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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준 Nov 19. 2018

록이면 어떻고 힙합이면 어때, 좋으면 그만이지

밤중에 친한 언니와 카톡 채팅을 했다. 언니는 <쇼미더머니>를 본다고 했다. 언니의 남편(형부라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부르는 사이, 훈이씨라고 하겠다)이 힙합을 좋아한다. 언니네 부부와 우리 부부가 함께 노래방에 가면 나는 팝송과 이적 노래를, 노래를 잘 안 부르는 남편은 늘 신성우의 '서시'를, 언니는 팝송과 간혹 아이돌 노래를, 훈이씨는 랩과 팝송과 김경호 노래를 부른다. 랩과 록이 가능한 사람이라니. 평소 언니네 집에는 록, 힙합, 일렉트로니카, 재즈, 클래식, 심지어 제3세계 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배경음악이 깔린다. 훈이씨가 틀어놓는 음악들이다. 음악 좀 듣는 사람이라 자부했던 나도 훈이씨의 광대한 스펙트럼에 혀를 내두른다.



고교시절에 에미넴의 <The real slim shady>를 처음 들었다. 그 전에는 힙합이라고 해봐야 투팍이니, 비아이지니 유명한 랩퍼들의 이름만 알았지, 음악을 제대로 들어본 적은 없었다. 국내랩퍼의 음반은 조피디와 허니패밀리 정도? 라임이 뭔지, 플로우가 뭔지 겨우 감을 잡을 때였는데, 에미넴이라고 하는 이름도 요상한 백인 랩퍼의 곡이 귀에 쏙쏙 들어와 박히는 게 신기했다. 에미넴의 음반을 사고, 가사를 뜯어보고, 뮤직비디오를 찾아봤다. 한창 록음악에 맛을 들이던 때라 에미넴과 록밴드 '림프비즈킷'의 프레드 더스트가 함께 음악작업을 한다는 게 신기했다. 프레드 더스트도 랩퍼라면 랩퍼이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록커와 랩퍼와 만남이 과연 있을 수나 있는 일인가 하고 생각했었다. 당시 록밴드를 하던 친구들 사이에서도 힙합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있었고, 나도 그런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The Marshall Mathers LP 앨범표지 (출처: 나무위키)


나의 힙합귀는 에미넴에서 멈추었다. 한동안 록에 심취했다. 록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보았고,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도 보았다. 그대로 영원할 것 같았던 록사랑은 언제부터 시들해졌는지 모르겠지만, 20대 중반쯤이 되면서 나도 모르게 다른 장르에 귀가 열린 것 같다. 팝을 듣고, 가요도 듣고, 가벼운 애시드 재즈와 스무스 재즈도 듣기 시작했다. 그쯤 되니 어릴 때 함께 음악을 공유했던 친구들의 취향도 비슷해졌다. 홍대와 혜화동 재즈클럽에서 공연을 보고, 와인바에서 재즈트리오 연주를 듣고, 빌 에반스나 마일스 데이비스 같은 재즈연주자들의 음반을 샀다. 그러는 동안에도 클래식음악은 계속 좋아했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아니, 그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클래식 DNA는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것저것 듣다 보니까 '가장 좋아하는 장르'랄 게 없어졌다. 비가 내릴 땐 조용한 재즈나 어쿠스틱 음악을, 신이 날 땐 펑키 디스코나 록음악을, 마음이 평온할 땐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 그러던 중 친한 언니가 <쇼미더머니>를 본다기에 그게 도대체 얼마나 대단하길래 챙겨보나 궁금해져서 나도 TV를 틀었다. 초반에는 고만고만한 랩을 하는 사람들의 경연이었다. 각 1분 남짓 펼쳐지는 경연 참가자들의 랩을 계속 들어서 어느 정도 감이 생긴 걸까. 귀에 확 들어오는 랩이 분명히 있었다. 그저 느낌만으로 '이 랩 좋다'라고 생각했던 랩퍼들이 실제로 상위 라운드에 많이 진출했다. 회를 거듭할수록 나는 방송에 빠져들었고, 이번에는 어떤 음원이 나올까 기대하게 되었다. 프로듀서들 가운데서도 내 취향이 드러났다. 결국 파이널라운드까지 본방송을 다 챙겨보는 열혈시청자들 사이에 내가 발을 들이밀었다.



그렇게 한동안 힙합 음원만 찾아듣다가, 어떤 영화를 계기로 나는 또 다시 록의 세계로 귀환했다. 이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도 나는 퀸을 그리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 프레디 머큐리가 훌륭한 보컬리스트인지도 잘 몰랐다. 학창시절에 들었던 퀸 베스트 앨범에는 괜찮은 곡들이 많았지만 <Another one bites the dust>를 제외하고는 딱히 내 취향도 아니었다. 우리 세대의 밴드가 아니어서 크게 관심이 없었을 수도 있겠다. 이번에 남편과 함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러 가면서, '그래, 퀸 베스트 앨범이나 듣고 오는거지 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그들의 시대를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느끼면서,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노래들의 탄생 일화를 눈으로 직접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퀸은 정말 위대한 밴드였구나.'


스토리가 어딘가 모르게 허술하게 흘러가는 게 아쉬웠지만,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뭉클해진 가슴이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을 대신했다. 마치 한 편의 콘서트를 보고 나온 듯한 느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과 나는 한동안 퀸을 비롯해 한 시대를 풍미했던 록밴드들의 음악을 찾아 들었다. 얼마전까지 내 귀를 사로잡았던 힙합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다시 록이 찾아왔다. 클래식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인기를 끌던 때에는 클래식 음악이 붐이었다지,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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