풍경이 있는 집. 어릴 적 늦은 밤, 쓸쓸하거나 무섭기도 했던 화물열차의 기적소리. 우리 가족의 소중한 첫 집에 묻어있는 모든 추억이 아팠기에 우린 곧 이사를 해야 했다. 오로지 내가 몰래 묻어둔 형의 뼈 조각 하나만 그곳에 남았다.
나무로 된 대문은 상원형이 죽고 밤새 열어두었다. 문단속에 철두철미한 아버지가 계셨지만, 엄마는 밤마다 몰래 그 대문을 열어두었다. 우리는 그 집을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대문을 닫을 수 없었다. 그 대문을 늦은 시간까지 바라보다 보면 언제고 형이 돌아올 것만 같았는데,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것은 차가워진 가을바람과 기차소리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