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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준 Dec 28. 2018

신혼여행에는 뭐니뭐니해도 축구지!

가족 중에 축덕(축구마니아)이 두 명 있다.


"매형, 어제 챔스 조추첨 보셨어요?"


"야근하느라 못 봤어 (ㅠㅠ). 양봉업자가 나설 차례가 되었더군."


남편과 남동생이 만나면 늘 축구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특히 동생은 예전에 EPL의 각 팀 승점과 순위를 엑셀로 기록했을 정도다. 시간이 남아돌아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두 사람이 축구로 하나되는 모습은 참 보기가 좋다. 유럽의 축구클럽간 리그인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손흥민이 소속된 토트넘이 꿀벌군단인 도르트문트와 맞붙게 되었다. 도르트문트의 유니폼이 검은색과 노란색 줄무늬로 되어 있어서 꿀벌군단이다. 그런 꿀벌군단에 특히 강한 선수가 손흥민이고, 그에게는 '양봉업자'라는 별명이 있다.




나와 남편은 2013년에 독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유럽 어느 나라에 갈까 고민하다가, 이왕 갈 거면 축구를 볼 수 있는 곳으로 가자고 내가 먼저 제안했다. (남편은 아직도 고마워한다). 나는 축덕은 아니지만 동생의 영향인지 유럽 축구를 직접 보고 싶은 열망이 있었고, 표를 구하기 어려운 영국보다는 독일쪽을 택했다. 더구나 그 당시 독일 레버쿠젠 팀에는 대한민국 축구스타 손흥민이 뛰고 있었다. 일정을 확인해보니 여행 일정과 맞는 경기는 레버쿠젠vs브라운슈바이크. 한 경기만 보고 오기가 아쉬워 다른 경기도 알아보았다. 마침 명문 도르트문트와 슈투트가르트의 경기가 있길래 그것도 보기로 했다.


도르트문트 홈구장 지그날 이두나 파크. 추운 날씨였음에도 자리가 거의 꽉 찼다.

도르트문트vs슈투트가르트 경기가 먼저 펼쳐졌다. 나는 아는 선수가 하나도 없었다. 남편의 말로는 레반도프스키와 귄도간에 주목하란다. (뭐, 이름이 귄도간이라고? 김두한도 아니고) 그런데 귄도간이 안 나왔다. 다행히 레반도프스키는 출전했다. 도르트문트 홈팬 좌석에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응원가를 따라부르고, 목도리를 사서 흔들어댔다. 옆자리에는 독일인 노부부가 있었다. 도르트문트가 골을 넣을 때마다 할머니는 신이 나서 박수를 쳤고, 할아버지는 짜증을 냈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는 슈투트가르트의 팬이라고 했다. 두 분의 모습이 어찌나 재밌던지. 이 날 도르트문트는 레반도프스키의 헤트트릭을 포함해 총 여섯 골을 넣었다. 골이 들어갈 때마다 할머니와 우리는 서로 박수를 치고 좋아했다.

도르트문트vs슈투트가르트 경기는 6:1로 끝났다!

도르트문트 엑스포트 맥주를 마시며 신나게 경기를 보고 숙소로 돌아가서는 로비에서 슈투트가르트 팬들을 만났다. 아저씨 두 명이 원정경기를 보러 온 모양이었다. 꽤 유쾌한 사람들이었다. 응원하는 팀이 져서 속상할 만도 한데 한 손에 맥주병을 들고 우리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깔깔 웃었다. 레버쿠젠의 경기도 볼 예정이라고 했더니 'phantom goal(유령골)'을 보러 가느냐고 놀리는 것이다. 바로 며칠 전에 옆그물을 때린 공이 그물을 뚫고 골대 안으로 굴러들어가 득점으로 인정되는 황당한 일이 있었던 걸 우리도 알고 있었다. 우리는 다같이 배꼽을 잡았다. 한국에서 들은 소식을 현지인의 입으로 들으니 신기하기도 했다.


그래서 손흥민 경기는 봤냐고? 아쉽게도 못 봤다. 숙소로 티켓을 배달받기로 했는데 티켓사고가 생기는 바람에 결국 받지 못하고 환불받았다. 그 경기를 위해서 독일까지 날아갔건만. 텅 비어버린 시간에 오페라 한 편을 관람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그 날의 경기에 손흥민은 출전하지 않았다고 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다.

하노버에서 본 현대오페라. 제목은.... 모르겠다.



작년에 수원에서 열린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우리 부부는 이승우의 활약을 직접 보았다. 가까운 곳에 축구경기장이 있는 게 좋다는 걸 처음 알았다. "우리도 이사 온 김에 연고지에 있는 K리그팀 응원하러 다닐까?" 하는 남편의 말에 나는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문제는, 내가 사는 도시에는 축구팀이 없다는 것. 그래서 가끔 수원에서 국가대표 경기가 열리면 분노의 클릭질로 표를 구해 경기를 보러 다니기로 했다. 이왕이면 동생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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