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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준 Oct 22. 2018

남편의 회사 산행에 따라간 아내

혼자 있기 싫어!


주말에 남편이 회사 산행에 참석해야 한다고 했다. 주말에 나 혼자 집에 버려지다니! 그래서 나도 함께 가겠다고 했다. 남편이 회사에 이야기해 허락을 구했다. 고맙게도, 함께 산행한 뒤 점심도 먹고 가란다.


산행 장소는 남한산성. 성남에 살 때도 한 번 밖에 가보지 않은 남한산성이다. 결혼과 동시에 성남을 떠난 뒤, 오랜만에 남편과 함께 그곳을 다시 찾았다. 처음 남한산성에 갔던 날에는 시내버스를 타고 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고속도로를 타고 갔다. 처음 갔던 날에는 보슬비가 내렸다. 이번에는 햇살이 살짝 따가운 맑은 가을날이었다.


조금은 쌀쌀한 아침, 주차장에 도착해서 얼굴이 익은 몇몇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가끔 우리집에서 술파티나 스포츠경기 응원전을 벌일 때마다 와서 한바탕 놀다 가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한 번씩 들러준 직원들의 이름과 얼굴을 웬만해선 다 기억한다. 그들은 내 이름을 잘 모르겠지만...ㅠㅠ (대부분 형수님, 제수씨라고 부르기에...)


가을 산행은 정말 오랜만이다


엔진에 때가 꼈다


다섯 명이 한 조가 되어 산을 오르는데, 운동을 한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근육이 움직이는 법을 잊어버린 듯하다. 거의 매일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일상이라, 오랜만에 산에 오르자 온몸 구석구석 실핏줄까지 피가 돌면서 몸 여기저기가 근질거렸다. 얼마 오르지 않았는데도 숨이 차고 허벅지가 마비될 것 같았다. '20대 때는 이 정도 경사에 굴복하지 않았었는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서글퍼졌다. 30대 후반. 불혹까지 몇 년 안 남았다. 엔진이 점점 약해진다.


40대 중후반의 부사장님은 평소에 몸관리를 잘 하시는지, 지치지도 않고 거침없이 올라가셨다. 우리는 힘들어서 헥헥거리는 와중에 부사장님은 남한산성쯤이야 가뿐한 모양이었다. 우리 부부는 앞서가는 부사장님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운동 좀 해야겠어. 동네에 있는 산에 자주 올라가자."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인데?"

"아니야. 오늘 처음 한 거야."

"그래. 꿈에서 들었나보지 뭐."


하며 체력관리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내려가는 길에 무릎은 또 어찌나 시큰거리는지.


가을 공기에 불타는 남한산성의 자연


함께여서 좋은 점


산행 끝무렵에는 보물찾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이, 직급 할 것 없이 다들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나는 객식구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뒤져서 하나를 찾아내 우리 팀에 큰 공(?)을 세웠다. 보물이란 점수가 써진 공인데, 점수들을 합산해 높은 순으로 1등부터 3등까지 상품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 팀은 3등을 했다. 그것도 다른 팀과 동점이라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겼다. 이긴 순간 한마음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우리는 상품으로 받은 규조토 발매트 중 하나를 아무것도 받지 못한 4등 팀에게 건넸다. 남편과 나는 한집에 살고 있으니 두 개를 다 갖는 건 놀부짓이다.


남한산성 하면 닭백숙을 빼놓을 수 없다. 예약된 식당에 가서 닭백숙과 녹두전, 떡갈비 등을 먹었다. '음식은 여럿이 함께 먹어야 맛있다'라는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님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집에서는 두 끼를 혼자 먹는다. 남편이 야근하는 날에는 세 끼를 혼자 먹는다. 어차피 혼자 먹을 거 열심히 요리해서 뭐해, 대충 먹자, 하다 보면 식사 때 맛은 중요치 않게 된다. 맛있는 음식이든 맛없는 음식이든, 혼자 먹으면 어쨌든 맛이 없기 때문이다.


햇빛에 반짝이는 노란 나뭇잎이 마치 금가루를 뿌려놓은 듯하다


결국은 사람이 좋다


나는 조직생활을 한 지도 오래되었고, 프리랜서를 시작한 이후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 그래서일까. 주말에 남편의 직장 동료, 상사, 부하들과 어울리며 잠깐 조직의 모습을 엿보는 게 신나고 즐거웠다. 함께 움직이고 대화하는 동안 없었던 활기가 샘솟았다. 그들 사이를 어떤 애증과 희노애락이 둘러치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마냥 좋았다. 오랜만에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떠들고 에너지를 주고받는 것이 좋았다. 부사장님의 '자주 봅시다' 한 마디가 그저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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