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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이해솔
Dec 16. 2024
소방서에 먹을 걸 보내려 했는데 마음만 갔습니다.
다사다난했던 역사적인 주말이 끝나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월요일이라 그런
지 오늘따라 일상이 참 소중한 느낌입니다.
평소처럼
글을 쓰고 있는데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보니 괜히 눈을 맞아보고 싶어서 집밖으로 나섰습니다.
코트와 머리 위로 내려앉은 눈, 그리고 그 눈을 뚫고 걷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참 소중합니다.
5년 전에
튀르키예에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튀르키예
에서 계엄령 하의 이스탄불이 어땠는지, 또 시민들의 표정이 얼마나 어두웠는지 보았습니다.
정말 오늘 이렇게
평온하게 걸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입니다.
짧은 산책을 끝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는데, 오늘을 기념해서 평소에 미루고 있던 일 하나를 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바로, '소방서에 치킨 보내기'입니다.
왜 굳이 소방서냐하면 최근에 개봉한 영화 '소방관'을 감명 깊게 보았기도 하고 원래도 목숨 걸고 고생하시는 소방관분들을 동경하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왜 굳이 치킨이냐면, 제가 아는 가장 맛있는 소울푸드가 '치킨'이니까요. 영하권의 추운 날씨에도 제자리를 지키면서 고생하시는 소방관분들께 제가 아는 가장 맛있는 선물을 보내드리고 싶었습니다.
공무원들이시라,
김영란법 때문에
치킨을 보내도 되나 고민하다가 최근에 뉴스 기사에도 소방서에 음식을 보낸 사례가 꽤 되는 것 같아서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그냥 익명으로 배달주문을 하려다, 잠시 고민했습니다. 첫째로 저는 제가 배달하려는 소방서에 소방관분들이 몇 분이나 되는지 모릅니다. 둘째로 어느 소방서로 보낼지도 정하지 않았습니다.
지도로 검색해 보니 제 거주지를 관할로 하는
119 센터가 가까이에 있었고 그곳으로 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인원수는 인터넷으로 대충 검색해 보니 열 분 내외가 근무하시는 것 같았지만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치킨.
자고로 치킨이란, 1인 1 닭은 못하더라도 최소 2인 1 닭은 해야 예의요 국룰이 아니겠습니까.
기껏 좋은 마음으로 배달을 했는데 양이 너무 많거나 부족해서 어색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고민하다가 119 센터로
무작정 전화를 걸었습니다. 119로 전화하면 사건접수로 판단하실 수도 있으실 것 같아서 네이버 지도앱에 나와있는 사무실 번호로요.
신호음이 얼마 울리지 않아 전화를 받는 센터.
무슨 일인지 묻는 소방관 분께,
음식을 보내고 싶은데 혹시 근무하시는 인원이 어느 정도 되시는지를 물었습니다.
잠시간의 정적 뒤, 소방관분이 제가 혹시 소방서와 관계가 있는 사람인지를 묻습니다. 아마 소방안전 감리나 기타 등등 뇌물성인지 유무를 판단하시려는 것 같았습니다.
소방서가 제가 사는 곳 근처이기도 하고,
그저 날도 추운데 고생하시는 것 같아서 보내드리고 싶을 뿐이라고 답하니 조심스럽게 제가 하는 일과 거주지를 물으십니다.
글을 쓰는 작가라고 답하고 제가 사는 아파트 이름을 말하자, 상당히 반가워하시며 잠시 기다려보라고 대답합니다. 제가 하는 일이 소방과는 전혀 관련이 없고
제 거주지가 소방서와 가까웠으니 아마 제가 정말 선의라는 것을 알게 되신 느낌이셨어요.
그러나 잠시 뒤.
수화기 너머로 거절하라는 목소리가 들리고 직접 전화를 더 높으신 지위의 소방관분이 받으셨습니다.
"마음은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만, 받기가 난처합니다."
"제가 괜히 전화로 여쭤봤나 봐요. 그냥 익명으로 보내드렸으면 편히 드셨을 것 같아 송구스럽네요."
"아닙니다. 그렇게 온 음식도 소방서 청문감사팀이 볼 때 문제의 소지가 있어서 저희가 폐기처분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리고 시간 나실 때 소방서로 한번 방문해 주세요. 저희가 감사의 의미로 커피라도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아쉬웠지만
웃으면서 알겠다고 답변을 드리고 끊었습니다.
매 순간 바쁘고 긴장상태에서 계시는 분들인데 제가 어떻게 커피를 얻어마시러 가겠습니까.
그래도 제 마음은 전달이 된 걸까요
.
김영란법이 생긴 이유도, 그 순기능도 잘 알고 있지만 소방관분들께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표현방법도 제한된 것 같아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김영란법을 찾아보니 식사는 3만 원, 선물은 5만 원으로 제한된다고 나와있네요.
소방관 한분당 치킨이 3만 원 미만이니 상관없지 않을까 싶은데 소방관분들께서도 내부지침을 따라야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아쉽지만 치킨배달은 미수로 그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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