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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준 Jan 04. 2019

반려동식물, 그 무거운 생명의 무게

내 마음에 한 마리 개가 들어왔다


작년 여름, 시골에 계시는 시어머니댁에 다 자란 시바견 한 마리가 들어왔다. 아마도 전 주인에게 기르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어머님네 마당을 차지한 집지기는 전부터 기르던 셰퍼드와 발바리를 합쳐 세 마리가 되었다. 어느날 가서 보니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다. 어머님은 새 식구가 시바견인지도 모르셨던 모양이다. "시바견이네요. 품종견이에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님은 "그래? 혈통 있는 놈이야? 난 몰랐네." 하셨다.

사진을 찍진 못했지만 이렇게 생긴 녀석이었다. (출처: pixabay)

나도 시바견을 실물로 본 것은 처음이라, 그 녀석에게 한눈에 반해 한참동안 빠져있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눈앞에 계속 아른거렸다. 남편에게 말했더니 "우리가 데려다 키울까?" 하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일단 우리집은 도시에 있는 빌라이고, 큰 개를 키우기에 그리 넓은 공간이 아니다. 반려견에 대한 지식도 별로 없고 책임감을 갖고 키울 자신도 없다. 예쁜 외모만 보고 홀딱 반해서 데려와 키우겠다고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생명을 보살피는 일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걸 안다. 그래서 더욱 고민이었다.

시골집에서 기르던 암컷 셰퍼드.

고민끝에 우리는 입양을 하지 않기로 했다. 책임감의 무게를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전에 그 시바견을 기르던 사람은 어떤 이유로 그 친구를 어머님에게 넘긴 걸까. 결국 그 친구는 또 다른 집으로 입양가고 말았다. 어머님이 거주지를 수도권으로 옮길 예정이라 어쩔 수 없이 개들과 이별하셔야 했던 것. 셰퍼드도, 발바리도, 시바견도. 모두 어머님의 이웃들에게 전해졌다. 다행인 건 개들이 오랫동안 봐오던 이웃들이라 비교적 새 주인을 잘 따르고 새 주인도 개들을 좋아한다는 것, 마당 넓은 집으로 갔다는 사실이다.



생명을 거둔다는 막중한 책임


고양이를 네 마리나 키우는 친구가 있다. 넷 중 하나는 유기묘, 또 하나는 길고양이였다. 친구는 버려진 아기 고양이를 쉬이 지나치지 못하고, 추운 날 먹을 것이 없어 굶고 있을 길고양이들을 위해 캣맘을 자처하는 사람이다. 고양이 넷을 키우게 되기까지 고민이 참 많았던 걸로 안다. 그만큼 책임감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은 안 된다고 하면서도 안타까운 동물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그리고 또 고민한다. 책임에도 한계가 있는지라, 보살펴주고 싶어도 눈물을 머금고 발걸음을 돌리거나, 우선 구조해놓고 임시보호한 뒤 입양을 보내는 정도의 책임만 맡고 있다. 무턱대로 열 마리, 스무 마리를 기를 수는 없으니까. 생명을 보호하려는 마음은 아름답지만 제대로 책임질 수 없다면 그것 또한 서로에게 불행이다.

흰 녀석과 검은 녀석은 친구가 길에서 구조한 고양이들이다.


나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집에 들어오는 식물이란 식물은 모조리 죽여버리는 불행한 능력. 선인장도 내 손을 거치면 죽어버린다. '왜 나는 항상 식물을 죽게 만들까? 저주받은 손인가......'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었지만, 알고 보면 내가 책임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식물을 잘 키워보겠다는 의지도 없고, 식물에 대한 이해도 없으니 죽여버린 것이다. '난은 원래 키우기 힘들어', '허브는 원래 잘 죽어' 따위의 말들에 위안을 얻어보지만, 살릴 의지가 있다면 얼마든지 공부해서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금전수와 군자란. 제발 죽지 않기를.

새집으로 이사 와서 선물로 받은 군자란과 금전수는 다행히 1년 넘게 잘 살아있다. 새순도 가끔씩 쭉쭉 뻗어오른다. 두 식물을 보면서 뿌듯한 기분도 드는 한편, 또 언제 죽여버리게 될지 몰라 불안하기도 하다. 식물도 생명이라 분명히 책임감이 필요하다. 동물을 키우려면 동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듯, 식물에게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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